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오랜만에 비가 엄청 많이 온다. 똑똑한 해피는 자기 집에 콕 박혀 있었는데, 바보 지용이는 비가 오든 말든 '미친년 널 뛰듯' 하루를 보내고는 날이 추워지자 해피 집에 침입하려다 해피에게 얻어 맞고 저만치 찌그러져 있다. 감기 걸리면 어쩌나. 어쨌든 비가 그치면 지용이 목욕부터 시켜야지, 냄새가 어휴 그냥. =_=
2.
얼마 전 황석영씨 때문에 크게 놀랐다. 그 발언들에 대한 뉴스가 올라오자마자 봤었는데... 즐겨 찾는 블로그를 돌아다녀보니 역시 다들 한 마디 씩은 남기고 있다. '변절' 심지어는 '노망' 운운하는 사람들이 있는 걸 보니 다들 적잖이 충격을 받은 모양이다. 하지만 뉴스에 대한 충격이 좀 가시고 나서 가만히 생각하니, 과거 그의 행보나 문학 세계에서 크게 벗어난 일도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특히 최근의 발언은 <바리데기>를 읽고 난 뒤 느꼈던 찝찝함이랑 싱크로율이 높은 것 같다.
'좌/우/중도'를 나누는 공식이 얼마나 쓸모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한국의 맥락에서는 완전히 쓸모 없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황석영씨 사건이 터지고 나고 보니 나 스스로는 이런 공식을 폐기 처분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희극적인 일이 또 발생하지 않으리라는 법이 없으니까. 어디까지나, 그저 정치가 있고, 정치의 행위자/주체가 있을 뿐이다(그렇다고 무한히 다양한, 그래서 교점이 없는 개인적 주체들을 상상하는 것은 아니다). '황석영의 변절' 운운하는 이야기들은 정치에 대한 오래된 판타지의 산물이다. 배신할 '진영'이란 것도 사실은 없었고, '내 편' '니 편'도 사실은 없었다. 황석영의 발언들에 나름의 고민과 진정성이 있다는 점을 나 스스로 인정해야 할 것 같다. 그는 '변절'한 것도, '전향'한 것도 아닐 것이다..
다만 황석영씨를 보고 있으면 역시 지금도 불편하기 짝이 없는 한 시인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 지금도 꾸준히 '영성 생태주의'적인 발언을 하며 '어른 대접' 받는 그 시인. 고등학교 시절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여 만세"라는 글귀를 보고 한 없이 감동했던 일이 무색하게도, 대학 시절에야 비로소 접한 그의 과거 행보는 적잖이 충격이었다. 그는 "죽음의 굿판을 집어 치워라"는 말을 영향력 큰 한 신문에 기고 했었지. 나는 그가 소위 '어른'대접을 받는 다는 사실, 그리고 그의 이러한 행보를 한국 현대사의 중요한 비극으로 꼽지 않을 수 없다. 혁명도, 혁명가도 없는(더 정확히는, 그들에게 '제 자리'를 한번도 부여한 적 없는), 혁명을 단지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으로만 환원하고 혁명가를 잘라내고 '민주 투사'만을 인정해 온 한국 현대사의 비극.
어쨌든 이 둘의 차이점이 있다면, 난 황석영씨의 발언은 진짜 코미디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기사를 보곤 진짜 웃었다. <브뤼메르 18일>에 나오는 흔하게 인용되곤 하던 맑스의 말대로, 역시 역사는 한 번은 비극으로 한 번은 희극으로 반복되는 건가봐~
3.
학자, 지식인들은 스페셜리스트(specialist), 기자는 제너럴리스트(generalist) 라니. 진짜 어처구니가 없는 구분법. 기자는 대부분 그냥 바본데.
4.
내 말이 더 이상 가 닿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말이 더 이상 와 닿지 않는다는 것. 갈수록 만남의 장면이 흐릿해진다는 것. 그리고 말은 않지만 내심 다 알고는 있다는 사실. 마음은 늘 아슬아슬하게 곡예를 부리며 위험한 경계를 스쳐간다. 위선은 해도 위악은 못하는 내게는 너무나도 익숙한 풍경이라서, 조금은 쉽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
'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 哀悼 (0) | 2009/05/24 |
|---|---|
| 생애(lifetime) 서사에 대한 감각 (4) | 2009/05/18 |
| 비 많이 오는 날 (0) | 2009/05/16 |
| 싫은 남자애들 유형 (0) | 2009/04/30 |
| 서재를 갖고 싶어라 (2) | 2009/04/22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