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의 당선에 대한 지젝의 글을 번역해 옮겨 둔다. 나름대로 의역과 직역의 중간 쯤으로 해봤다. 이희재씨의 <번역의 탄생>을 보고 번역 방식 자체를 조금씩 저울질해보는 중이기 때문이다. 일종의 연습이랄까... 어쨌든 작년 11월 쯤에 올라온 글인걸로 아는데, 이제야 좀 한숨 돌릴 수 있게 되어 좀 늦은 감이 있지만 찾아서 보고 있다. 원문은 인터넷에 워낙 많이 돌아다니므로 패스. 놀라운 일은 아니지만 버틀러의 글도 있던데, 뒤늦게 발견하였기에 조만간 번역을 해둘까 하고^^ (번역을 해둬야 기억에도 오래 남고 나중에 들춰보기도 좋은 것 같다!) 언뜻 봤지만 버틀러의 글은 역시 너무나 버틀러스럽게도 해체적이고 일반적인 희망과 믿음에 의문을 강하게 제기한다. 나로서는 다소 의외지만 오바마의 승리에서 약간이나마 희망을 읽어내는 지젝의 글과는 묘하게 상충한달까. 지금으로서는 지젝의 글에서 힘을 얻고 있지만, 버틀러의 글, 독해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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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을 이용하라 _슬라보예 지젝
_translated by 비앙
노엄 촘스키는 사람들에게 ‘환상 없이’ 오바마에게 투표하자고 요청했다. 나는 오바마의 승리가 낳은 진정한 결과에 대한 촘스키의 의심에 심히 공감한다. 실용적 관점에서 봤을 때 오바마의 승리는 ‘인간의 얼굴을 한 부시’로 밝혀질 아주 작은 개선만을 가져올 공산이 크다. 그는 기본적으로 부시와 같은 정책을 좀 더 매력적인 방식으로 추구할 것이며, 결과적으로는 부시의 재임 시절에 겪은 재앙으로 손상을 입은 미국의 헤게모니를 효과적으로 강화할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반응에는 무엇인가 심히 잘못된 점이 있다. 아주 중요한 차원이 빠져있는 것이다. 오바마의 승리는 단지 다수자를 위한 끊임없는 의회에서의 투쟁과 그 투쟁이 포함하고 있는 실용주의적 계산과 조작의 변종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이는 더 많은 무엇인가의 징후이다. 이것이 그 어떤 환상도 갖고 있지 않은 나의 완고한 좌파 미국인 친구가 오바마의 승리 소식을 들었을 때 울었던 이유이다. 우리들이 의심이 어찌했든 간에, 바로 그 순간에는 우리들 각각은 모두 자유로웠고, 인류의 보편적인 자유에 참여하고 있었다.
<학부간의 논쟁(The Contest of Faculties)>에서 칸트는 단순하지만 어려운 질문을 던졌다. ‘역사에서 진정한 진보는 존재하는가? (그는 윤리적인 질문을 의미했지, 단지 물질적인 진보를 의미하지는 않았다)’. 그는 진보란 증명될 수 없지만, 진보가 가능하다는 점을 가리키는 징후는 식별해낼 수 있다고 결론을 내렸다. 프랑스 혁명은 자유의 가능성을 지시하는 바로 그러한 징후였다. 이전에는 생각할 수도 없던 일이 일어났고, 모든 사람들은 두려움 없이 자유의 평등을 주장했다. 칸트가 보기에 파리의 거리에서 벌어진 (자주 피가 흘렀던) 현실보다 더 중요한 점은, 유럽 전역의 공감적인 관찰자들의 눈에 보였던 프랑스 혁명의 열정이었다. 그리고 이는 서인도 제도의 공화국인 아이티(Haiti) 같이 멀리 떨어진 곳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곳에서는 또 다른 세계사적인 사건이 촉발되었다. 최초의 흑인 노예 반란 말이다. 이론의 여지는 있지만 프랑스 혁명의 가장 숭고한 순간은 아이티에서 온 투쌩 루베르뛰르(Toussaint l'Ouverture)가 이끄는 대표단이 파리를 방문한 뒤, 인민 의회가 그들을 열광적으로 평등한 자들 중에 평등한 자로 환영했을 때 일 것이다.
