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 때는 어김없이 20살이 되는 나를 상상했듯, 20대 중반을 접고 들어가기 시작한 나이가 된 나는 30살이 되는 나를 상상할 수밖에 없다. 20대 초/중반을 지배했던 불안은 여전하지만, 불안을 동력으로 삼아 기꺼이 새로운 일을 추진할만한 열정은 이미 잃어버린지도 모른다. 너무 많은 좌절, 너무 많은 실패, 너무 많은 혐오, 너무 많은 환멸, 너무 많은 ... 그러니까, 너무 많은 것들을 이미 지난 몇 년간 지나왔기 때문에.
물론 나이에 따라 열정을 배분하는 건, 한국 사회에 만연한 나이주의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그 어떤 소위 '억압적 제도'나 '이데올로기'도 나이주의의 프리즘을 통과하지 않으면 안되는). 그 나이주의의 각본에 따르자면 20대엔 열정과 도전정신, 패기로 똘똘 뭉쳐 3~50대 기성세대들이 주는 떡밥에 지나치게 연연하지 않으며 제가 하고 싶은 일을 찾되, 20대 후반이 되거나 30대가 되는 순간 얌전히 제가 찾아 먹을 자리를 잡아야 한다. 그러므로 통상적인 '루저'가 되느냐 아니냐 하는 것을 결정하는 것은 사실 20대 후반에서 30대 사이가 아닐까. 제 짝을, 제 밥벌이를 제대로 찾을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그러면서 대다수 이들은 보수화되고...
어쨌거나 지금 같아선, 내가 30살이 되면, 그래도 최소한 품위있게 살고 있기를 바랄 뿐이다. 품위있게, 기품있게. 적어도 초라하지 않게. 모호한 말이지만, 사실 간단하다. 그저 그때 하고 있는 일과 생각에 이런 저런 변명을 붙이지 않을 수 있으면 되는 것 같다. 20대 초/중반 특유의 무지와 오기, 굽히지 않는 고집을 '진정성'이 커버해주었다면 30대가 되면 진정성으로는 커버 불가능한 부분이 생길 것 같기 때문이다. 자기 변명이나 자기 변호를 하지 않아도 내가 납득할 수 있다면, 그럴 수만 있다면 좋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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