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부터 나는 알게 모르게 많은 사람들에게 '특혜'를 받아 왔다. 사실은 '알게 모르게'가 아니고, 나는 '잘 알고' 있었다. '첫째'란 이유로 할머니와 부모님은 물론이고 친척들에게도 더 많은 용돈을 받고 기대를 샀던 것은 시작에 지나지 않는다. 기억이 별로 남아 있지 않은 초등학교 때에도 나는 선생님들에게 예쁨을 받았으면 예쁨을 받았지, 눈에 벗어났다거나 차별을 받았던 기억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장 선명히 남아 있는 '특혜'의 최초 기억은 중학교 때일 것이다. 나는 무슨 컴퓨터 대회에 프로그램을 출품(?)해야만 했고, 데이터베이스를 만들기 위해 지루한 작업을 해야만 했다. 사실 그 대회는 내 의지로 준비한 게 아니라 컴퓨터 학원 선생님들과 학교 선생님들의 '야망'이라는 느낌이 강했기 때문에(학원은 학원 홍보 차원에서, 학교는 실적 차원에서) 나는 흥미를 완전히 잃은 상태였다. 나는 내가 싫어하는 건 막 욕하고 때리지 않는 이상 절대 착수하지도 않는 외곬수 학생이었으므로, 당연히 그 작업은 하지 않고 탱자탱자 놀기에 바빴다. 으르고 달래도 소용 없었다. 앞에선 네, 네 하고는, 뒤돌아서면 (악의 없이) 그냥 기억에서 지워버리는, 그런 학생이었으므로, 마침내 그 작업은 학교 컴퓨터 반 후배 학생들에게 돌아갔다. -_-; 나는 내 스스로 만들지 않았음은 물론 학교 선생님들의 온갖 뒤 봐주기의 산실이었던 프로그램을 내 이름 석자를 걸고 출품했고, 무려 전국대회에서 입상권 안에 들었고, 그 수상은 하나하나 말하기도 구질구질한 또 다른 뒤 봐주기와 온갖 특혜로 연결되었다.
고등학교 때도 마찬가지였다. '학원 과외는 다 필요 없고 오로지 학교 교육과 교과서로만 수능을 준비해도 충분하다'는 학년 주임 선생님 평생의 '교육 철학'에 완벽히 부합하는 학생이 3년을 통틀어 딱 한 명 나왔는데, 그게 바로 나였다. 나는 학교 교육과 교과서에 충실했던 학생이 아니라 문제 푸는 기계에 불과했지만, 그 선생님 관점에서 기숙사에 3년 내내 갇혀 지냈기에 학원 수업이나 과외를 못 받으면서도 성적이 상향세에 있었던 아이는 단 한 명 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내 이름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학부모 총회 등에서 여러 번 거론되었고, 학년 주임이 베푼 여러 '특혜'들 덕분에 성적이 모자랐음에도 불구하고 더 편한 환경에 편입되어 공부를 할 수 있었다.
중고등학교 때의 이런 단편적인 기억들의 공통점이 있다면, ① 나는 그 선생님들을 혐오했다, ② 나의 혐오와 적개심에도 불구하고 그 선생님들은 특혜 베풀기를 멈추지 않았다, ③ 그 특혜들은 내가 원한 것들이 아니었다, ④ 하지만 '전교'에 소문이 곧잘 나곤 했다, ⑤ 그 소문의 주인공을 부르는 이름은 불명예스럽게도 선생님들의 성을 따 '임ㅇㅇ', '한ㅇㅇ' 등이었다(자식이란 얘기;), ⑥ 그리고 나는 그 소문에 저항하지 않았다, 정도를 들 수 있다. 어느 날 갑자기 소문이 시작되고, 그 소문은 하루나 이틀 사이에 전교에 퍼지고, 그 소문의 주인공은 갑자기 바뀐 주위 사람들의 시선을 느끼기는 하지만 그 소문을 가장 마지막에 듣는다. 나는 그렇게 공인된 "teacher's pet"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가까운 친구들이야 내가 그 선생들을 얼마나 싫어하는지 알기 때문에, 그리고 그런 식으로 특정한 아이에게 특혜를 베푸는 선생들은 대개 인기가 없었으므로, 친구 관계에 별 문제를 겪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닥 유쾌하지만은 않은 경험임에는 틀림없다.
사실 내가 그런 소문들에 적극적으로 저항하지 않았던 것은, 선생들이 '일방적으로' 베푸는 특혜가 그리 기분 나쁜 일은 아니었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혜택을 베풀 때 선생님들은 당사자인 나를 불러서 직접 거론하기 보다는 대개 간접적인 방식을 취했으므로, 나는 그런 불편한 광경을 '실제로' 목격하지 않고도 얼마든 수혜자가 될 수 있었다. 게다가 그 선생들이 베푸는 호의는 때론 매우 편리하게 느껴졌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나의 자아는 투쟁하는 자아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주위의 평가에 지나치게 좌지우지되는 귀 얇은 자아도 아니었으므로, 다만 그 특혜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가까운 아이들에게 선생들을 욕함으로써 평등주의적인 청소년 또래 문화 내에서의 긴장을 해소했다. 일종의 '역겨운 달콤함'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결국엔 일종의 공모자이자 공범이 되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어쨌거나 이런 '특혜'는 대학에 있을 때는 잠시 잠잠해졌다가 대학을 나오고 나니 다시 심해지고 있다는 걸 느낀다. 나는 지금 나의 '상사'의 조치 때문에 여러 번 골치 아픈 일에서 '열외'했고, 그런 사건이 반복되자 걷잡을 수 없이 소문이 확산되고 있는 것 같다. 그런 낌새를 챌때면 자꾸 중고등학교 때의 (불쾌한/달콤한) 경험을 상기할 수밖에 없다. 심지어 까탈스럽고 싸가지 없는데다 '아랫사람'이라면 인간 이하의 취급을 하면서 "'여자'에게 찝적거리기"로 악명 높은 그 '상사'가 주말에 나를 자기 집에 불러 식사까지 했다는 소문도 나도는 모양이다. 나는 그딴 식사는 천만원을 준다해도 안 할테지만, 사람들 사이에선 이미 '기정 사실'인 모양이다. 그러나 솔직히 나는 현재 내가 몸담고 있는 이 공간에 전혀 애정이 없으므로, 굳이 일부러 시키지도 않은 일 해가며 고생을 하고 싶지도 않다. 내 '상사'가 베푸는 혜택은 혜택대로 받고, 그 혜택 때문에 느껴지는 역겨움과 불편함은 어서 지워버리고, 빨리 이 공간을 떠나면 그만이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도 뭐 그리 신경쓰지는 않는다.
하지만 같이 일하고 있는 아이에게 너무 미안해서 어떻게 해야할 지 모르겠다. 중고등학교 때야 수십 명씩 같이 있으니 상관이 없지만, 지금 나는 이 아이 단 한명과 같이 사무실을 쓰고 있는 형편이기에 문제는 더 심각하다 할 수 있다. 사실 평소에도 입이 싼 편인 이 아이가 이곳저곳 떠벌리고 다녔기 때문에 이렇게까지 소문이 퍼졌다는 혐의를 지울 순 없지만, 미안한 건 미안한 것이다. 에휴, 나 왜 이렇게 산다니. 앞으로도 이렇게 살려나.. 빨리 이곳을 떠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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