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한 다양성과 단조로운 유사성 사이에서. 소이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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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 2009/01/11 21:45

사정 상 부모님과 함께 살게 된지 이제 거의 2개월 정도 되어 간다. 워낙 놀고 보고 먹을 거리도 없고 밤 10시만 되면 온통 어두컴컴해지는 곳인지라 외출할 곳이 마땅찮기 때문에 일이 끝난 뒤나 주말에는 주로 집에서 죽치고 있는 편이다. 이런 사정은 부모님도 마찬가지다. 연말을 제외하고는 일주일에 한번 있을까 말까한 '회식', 한달에 두세번 정도 있는 친목 모임 외에 부모님이 외출할 일도 그리 많지 않다. 그것도 늦어야 저녁 9시면 귀가다.

그런데 가끔 부모님이 아주 늦게 귀가하는 경우가 있다. 다른게 아니라, 장례식 탓이다. 괜한 감상에 젖는 것 같아 좀 싫지만, 최근에는 정말 많은 상갓집들이 있었다. 부모님도 하루가 멀다하고 상갓집에 다녀오신다. 내가 지금 '일'하는 곳에서도 도로 쪽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적어도 1달에 두 번 정도는 장례 행렬이 지나가는 걸 볼 수 있다. 건조하기 짝이 없는 인구학적 용어를 쓰자면 '출생율' 보다 '사망률'이 월등히 높은, 그 이름도 진부한 '시골'에서 내가 지금 거주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나와 친밀한, 혹은 친밀하다고 간주되고, 친밀해야만 한다는 압박이 있는 관계에서 죽은 사람은 사실 없다. 허나 서울에서 살 때는 전혀 느낄 수 없는, 그런 분위기를 느낄 때마다 너무 곤혹스러워지고 있다. 물론 나는 그러한 부고 소식을 접할 때마다 애도해야 할 사회적인 의무도 없고 실제로 애도해야만 한다는 모종의 압박도 전연 느끼지 않았다. 부모님이 어디 모씨네 상갓집에 다녀왔노라고 말하면 나는 그저 고개 한 번 끄덕-이면 그만이었다. 어떤 윤리적-정치적 '범죄'에 의한 죽음이 아니라, 그저 질병과 장수로 인한 죽음이 대다수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나에게 어떠한 의미로도 다가오지 않았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러나 이러한 곤혹감, 혹은 뚜렷하게 잡히지 않는 무서움은 대체 뭘까.

요즘엔 술을 잘 마시지 않는 아빠가 며칠 전에는 불콰한 얼굴로 밤 늦게 귀가한 날이 있었다. 이유인 즉슨, 아빠의 초등학교 동창이 죽었다는 것이다. 엄마는 저녁을 먹으면서 아빠 친구가 죽었다는 소식을 여느 때처럼 무심히 전했다. 정말 별일 아니었는데, 병원에서는 그저 진단 결과 받으러오라고만 해서 병원에 가는 길이었을 뿐인데, 그냥 죽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날 아빠는 좀 흔들려 보였다(물론 이건 나의 상상일 뿐일지도 모른다). 3일 뒤, 주말, 나는 늦잠을 잤고 아빠는 아침 일찍 어딘가를 갔다가 점심 때가 되어서 돌아왔다. 어디 갔다 오셨냐고 무심히 묻는 나에게 아빠는 역시 무심한 말투로, "친구 묻고 왔어"라고 대답했다.

왠지는 모르겠지만, 그 순간이었다. '죽음'이라는 말이 너무 곤혹스럽게, 혹은 무섭게 다가온 순간 말이다. 나는 그날 이후로 죽음에 대해 상상하고 준비하기 시작했다. 가족에게는 늘 건조하고 무심한 제스처를 취해오던 나였고 여전히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지만, 적어도 가족의 '죽음' 앞에서는 그럴 순 없을 것 같고 그래서도 안 될 것 같기 때문이다. 그 날 이후로는 부모님이 상갓집에 갔다 왔다고 말할 때마다 가슴이, 심장이, 마음이, 덜컹, 하고 무너지는 것 같다.


이런 것, 너무 싫다. 어서 멀리 멀리 도망가버리고 싶다. 신문의 한쪽 구석을 차지하는 '부고란'에 쓰인 이름들처럼(부고란의 '정치'는 너무 싫지만), 그리고 내가 예전에 느껴왔고 행동했던 것처럼, 그저 무미건조하게 죽음들이 스쳐지나가버리면, 제발 그래주면 좋겠다. 죽음을 연상시키는 검버섯을 부작용이 거의 없는 새로운 성형 수술 기계로 간단히 제거하는 이 지역의 몇몇 노인들처럼, 지금 이 내 나의 이런 곤혹스러움과 무서움도, 간단히 제거될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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