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한 다양성과 단조로운 유사성 사이에서. 소이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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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들 / 2010/01/05 00:20
나의 기억력은 정말이지 형편없는 것이어서, 사람들의 이름이나 소설, 드라마, 영화 따위의 제목과 대사 따위를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더구나 숫자와 관련된 일이라면 더더욱 기억하지 못한다. 생일이라든지 날짜라든지 돈의 액수라든지 전화번호라든지 하는 것들. 어릴 때부터 늘 그랬다. 단기 기억은 그럭저럭해서 시험은 그냥저냥 봐도 정작 시험지를 풀면서 자연스럽게 모두 까먹는... 뭐 그런 종류의 휘발성 메모리.
 
앞으로 공부를 계속하고 논문을 쓰며, 가끔씩은 소설을 쓰는 생활을 하(게 되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가장 걱정되는 건 이런 형편없는 기억력이다. 너무 까먹는게 싫어서 1년 넘도록 책을 읽다 좋은 문장이나 아이디어가 나타나면 옮겨 적는게 버릇이 되었다지만, 그게 언젠가 발목을 잡아도 크게 잡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있다.
 
이를테면 오늘 어느 시인이 쓴 블로그의 글도 그렇다. 2년 전 이맘 때 출간한 한 산문집의 어느 파트가 알고보니 어떤 칼럼니스트의 글을 '편집'한 것으로 드러난 것이다. 어느 독자가 꼼꼼히 짚어가며 의혹을 제기했고, 그 시인은 그 본의아닌 표절을 인정하고 다음 판에는 그 파트를 제외하기로 했다. 예전에 자료조사 하면서 이게 대체 자기가 쓴 메모인지 남의 글을 옮겨 쓰는지 구분하지 않았던 탓이라 했다.
 
나도 이러지 않으리라는 법이 없다. 내가 좋아서 몇 번이고 암송했던 문장ㅡ그러나 물론 지금은 까먹어버린ㅡ이 어느날 갑자기 내 손에 출현해서 글로 옮겨져도 나는 그게 도대체 어디서 온 것인지 알 도리가 없는 것이다. 부분적으로 나도 메모와 옮겨쓰기를 구분하지 않는 탓이다. 나중에 글을 쓰다 예전에 읽었던 남의 문장을 거의 그대로 옮겨 오면서 그게 내가 해낸 생각이라고, 정말이지 훌륭하다고 자화자찬하며 무릎을 칠수도 있는 노릇이고. 만약 그런 일이 발생한다면 문학에서도 그렇겠지만 논문을 쓰면서는 정말 최악의 일이 된다. 자칫하면 그쪽에서 생명이 끝날 수도 있는 것이다.
 
솔직히 나는 표절에 대해 관대한 편이다. 내 기억력이 나쁜 탓에 그걸 옹호하기 위해서 그런 점도 있겠지만, 사실 우리네 일상에서 오가는 모든 일상적인 언어는 사실 모두 표절아닌가,하는 생각 때문이다. 연예인 가십, 상사나 친구의 험담, 친구와의 환담, 혹은 속담과 민담, 심지어 진지한 사랑의 고백까지도 이 모든 것들이 사실 누군가로부터 듣거나 어딘가에서 읽고 본 것들에 대한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는 것 아니던가.
 
물론 남의 것을 그대로 베껴써서 자기 것처럼 위장하고 그걸로 자기의 업적을 세운다면 그건 반칙인 셈이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반칙이고 경고와 주의를 주면서 다같이 고민하고 경계해야할 문제지, 오늘날의 한국은 병적인 수준에서 다루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자정작용과 자기반성, 도덕적인 문제로 해결해야 할 문제를, 사법권 혹은 법의 이름으로 치환해서 다루는 '아메리칸'적 방식.
 
진중권의 최근작 <교수대 위의 까치>는 그의 유명세(그래서 사실 소설이든 뭐든 그걸로 돈 깨나 벌고 싶으면 일단 유명해진 다음에 출판하는게 더 쉬운 일이다), 그리고 특유의 입담과 깔끔한 문장, 또 그림에 대한 "독특한 해석"으로 잘 나가는 편인 책이다. 그러나 그가 한겨레21에서 밝혔듯, 그 책은 사실 인터넷의 정보를 짜깁기(편집)한 것이라 한다. 결국 중요한 것은 저자의 관점과 직관인 셈이고, 수없이 인터넷에 널린(한 표현을 빌자면 "자기 산출적 우주"로서의 인터넷) 자료들을 취합해 모종의 논리와 일관성에 따라 편집한 결과물이 바로 그 책인 셈이다. 그건 결국 뭐라 해도 표절이 아니다. 없던 것에서 있는 것을 만들어 내는 창조주로서의 저자, 결과물에 대한 무한한 권위자로서의 저자라는, 전통적인 이미지의 저자는 그에게서 한 번 더 무너지는 셈이다. 사실 이런 저자관은 진부한 것이다. 왜냐면 논문 쓰는 사람들은 사실 본질적으로 이런 저자에 가깝기 때문이다. 인용을 세련되게 잘 각색해서 원작이 안 보이게 만들면 훌륭한 문학가로 인정받게될지도 모를 일이고. 그래서 난 언젠가 인용으로만 이루어진 잘 빠진 소설을 쓰고 싶은 생각이 있다. 인용했다는 걸 떳떳히 밝히고.
 
그 시인이 지나치게 자신을 탓하지 않으면 좋겠다. 그게 논문도 아니고, 그걸 통해 뭐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한 것도 아닌데. 그저 어디서 참고했다고 작게 명기하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겠는지. 혹은 머릿말이나 저자의 말에 그냥 여러 사람의 글에서 도움을 받았다고 쓰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겠는지. 뭐 그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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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소이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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