무한한 다양성과 단조로운 유사성 사이에서. 소이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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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 2010/01/21 00:23

"철든다"는 것이, 자기 뿐 아니라 남을 배려할 수 있는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면, 경제적/심리적/물리적으로 독립하지 못한 나이에 일찌감치 "철"들어 버린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지금 과외를 하고 있는 남자 아이는(그리고 내 여동생의 경우) 내가 보기엔 너무 일찍 철들어 버린 아이다. 경제적 능력도 없고, 모든 일상이 부모와 학교에 의해 짜여져 있는 상황에 몹시 답답해 하면서도, 정작 '청소년'이자 '10대'로서 누릴 수 있는 행복을 찾기보다는 남의 시선과 심리적 빚 때문에 끝없이 고통스러워 하는 아이가 되었다.
 
아빠의 권위를 싫어하면서도 아빠의 체면도 있지만 무엇보다 자기를 먹여 살려주지 않냐는 생각, 엄마의 간섭, 관심, 학업 성취에 대한 기대를 부담스러워하면서도 보살핌과 애정을 주는 사람이라는 생각, 또래 집단 남자 친구들의 몰상식과 폭력적인 집단 문화를 경멸하면서도 그래도 자기는 반장이고 그들은 친구 아니냐는 생각, 수학과외 선생을 증오하면서도 그래도 그 사람은 선생 아니냐는 생각 등등. 그러면서도 그렇게 싫은 것들 속에서도 웃어야 한다는 생각, 관계를 유지할 감정노동은 결국 자기가 해야 한다는 생각.
 
어느 때였던가 이런 얘기를 조심스럽게 꺼낸 뒤로, 이 아이는 틈나는대로 현실에 대한 불만을 거침없이 쏟아내기 시작했다. 어디가서는 이런 뒷담화를 얘기할 곳이 전혀 없다는 듯. 이런 얘기를 나눌 친구들이나 아는 사람이 없냐는 질문에 더할 나위 없이 쓸쓸해하고 외로워 하던 모습을 본 뒤로는, 나는 더 이상 이런 얘기를 귀찮아 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 아이 편에 서서 상대방 욕을 할수도 없는 노릇이기에(그 아이는 그들과의 관계을 셈에 넣고 있으니 내가 그들을 욕하게 되면 사실은 그 아이를 욕보이는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고작 얘기를 들어주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기숙사가 있거나 자취를 해야하는 고등학교에 진학해서 물리적 독립부터 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해줄 뿐이었다. 일단 물리적으로 독립하고 나면, 비록 힘들겠지만 심리적 독립의 가능성은 더 높아질 것이고, 또 나이를 조금씩 더 채워나가다 보면 경제적으로 독립할 때가 올 것이며, 그렇게 되면 네가 괴로워하는 것들은 차츰 옅어질 것이라고. 옅어지지 않더라도 너 스스로 옅어지게 만들어야지, 안그러면 노예가 될 뿐이라, 넌 지금 "착한아이 컴플렉스"다. 고작 이 정도 말 밖엔 해줄 도리가 없었다. (게다가 아립(我立)이란게 마치 가능한 것처럼 이야기했다)
 
사실 "착한 아이"들은 많은 경우 일찌감치 철들어 버린 아이들이다. "착한 아이"들은, 정말 착하다는 것이라기 보다는 타인, 특히 부모의 입장을 잘 이해하고 자신을 조율하는데 능숙해진 아이들을 뜻한다. 부모의 한숨, 짜증, 슬픔, 실망, 웃음, 기쁨에 민감해지고, 자기의 감정도 그에 동화되어 자기의 행동을 규율한다. 부모는 그런 아이를 보며 기뻐한다. 그런 아이들의 일상은 늘 피곤하고 외롭다. 그런 일상, 관계가 싫다는 생각에 죄의식마저 느낀다. 심리적 종속의 소용돌이... 그걸 벗어나지 못하면 언젠가 네가, 그리고 앞으로 네가 만나 가장 소중히 여길 사람이 질식해 죽을지도 모른다고는 말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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