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한 다양성과 단조로운 유사성 사이에서. 소이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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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노트 / 2007/06/28 00:39
슬라보예 지젝, <How to Read 라캉>, 웅진지식하우스, 2007, pp.40~46

요즘 한 책만 줄곧 파고드는 것이 아니라 정신 없이 이 책 저 책 읽고 있다. 덕분에 머리 속에 남는 것이 하나도 없는 듯 하다만. 어쨌든 봤던 책도 다시 봐야 기억에 남겠다 싶어 예전에 봤던 책들을 다시 훑어보고 있다. 그 중에 오래전부터 퍼오고 싶었던 부분을 여기에 옮겨 둔다. Special thanks, 용. 글의 강조는 Namunnib이.


(...) 이 이상한 기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널리 알려진 상호 작용(interactivity)이란 개념에 상호 수동(interpassivity)이라는 기이한 짝패를 보충할 필요가 있다. 새로운 전자 미디어의 출현으로 텍스트나 예술 작품에 대한 수동적인 소비가 불가능해졌다는 것은 오늘날 하나의 상식이다. 나는 단순히 스크린을 응시할 수만은 없다. 나는 점차 스크린과 상호 작용하며 (프로그램을 선택하는 것에서부터 가상 공동체의 논쟁에 참여하는 것이나 소위 '쌍방향 서사'의 플롯을 결정하는 데 직접 참여하는 것까지) 대화적 관계 속으로 들어간다. 뉴미디어의 민주주의적 잠재성을 찬미하는 사람들이 초점을 두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사이버 공간이 수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타자가 연출한 스펙터클을 따르기만 하는 수동적 관람자의 역할에서 벗어나 스펙터클에 능동적으로 참여할 뿐 아니라 스펙터클의 규칙을 수립하는 데까지 나아가게 한다는 것이다.

이 상호 작용의 또다른 측면이 상호 수동성이다. 대상에 상호 작용하는 것의 이면은 (단지 수동적으로 쇼를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대상 자체가 나 대신 수동성을 갖는 것, 내게서 수동성을 빼앗는 것, 그래서 대상 자체가 나 대신 쇼를 즐기고 자발적인 향략의 의무에서 해방시켜주는 상황이다. 꼬박꼬박 드라마를 녹화하는 녹화 비디오 애호가들(나도 그들 중 한 명이다)이라면, 그렇게 녹화 비디오를 갖게 됨으로써 오히려 옛날의 단순한 TV 시청 때보다 실제적으로는 드라마를 덜 보게 된다는 사실을 잘 알 것이다. TV를 시청할 시간이 거의 없기 때문에, 소중한 저녁 시간을 TV 시청에 날려버리는 대신 간편하게 녹화를 해 두고 나중에 보려고 한다(물론 그걸 볼 시간도 없다). 실제로는 필름을 안 보지만 내가 좋아하는 필름이 내 비디오 수집함에 있다는 사실은 내게 커다란 만족감을 주며 가끔씩 소박한 긴장 완화와 달콤한 무위의 예술에 몰입할 수 있게 해준다. 마치 녹화 비디오가 나를 대신해서 나를 위해 필름을 보고 있다는 듯이. 여기서 녹화 비디오는 상징적 등록의 매체로서 대타자의 역할을 한다. 오늘날 포르노그래피 역시 점차 이렇게 상호 수동적으로 작동하고 있다. X등급 영화는 더이상 그(혹은 그녀)의 은말한 자위행위를 돕는 수단이 아니다. 단지 '행위가 이뤄지는' 스크린을 응시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다른 사람들이 내 대신 즐기는 걸 관찰하는 것으로 충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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