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원하는지를 묻는 질문에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습니다. 내가 원했던 것이 사실 뭔지를 몰랐거든요. 정말 원했던 것이 있다면 오로지 관계, 다시 말해 매력적인 사람들을 더 많이 알고 싶다는 것일 뿐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말로 옮길 수는 없었지요)
내가 거기서 잘 할 수 있을지, 거기에 잘 어울릴 수 있을지, 내가 거기에 어울리는지 하는 문제는 응당 나의 응답책임 영역을 넘어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심각하게 고려하지 않았었습니다. 일단 부딪혀 보면 되는 문제라 생각했죠. 가보면 알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자꾸만 회의가 듭니다. 내가 가진 '조건'들을 자꾸 떠올리게 됩니다. 주관의 의지로는 절대 극복할 수 없는, 다만 주변의 상황에 따라 얼마간 유동적일수는 있는, 그런 조건들 말입니다.
그것은 내 인생에 있어 최대의 억압입니다. 평생을 싸워나가고 싶은, 그래서 공부(혹은 글쓰는 이)의 길을 가야겠다고 결심하게 만든, 그런 억압입니다. 그래요, 나는 평소에 어떤 얼굴을 하고 있든간에 본질적으로는 낭만주의자 입니다.
경계는 어떤 경우 최상의 자유와 보호막이 되지만, 어떤 경우엔 최악의 억압입니다. 나는 그 어떤 경계와 싸우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경계는 평생의 숙제이자 적입니다. 또 그것이 해결되리라고 생각해 본적도 없습니다(그래서 억압인 것입니다). 어떻게 싸워야할지도 몰라 발만 동동구르는 처지이기도 하지요.
그러나 그런 억압이 거기서도, 여러분 사이에서도, 나를 억압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불행한 것은 그 억압이란 것이, 구체적인 어떤 사람들이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물론 강요하는 사람들은 많지만 저는 그들을 크게 신경쓰지 않습니다.
결국 그 경계를 만든 것도, 싸우겠다고 드는 것도, 사실 저 자신입니다. 그 자리에서 그 경계선을 느꼈던 것도 저 자신입니다. 그 세계는 얼마간은 사회적 진실이 만들어 냈지만, 실은 주관이 만들어낸 세계입니다.
왜 나는 그 경계를 유연하게 넘지 못할까요. 어떤 숲에 사는 주민들은 작물과 인명에 해를 끼치는 야생 늑대를 잡을 때, 늑대가 좋아하는 먹이가 풍부한 지역을 중심으로 줄을 친다고 합니다. 야생 늑대들은 그 줄을 인지한 뒤로는 그 너머로 가지 못한다죠. 그 따위 줄은 사실 아무것도 아닌데, 그냥 지나가면 그만인데도, 그 너머에 먹을 게 있는데도, 늑대들은 결국에 굶어 죽고야 만답니다. 참으로 슬픈일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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