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정도의 역량을 갖춘 독일이 참 부럽다. 그리 오래되지 않은 역사를 이렇게 꽁꼼땅꼼하게 기록해 낼 수 있다니. 적군파의 해체가 고작 10여년 전인 1998년에 공식 선언됐다는 사실을 알고 많이 놀랐다. 68의 독일판 유산이라면 유산이랄 수 있는 적군파가 98년까지 이어졌다는 일도 그렇지만, 그게 이렇게 영화로 만들어질 수 있다는 사실은 정말이지 부러운 일이다. 예전에 다카우 수용소에 갔을 때도 마찬가지 느낌을 받았더랬다. 악명 높은 수용소가 이렇게 잘 가꾸어지고 보존된 시설로 남아 있을 줄은 상상도 못했었으니까. 물론 내부 사정이야 내가 보는 것과는 많이 다를 것이고, 나의 철없는 부러움에 이의를 제기할 독일 사람들이 많겠지만.
어쨌거나 한국 영화계에서 이 정도의 영화가 탄생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면 먹먹해진다. 불과 몇 년전의 대추리, 그리고 바로 얼마 전에 있었던 용산 참사, 지금도 진행 중인 평택 쌍용자동차 사태는 차치하더라도, 70~80년대 민주화 운동이나 80년 광주에 대해서 <바더 마인호프> 정도의 세련미와 신중함을 가진 영화가 탄생할 수 있을까? 물론, 그렇지 못할 것이다. <바더 마인호프>는 "독일 사상 최대의 제작비"를 투입해 만든 영화라고 한다. 일종의 '블록버스터'다. 자본이 투입되어도 이 정도의 영화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다른 건 몰라도 사회가 역사를 기억하는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한국은 아직 갈길이 먼 것 같다.
영화에 나오는 미디어들은 적군파를 내내 '테러리스트'로 규정한다. '테러리스트'라는 언설은 정치 권력이나 발화할 수 있는 채널을 갖지 못한 이들이 투쟁을 결의하고 선포했을 때 앞으로 얼마나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는지를 여실히 드러내주는 말이다. '테러리스트'라는 말을 들으면 중국의 제국들이 생각난다. 중국의 한족 제국들은 소위 '오랑캐' 국가와 전쟁을 일으킬 때 토(討), 벌(罰), 벌(伐), 정(征), 습(襲), 침(侵), 취(取) 등의 어휘를 동원했다. 그리고 제국과 동등한 수준이라고 인정되는 상대에게만 전(戰)이라는 말을 썼다. 싸우긴 싸우되 벌(罰)하는 것이며, 너를 혼내고 취(取)한다는 식의 논리다. 중화 의식이란게 유구하게 있어왔으니(지아장커에게까지 이어지는!) 그리 특이하다싶은 말은 아닐지 모르겠다만, 실제 중국의 제국들은 저런 말을 사용할만한 힘을 갖고 있을 때가 많았기에 저 말들은 단지 말일 뿐 아니라 늘 '실현'되었다. 한국도 그리 다르지 않다. 성공하거나 역사적 정당성을 획득한 '저항운동'에는 마지 못해 혁명이라는 이름을 부여하고 기념하지만, 그 외에는 '난(亂)'이라는 말을 동원하지 않았던가. 그러니 '테러리즘'이라는 말을 갖다 붙일 수 있는 힘, 그리고 그 말을 정당화할 수 있는 힘을 가진 국가 권력은!
마오쩌둥, 호치민 등에 대해서 자랑스레 말할 수 있었던, 그리 오래되지 않은 과거의 '뜨거웠던' 시절을 그려낼 때엔 감독의 '위치' 선정은 특히 중요한 일이다. 보수 세력의 프로파간다로 전락하지 않으려면, 혹은 당사자들의 역겨운 회고담이 되지 않으려면 말이다. 다행스럽게도 <바더 마인호프>는 영웅담과 '테러리즘' 사이에 영리하게 자리 잡았다. 무엇보다 적군파가 어떻게 시작되었으며, 그 동기와 추진력은 어디에서 나오는지를 다루는 감독의 시선에서 그런게 느껴진다. 그리고 사진에서나 봤던 유명한 장면들(네이팜 탄에 폭격 당한 베트남의 마을과 그 마을에서 뛰어 나오는 아이의 모습, 그리고 길거리에서 권총으로 즉결 처형당하는 '베트콩'의 모습, 체 게바라의 모습 등)이 영상으로 나오는 것을 보고 이 영화를 더욱 신뢰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감독이 어느 편인지는 분명히 드러나지는 않지만, 나는 그게 오히려 더 마음에 든다.
열정과 확신이 가득 들어찬 정치적 언어를 자신의 것처럼 말하는 에슬린, 에슬린의 애인으로 여성과 동성애에 대한 혐오 발화를 거침없이 내뱉는 행동파 바더, 차갑고 분석적인 말로 토론과 글 쓰는데 재능이 뛰어난 좌파 저널리스트 출신의 마인호프. 이들이 적군파를 결성하고 모든 "억압적인 세력", "경찰국가"에 대해 전쟁을 선포하고 수행하는 모습에 심장이 쿵쿵 뛰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모두 구속된 이후에 그들을 석방하기 위해 다른 조직원들이 수행하는 행동이 계속해서 사람들의 피와 눈물을 부르는 걸 보고 있자면 양눈썹 사이에 주름[川]이 생기지 않는다고 말한다면 그것도 거짓말일 것이다. 하긴, 감옥의 바더는 그들이 한 행동은 자신들이 명령하지 않았다고 강변하지 않았던가.
1~2년 전에 봤다면 나는 아마도 에슬린에게 몰입했겠지만, 지금에서는 마인호프에게 좀 더 마음이 간다. 적군파를 결성하고 활동하면서도 자신의 두 딸은 포기할 수 없다고 말하는 마인호프. 아이들이 고아원에 맡겨지면 다시는 볼 수 없다는 말에 눈동자가 흔들리는 마인호프. 체포당할 때 "당신이 왜 여기에?"라는 질문을 던지는 경찰관 앞에서 울음을 터트리는 마인호프. 결국 나는 영화를 보면서 나 스스로에게 조금 더 솔직해지기로 했다. 이런 저런 '혁명'의 대의에는 여전히 공감하지만, 그 대의가 실제로 내 눈앞에서 이루어진다면 그 과정을 지켜보는 일은 내심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그리고 바더 같은 사람과 나는 무슨 일이 되었든 절대 같이 할 수 없을 것이라고. 내게 가장 큰 문제는 젠더 문제라고. 마지막으로, 이 영화를 청소년들이 꼭 봤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등의 해묵은 계몽주의자들도 싫다고.
영화 / 2009/08/01 00: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