오바마의 승리는 signum rememorativum, demonstrativum, prognosticum이라는 3중의 칸트적 의미에서 역사의 징후라고 할 수 있다. 1 오래된 과거를 가진 노예제에 대한 기억과 노예제의 폐지를 위한 투쟁이 울려 퍼지는 징후이자 오늘날의 변화를 증명하는 사건이며 미래의 성취를 향한 희망이라는 것이다. 오바마의 당선에 대해 걱정하는 진보주의자들이 꽉 닫힌 문 뒤에서 보여주었던 회의주의("만약 공식석상에서는 부인되어온 인종주의가 투표소라는 비밀스러운 공간에서 다시 등장하면 어떻게 될 것인가?")는 잘못된 것으로 밝혀졌다. 근본적인 냉소주의적 현실주의 정치가인 헨리 키신저에게 흥미로운 점이 있다면, 그가 말한 예측의 대부분이 완전히 틀렸다는 점이다. 예컨대 1991년 반 고르바초프 군이 불시의 일격을 가했다는 소식이 서구에 전달되었을 때, 키신저는 즉각 그 새로운 정치체제를 사실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그 군사조직은 3일 뒤에 불명예스럽게 몰락해버렸다. 그 전형적인 냉소주의자는 아주 자신감있게 말할 것이다. "하지만 당신은 이 모든 것이 돈과 권력과 섹스 때문에 일어났다는 점을 볼 수 있을 겁니다. 원칙이나 가치에 대한 언명은 실상은 껍데기에 지나지 않는 말 뿐이고, 그 말들은 실상 아무것도 설명해 주지 않죠..." 그러한 냉소주의자들은 환상의 힘을 무시하는 그들 스스로의 순진무구한 분별력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한다.
오바마의 승리가 그러한 열정적인 반응들을 불러일으킨 이유는, 모든 역경을 딛고 실제로 오바마가 승리했다는 점 때문만은 아니다. 오히려 더 나아가 오바마의 승리 같은 일들이 일어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베를린 장벽의 붕괴 같은 위대한 역사적인 균열들도 이와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공산주의 정권의 썩어빠진 비효율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지만, 공산주의 정권이 실제로 무너질 것이라고 믿지는 않았다. 키신저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모두 냉소적인 실용주의의 희생자였다. 최소한 투표 2주 전에는 오바마의 승리를 예측할 수 있었지만, 그의 승리는 여전히 놀라운 것으로 여겨진다.
진정한 전투는 오바마의 승리 뒤인 지금 시작하고 있다. 그의 승리가 사실상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대한 전투 말이다. 특히 9/11과 최근의 금융 대폭락이라는 더 불길한 사건의 맥락에서는 말이다. 역사는 처음엔 비극으로, 두번째는 희극으로 반복된다. 부시 대통령은 각각 9/11 이후와 금융 대폭락 이후에 똑같은 내용의 연설을 다른 형식으로 발표했다. 두 경우 모두 부시는 미국적인 삶의 방식에 대한 위협이 있다는 점, 그리고 즉각적이고 확고한 행동이 필요하다는 점을 환기시켰다. 또한 부시는 개인들의 자유와 시장 자본주의를 보증하는 미국적인 가치를 지키기 위해서, 잠시동안 그 가치들을 부분적으로 유예시키자고 요청했다. 이러한 유사점은 어디에서 오는가?
1989년 11월 9일 베를린 장벽의 붕괴는 '행복한 90년대'의 시작이었다. 프랜시스 후쿠야마에 따르면 자유자본주의가 원칙적으로 승리했었던 그 시대는, 일반적으로 9/11 이후에 끝났다고 여겨진다. 하지만 유토피아는 두 번 죽었어야만 했다. 9/11 이후 자유민주주의적인 정치 유토피아가 붕괴되었다는 사실은 오늘날 종말로 치닫고 있는 전 지구적 시장 자본주의의 경제 유토피아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금융 대폭락 이후 이제는 전지구적 자본주의의 난잡한 불합리성을 무시할 수 없게 되었다. 에이즈, 기아, 물 부족, 지구 온난화와 싸우는 과정에서 우리는 그러한 문제들이 아주 시급한 문제라는 점을 잘 알고 있었지만, 다시 숙고하고 결정을 미룰 수 있는 시간들도 충분히 가졌다. 세계적인 리더들은 발리에 모여 기후 변화에 대해 이야기했고, 그 회합은 성공적이었다며 환영받았지만, 그 모임의 중요한 결과가 있다면 2년 뒤에 다시 모여 이야기를 이어가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금융 대폭락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무조건적으로 문제의 시급함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상상을 초월하는 어마어마한 돈도 순식간에 마련되었다. 멸종 위기에 처한 동물을 보호하고 지구 온난화로부터 지구를 지키며 에이즈 치료제를 찾고 굶주리는 아이들을 지키는 일은 어떻게 하고? 그 모든 일들은 잠시 기다릴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은행을 지켜라!'라는 말은 즉각적인 행동을 요구하고 또 즉각적인 행동을 낳은 무조건적인 명령문이다. 공포는 절대적이었다. 초국가적이고 초당파적인 조직이 즉각 만들어졌고, 세계적인 리더들 사이에서 이 모든 일에 책임이 있는 사람들이 지금은 이 재앙을 피해가야 한다는 이유로 잠시 동안 잊혀졌다. (말이 나온김에 말하자면, 꽤나 절찬을 받고 있는 '초당파성(bi-partisanship)'이라는 말은 민주적인 과정이 사실상 유예되었다는 뜻이다.) 숭고할 정도로 어마어마하게 많은 돈이 '진짜' 일을 해결하는데 사용되지 않고 시장의 '자신감을 회복'하기 위해서 사용되었다. 다시 말하면 시장에 대한 믿음을 회복하는 것이 그 이유였던 것이다. 자본이 우리의 삶의 실재, 즉 우리의 사회적이고 자연적인 현실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들보다도 더 절대적인 실재라는 점에 대해서는 두 말 할 나위가 없다.
