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은 정말 지독히도 운이 없었다. 나는 아침에 일어나지 못해 버스 시간을 맞추지 못했고, 결국 마구 짜증을 냈고, 괜히 엄하게 그 꼬라지를 본 엄마가 미안해 했다. 나는 거기에 대해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고, 아빠는 다음부터는 자기한테 부탁하라고 했다. 분명 나는 누구에게도 부탁하지 않았다. 내가 핸드폰 알람을 '월~금'으로 맞춰 놓았을 뿐이었다. 허나 나의 침묵으로 그건 잠정적으로 '엄마의 잘못'이 되어 버렸다. 애써 짜증을 달래고 서울에 간 뒤 Y를 만난 것은 좋았다(하지만 메뉴가 나이스 초이스는 아니었던 것 같다).
점심을 먹고 각자 볼 일을 보러 나는 청계천에서 종로 2가로 향했고, 약속 장소였던 던킨 앞에서 차마 들어가지 못하고 우물쭈물 했고, 그러는 동안 바로 그 앞에서 고등학교 동창을 만나 버렸다. 옛날엔 내게 제법 살갑게 굴고 애교도 부리던 친구였는데 공군사관학교에 들어간 뒤로 확, 바뀌어 버린 아이여서 이미 몇 년 전부터 내 맘 속에서 지워 버린 터였다. 그 애는 키가 무척 크기 때문에 나 같은 애는 한참을 올려다 봐야 한다. 그 때 그 애는 머리에는 기름을 잔뜩 바르고, 반사율이 높은 선글라스를 끼고 있었다(oh ma eyes!). 내 안에서 지웠던 존재가 내 앞에 이렇게도 급작스레, 예상치 못한 곳에서 강렬한 존재감을 풍기니 나는 퍽 당황할 수밖에. 그 애의 선글라스로 내 당황한 모습이 내려다 보였다. 순간 그 선글라스에 펀치를 날리고 싶었다. 그 애가 혐오스러워졌다.
결국 겨우 3시 시간도 못 맞춰 15분 쯤 늦어 던킨에 들어갔는데, 이게 왠걸... 아. 내가 가장 싫어하는 타입의 남자 애들 두 명이 떡, 하니 앉아 있는게 아닌가. 처음 만나는 자린데도 계속 핸드폰으로 문자 쓰고 게임하질 않나 묻는 말엔 대강 대강 뺀질 뺀질 대답하질 않나 다음 주엔 못 나오겠다고 자랑스레 떠벌리질 않나 지네 고향 얘기를 나누질 않나 지네들 출신 중 고등학교 얘기 하지 않나 자기는 남자가 더 좋다고 남자랑 얘기하는게 더 편하다고 헛소리를 지껄이질 않나. 그에 반해 다른 여자 분 두명은 그 난감한 분위기를 어떻게든 이끌어 가고자 노력하는게 보였고, 불행히도 나는 그 남자 sk들에게 은밀한 분노를 품느라 그 노력에 부응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러고는 서둘러 다른 친구를 잠깐 만나고 황망스럽게 집으로 와버렸다. Y하고도 그렇고, 이 친구하고도 그렇고, 원래 그런 식으로 만나고 헤어지려고 했던게 아니었는데.. 아, 진짜 이게 아니었는데..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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