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한 다양성과 단조로운 유사성 사이에서. 소이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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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2009/05/05 20:46

오늘 오랜만에 영화관에서 영화 봤음~ 아침에 요 인근 도시로 가서(내가 사는 데는 영화관이 없기 때문에;) <인ㅅ동 스캔ㄷ>이랑 <박쥐>를 연달아서 보고 왔다. <인사ㄷ 스ㅋ들>에 대해서는 뭐 딱히 하고 싶은 말은 없다. 그냥 김ㄹ원 역시 별루다 엄정ㅎ 역시 킹왕짱 뭐 이 정도? ^^; 최근 들어 미술품이 유망한 투기나 투자 대상으로 떠오르고 있는 현실을 감안한다면ㅡ물론 거래량 세계 1위 미술 경매회사의 사장이 지적하듯 미술품이 대세라거나 새로이 등장한 안정적인 투자 시장이라거나 하는 식으로 섣불리 얘기할 시점은 아니다. 소위 말하는 '신경제New Economy'의 메커니즘과 미술 경매에 쏠리는 투자/투기적 관심의 특수성과 상관관계를 생각한다면ㅡ이런 꽤나 볼만한 범죄 스릴러 물이 나오는 것은(그리고 서사적 설득력을 갖는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닐테다.


<박쥐>를 보면서 내내 이거 라캉주의자들에게는 좋은 '떡밥'이겠군, 하는 생각을 했다. 정신분석학에서 나오는 개념들로 짚을 수 있는 부분들이 정말 너무나 많았기 때문이다. 박찬욱 감독이 요새 지젝의 책이나 정신분석학 책이라도 심취해서 읽고 있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 자체가 정신분석학 영화는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쾌락과 판타지의 관계, 남성적 쾌락과 여성적 쾌락, 이어서 '쥬이쌍스'와 팜므 파탈, 또 상징계와 그것을 불가능하게 하는 실재의 귀환, 정신분열(정신병), '아버지'의 법과 도덕(윤리) 그리고 죄책감, '남성적' 주체와 '여성적' 주체, "억압된 것은 반드시 돌아온다"는 프로이트의 말, 응시(gaze), 증상의 지속 등등. 이러한 단어들에 영화 장면 가지고 살을 덕지덕지 붙이면 꽤나 재밌게 짧은 라캉주의 정신분석학 개론 에세이 하나 쓸 수도 있겠다(물론 내 능력 밖이다). 물론 여기에 참신한 것은 하나도 없고, 단지 라캉 '어르신'을 비롯한 정신분석학 텍스트에서 이러콩 저러콩 말했네 하는 것들을 확인할 수 있다는 것 정도이다.

정신분석학, 특히 라캉 관련한 책은 다신 읽지 않겠다고 결심을 했던 터에 영화를 보면서 저런 생각으로 가득 찼었으니 보고 나와서도 심란하기 짝이 없었다 -_-... 하아. 내가 지젝을 비롯하여 라캉 정신분석학을 읽지 않겠다고 결심했던 건, 그들이 더 이상 영감을 주지 않는다거나 진부해져서도 아니고 어려워서도 아니다. 어려운 만큼이나 영감을 주는 것도 많았고 읽고 나서 재미도 있으니까. 하지만 역시 표현이나 개념 상에 불편한 부분이 많아서 그것들을 견뎌내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아무리 변명하는 말을 많이 접해도 정신분석학이 남근이성중심주의(phallogocentrism)이라는 혐의를 지우기 어려웠다. 더 결정적인 이유는, 예전에 어떤 포스팅에서도 얘기 했었던 바지만 어떤 철학자가 지적했듯 라캉을 읽는 사람들의 특징 중 하나를 들자면, 라캉을 읽고 라캉적으로 글을 쓰는 그 자체로 자신이 혁명을 하고 있다는 착각을 한다는 것 때문이다. 나 스스로도 그런 식으로 글을 썼고. 황석ㅇ의 소설 <개밥바ㄹ기 별>에서 유일하게 건질만 했던 얘기인 '(정작) 별은 보지도 않구 별에 대해 쓰는' 아이들을 떠올리게 한달까... 잡소리는 이만.


어쨌든, 진짜 <박쥐>는 볼만한 영화였다. 박찬욱 감독이 어떤 인터뷰에서였나 이 영화에 대해 후한 만족감을 표한걸 읽은 적 있는데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영화였다. 나야 영화 전문가도 아니고 뱀파이어 영화를 좋아하지 않았으니 얼마나 장르적 특성이 빼어난 건지 알 도리가 없지만 예전에 <놈, 놈, 놈>더러 '김치 웨스턴'이니 하고 비꼬는 이들이 많았던 걸 떠올리면 '김치 뱀파이어' 운운하는 말이 (별로) 없는 것만 봐도 꽤나 뱀파이어라는 소재의 특성을 나름 잘 살려서 만들었다는 것이리라. 그러니까, 적어도 뻔한 뱀파이어 물은 아니라는 느낌이었다. 캐릭터만 보더라도 송강호 자체가 미끈하고 길쭉하게 빠진 몸매에 창백한 얼굴을 가진 백인도 아니고, 또 흡혈할 때 이빨을 목에 쿡 꽂은 다음 쪽쪽 빨지도 않고.