미국에서만 7000억 달러가 단지 은행 시스템을 안정시키기 위해 투입되었다는 점과 가난한 국가의 식량 부족 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부유한 국가들이 220억 달러(실제로는 22억 달러만 쓸 수 있었다)를 투입하기로 했었다는 점을 비교해 보자. 식량 부족 위기에 대한 책임을 부패나 비효율성, 혹은 국가 개입주의에 돌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심지어 빌 클린턴 마저도 곡물을 전 세계 가난한 이들의 중대한 권리로 인식하지 않고 단지 일상적인 상품으로만 취급했다며 "나를 포함한 우리가 이 모든 것들을 망쳐버렸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클린턴은 자신이 한 개별적인 국가나 정부에 책임을 돌리는 것이 아니라, 미국과 유럽연합 또한 세계은행과 IMF 그리고 그밖의 다른 국제 기구들이 추진했던 서구의 정책에 책임을 돌리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국가들은 농부에게 지급되는 정부 보조금을 삭감하라는 압력을 받았고, 가장 기름진 땅을 돈 벌이가 되는 수출 작물을 기르는데 사용했다. 그러한 '구조 조정'의 결과로 전지구적 경제로 지역 농업이 통합되었다. 작물은 수출되었고, 농부들은 땅을 빼앗기고 노동 착취 공장으로 끌려 들어갔으며, 가난한 국가들은 점점 더 수입 작물에 의존하게 되었다. 이러한 방식으로 가난한 국가들은 탈식민주의적인 종속 상태에 빠져들었고, 시장의 성쇠흥망에 취약하게 되었다. 즉 (부분적으로는 생물 연료(biofuels)에 사용되는 곡물 때문에 일어나기도 하는) 곡물 가격의 상승은 곧 아이티로부터 에티오피아에 이르는 국가의 기아 상태를 의미한다는 것이다.
"음식은 다른 것들과 달리 일상적인 상품이 아니다. 우리는 완전히 자급자족하는 식량 정책으로 돌아가야만 한다. 자급자족하는 능력을 기르지 않은 채로 전 세계의 국가들을 발전시킬수 있다고 믿었다니 미친게 틀림없다"고 말했던 클린턴은 옳다. 허나 최소한 2가지가 덧붙여져야 한다. 먼저 서구의 선진국들은 그들의 농부들에게 재정적인 지원을 함으로써 식량 자급자족을 유지하는데 큰 힘을 기울였다는 점이다. 농장 보조금은 유럽 연합의 전체 재정의 거의 반이나 된다. 두 번째로 "다른 것들과 달리 일상적인 상품"이 아닌 것은 훨씬 더 많다는 점이다. 음식 외에도 모든 애국자들이 알고 있는 방어라든지, 물, 에너지, 환경, 문화, 교육, 건강이라든지 하는 것들 말이다. 만약 그것들이 시장에 맡겨질 수 없다면, 누가 그것들에 대해서 결정을 내릴 것인가? 바로 여기서 공산주의의 문제가 다시 제기된다.
2006년 6월 5일 타임지의 커버 스토리는 '세계에서 가장 치명적인 전쟁'이었다. 그 기획은 지난 10년간 콩고에서 4백만명의 사람을 죽인 정치적인 폭력에 대해서 자세히 다뤘다. 허나 통상적인 인도주의 시위도 없었고, 단지 2개의 독자 편지가 반응의 전부였다. 타임지는 희생자를 잘못 골랐던 셈이다. 타임지는 무슬림 여성이나 티베트의 승려들을 선택했어야 했다. 이스라엘이나 미국 아이는 말할 것도 없지만 팔레스타인 아이의 죽음이야말로 이름 없는 콩고 사람의 죽음에 대한 기사보다 몇 배는 많은 분량으로 다뤄질 가치가 있다. 왜 그런가? 10월 30일에 AP통신은 콩고의 동부지역 수도인 고마(Goma)를 포위하고 있던 반란군의 장군인 로렌 은쿤다(Laurent Nkunda)가 정부와 직접 대화를 원한다고 말했다는 사실을 보도했다. 고속도로와 철도에 대한 보상으로 중국에게 수십억 달러 어치나 되는 풍부한 콩고 천연광물의 채광권을 제공하겠다는 조약을 반대한다는 이유였다. 신식민주의적인 문제는 잠시 제쳐 놓고 보더라도, 이 협상은 콩고 민주공화국이 통일된 국가로 기능하기 위해서 필요한 인프라를 구축할 것이었기에, 지역 군벌의 이해관계에는 치명적인 위협을 제기하는 것이었다.
2001년 UN은 콩고 천연자원의 불법 착취에 대해 조사를 시작했고, 콩고의 주요 갈등 원인이 콜탄(contan), 다이아몬드, 구리, 코발트, 금이라는 다섯 개의 주요 광물 채광권과 관리권, 그리고 무역권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 조사에 따르면 지역 군벌과 외국 군대의 콩고 천연자원 착취는 '체계적이고 조직적'이었다. 르완다 군은 휴대폰과 노트북에 쓰이는 콜탄의 판매로 18개월 동안 최소 2억 5천만 달러를 벌어들였다. UN의 보고서는 콩고의 영원한 내전과 분열은 "모든 수혜자들에게는 '윈-윈'이었다. 이 거대한 비즈니스 벤처의 유일한 패배자는 콩고 사람들이었다"고 결론 내린다. 이 종족 전쟁이라는 탈을 쓴 현실 속에서 우리는 전 지구적 자본주의의 윤곽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가장 극심한 착취 세력은 14년전 제노사이드의 희생자였던 르완다의 투치족들이다. 올해 초, 르완다 정부는 제노사이드에 대한 미테랑 행정부의 공모 관계를 보여주는 문서를 발행했다. 프랑스는 영어를 사용하는 투치족을 희생시키고 르완다 내의 영향력을 회복하기 위해 심지어 무기까지 제공하면서 후투족의 계획이 실행되도록 도왔다. 프랑스는 근거가 전혀 없다며 철저하게 그 고발을 기각했지만, 암만 좋게 봐도 그러한 행동이야 말로 근거가 전혀 없다. 아마도 미테랑을 그의 사후에라도 헤이그 국제 형사 재판소로 데려가는 일은 자유와 민주주의, 인권의 보호자로 활동한다고 사칭했던 일류 서구 정치가를 최초로 재판에 붙이는 것이기 때문에 중대한 선을 넘는 일이 될 것이다.
최근의 질서에 대한 위협과 맞서 싸우기 위해 최근 몇 주 동안 아주 특별한 방식으로 지배 이데올로기가 동원되었다. 예를 들자면 프랑스의 신자유주의 경제학자 기 소르만(Guy Sorman)은 최근 아르헨티나에서의 인터뷰에서 "이 위기는 충분히 짧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렇게 말함으로써 소르만은 이 금융 대폭락을 다루기 위한 기본적인 이데올로기적 요구를 충족시켰다. 즉, 상황을 다시 정상화하는 것 말이다. 그가 다른 곳에서 말했듯이, "기술 혁신과 그 자체로 좋은 경제 정책의 힘을 받는 기업가 정신에 의해 추동되는 낡은 것을 새로운 것으로 끊임없이 바꾸는 과정은 부유함을 낳는다. 비록 충분히 이해할만하게도 자신들의 직업이 잉여에 지나지 않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사람들이 이 과정에 반대한다고 할지라도 말이다." (이러한 재정상화 작업은 그 반대와도 공존한다. 다시 말해, 권력자들이 제시한 분명 불공평한 것이 틀림없는 해결책들을 대중이 불가피한 것인양 납득하도록 하기 위해 공황이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소르만은 시장이 비합리적인 행동으로 가득차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만, 재빨리 "과도한 정부 규제를 복원시키는 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해 행동주의 경제학을 사용하는 것은 터무니 없는 얘기다. 결국 국가는 개인보다도 합리적이지 않게 될 것이며, 그러한 국가는 결국엔 거대한 파괴적인 결말로 치닫게 될 것이다"라고 덧붙인다. 그는 계속해서 이렇게 말한다.