사지절단, 피, 뾰족한 걸 무서워하는 나로서는 두 눈 퍼렇게 뜨고는 못 볼 장면들이 많았던 것도 사실이지만, 진짜 아름답다고 섹시하다고 느꼈던 부분도 한 두 군데가 아니었다(흐으;). 가끔 소름끼치기도 했으니까. 또 중간 중간 등장하는 블랙 유머들은 좀 많이 웃겼다. 나름 심각한 장면에서 인터넷과 자살 커뮤니티(?), 고해성사에 대한 송강호(상현 역)의 대사가 제일 기억에 남는다. ^^ 마지막 장면도 꽤 맘에 들었다. 대체 마지막을 어떻게 보여줄지 궁금했는데, 좀 길다 싶었지만 적당한 유머 감각으로 지루하지 않게 잘 끌고 가서 예쁘게(?) 끝낸 것 같아 괜히 내가 기분이 좋았다.

송강호는 예전 작품에 비해 조금 만족도가 (-)였지만 김옥빈(태주 역)이 예상 외로 너무 (+)여서 연기도 굉장히 만족스러웠다. 초반에 약간 어색하다 싶은 부분이 있었지만, 중반 쯤 진척된 후 감정 연기가 힘들었겠다 싶은 부분이 많았는데 그런 쪽에서 굉장히 놀라면서 볼 수밖에 없었다. 앞으로 어떤 역할을 맡을지는 모르지만 김옥빈 나온다면 꼭 챙겨 보리라! 그런데 강우 역을 맡은 신하균은 아쉽게도 좀 튀는 느낌이었다. 강우 역은 시원찮아야 하는데, 신하균이 나와서 연기를 하니 비중이 높은 캐릭터처럼 보였다. 존재감이랑 느낌이 강한 배우이기 때문에 이런 조연 역할은 그리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 그나저나 신하균님하는 진짜 왜 이런 역할만 ㅠㅠ 이것도 전문 분야인가요.. 오달수라든지 박인환이라든지 다른 조연 배우들의 연기는 만족 +_+

이건 번외 이야기이지만, 상현의 기도(독백)는 꽤나 맘에 들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저에게 다음과 같은 것을 허락하소서. 살이 썩어가는 나환자처럼 모두가 저를 피하게 하시고, 사지가 절단된 환자와 같이 몸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게 하시고, 두뺨을 떼어내어 그 위로 눈물이 흐를 수 없도록 하시고, 어깨와 등뼈가 굽어져 어떤 짐도 질 수 없게 하고서. 머리에 종양이 든 환자처럼 올바른 지력을 갖지 못하게 하시고, 영원히 순결에 바쳐진 부분을 능욕하여 어떤 자부심도 갖지 못하게 하시며, 저를 치욕 속에 있게 하소서. 아무도 저를 위해 기도하지 못하게 하시고, 다만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자비만이 저를 불쌍히 여기도록 하소서.” (씨네 21 기사에서 긁음) 나야 개신교 신자도 가톨릭 신자도 아니지만.. 난 누구(;;) 말마따나 무신론자만이 신앙을 가질 수 있다고 믿는다 -_-...



덧말 1. 송강호의 곧휴가 나온다고 호들갑 떨었던 사람들은 대체 무슨 생각을 하면서 영화를 본 건지 진짜 이해할수가 없다. 난 대체 어떤 장면에서 나오나 기다리기까지 했는데.. 암튼 같이 영화를 보던 사람들이 그 장면에서 탄성 아닌 탄성을 내지르는 것으로 보아 어떤 이들에게는 '혐오'를 유발하기는 하나 보다. 때론 공포나 혐오를 불러 일으키지만, 그러면서도 여전히 '파워'를 상징하는 그것은 여전히 흥미로운 분석 대상이다 진짜-_-.. 모순적으로 보이지만 연장선 위에 있으니 뭐.

덧말 2. 이 포스팅하면서 잠깐 찾을 게 있어서 검색하던 중에 '융드옥정'이랑 강우와 태주의 엄마로 나온 배우가 닮았다는 기사를 보고 피식 웃어버렸다 ㅎㅎ

덧말 3. 가장 궁금했던 것 하나. 송강호는 어디에서 온 어떤 피를 수혈 받았기에 뱀파이어가 된 것일까; 그 뱀파이어는 왜 헌혈한 것인가; 아님 어디에 뱀파이어 확산 위원회라도 있는 건가;

덧말 4. 어떤 작품이 원작이라는데, 그거랑 비교해서 보고 싶다. 초반에 등장하는 바이러스가 '백인과 아시아인만 걸린다'는 설정이 등장하는데, 영화에서는 그리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는 설정은 아니지마는, 그 원작에서는 어떻게 이 설정이 그려지고 있는지. 어떤 인종주의적인 정치적 무의식이 작동하고 있는지 알고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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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소이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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