"경제 사이클과 정치적인 압력의 위기에 직면한 민주주의 정부와 지도층들의 주요한 임무는, 인류에게 훌륭히 봉사해 온 바로 그 체제를 방비하고 보호하는 것이지, 그 체제가 불완전하다는 점을 구실로 더 나쁘게 만드는 것이 아니다. 여전히 이러한 훈계는 의심할 여지 없이 대중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언어로 번역되기 가장 어려운 것들 중 하나다. 이 세계에서 가능한 경제 체계 중 가장 뛰어난 것은 사실 불완전하다. 경제 과학에서 발견되지 않은 진실이 무엇이든, 자유 시장이야 말로 인간 본능의 유일하고 최종적인 반영이며, 그 자체로 거의 완벽해질 수 없는 것이다."
이데올로기의 기능은 더 명징한 용어로는 거의 설명되지 않는다. 심각하게 제기되는 비판에 대항하여 현존하는 체계를 옹호하기 위해 그는 자유 시장을 인간 본능의 직접적인 표현이라고 정당화하기에 이른다.
2008년의 금융 대폭락이 외면상 불행해 보이는 행복이 된다거나, 꿈에서 깨어나는 일이 된다거나, 우리가 전지구적 자본주의의 현실에서 살고 있다는 일에 대한 분별력있는 암시가 된다거나 할 가망은 없는 것 같다. 이는 금융 대폭락이 어떻게 상징화되며, 어떤 이데올로기적 해석이나 이야기가 그 위기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을 결정하느냐에 달려있다. 사물의 일반적인 운영이 외상적일 정도로 중단되면, 그 장(field)은 '광범위한' 이데올로기적 경쟁에 활짝 열리게 된다. 1920년대 후반 독일에서 히틀러는 어떤 내러티브가 바이마르 공화국의 위기에 대한 이유와 그 위기를 탈출하는 방법을 설명할 수 있는가를 결정하는 경쟁에서 승리했다. 1940년 프랑스에서 마레샬 페텡은 2차 세계대전 초 프랑스의 패전 이유를 찾는 컨테스트에서 우승했다. 따라서, 오래된 맑스주의적 용어로 말하자면 현재의 위기에 대한 지배 이데올로기의 주요 전략은 전 지구적 자본주의 체계의 붕괴에 대한 책임을 그 자체로 돌리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의 일탈(느슨한 규제, 큰 금융 조직의 부패 등)로 책임을 돌리는 내러티브를 강요하는 것이다.
이러한 경향에 대항하면서 누군가는 중요한 질문을 던져야만 한다. 즉, 이 자본주의 체계 그 자체의 어떤 '약점'이 그러한 위기와 붕괴의 가능성을 열어 젖혔는가? 라는 질문 말이다. 여기서 가장 먼저 명심해야할 점은 이 위기의 기원이 '자비로운'일이었다는 점이다. 2001년 닷컴 거품이 무너진 뒤, 불경기를 막고 경제를 유지하기 위해 부동산 투자를 촉진시키자는 결정이 당의 정책 노선을 휩쌓았다. 오늘날의 금융 대폭락은 7년전 피했던 불경기의 대가이다.
따라서 진짜 위험은 금융 대폭락에 대한 지배적인 내러티브가 우리를 꿈으로부터 깨워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계속해서 꿈꾸도록 만드는 것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여기서 부터 우리는 걱정해야 한다. 금융 대폭락의 경제적 결과 뿐 아니라, "테러와의 전쟁"을 다시 활성화하고자 하는 명백한 유혹, 그리고 경제를 유지하기 위한 미국의 개입주의에 대해서도 걱정하기 시작해야 한다. 오바마의 승리로 결정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 하지만 오바마의 승리는 우리의 자유를 넓혀 놓았고, 그 결과로 우리들의 선택 폭도 넓혀 놓았다. 무슨 일이 일어나든지 오바마의 승리는 그의 승리가 없었더라면 어둠의 시대에 살았을 우리들에게 희망의 신호이며, 좌파든 우파든 현실주의적인 냉소주의자들에게 최후의 언어가 속해있지 않다는 신호이다. _끝
- 인터넷 검색을 조금 해봤지만 도무지 알 수 없어서 일단 원어로 옮겨 둔다. 혹시 아는 분들 있으면 좀 헬프 미ㅠ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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