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한 다양성과 단조로운 유사성 사이에서. 소이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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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 2009/01/05 21:16

2~3주마다 한 번씩 서울에 갔다 오고 있다. 토요일 아침(무려 7시 10분차!)에 가서 일요일 저녁에 돌아오는, 1박 2일 코스로. 휴일이 겹친다면 더 긴 시간 보낼 수 있을테지만, 올해는 명절 포함해서 겨우 6일 밖에 휴일이 없으니(명절 빼면 고작 2일이다! -_-) 그나마 1박 2일이라는 시간 동안이나마 '소비'를 하고 돌아올 수 있다는 점이 참 소중한 것 같다. 뭔가를 사서 내것으로 만들었다는ㅡ어쩌면 '천박'하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ㅡ느낌이자 환상. 그런 환상으로 이 내 답답한 일상에 대해 보상하고 있다니 좀 슬프기도 하지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게 이것 밖에 안 보이는걸. 물론 친구들 만나고 하는게 더 중요하지만. ^^



어쨌든, 이번 서울 나들이에서는 은근히 수확이 많다. (자랑자랑)

우선 <바시르와 왈츠를>을 스폰지에서 봤다. 진작에 종영한 줄 알았는데 여전히 하고 있어서 다행이다. <바시르>는 내가 보아왔던 흔한 애니메이션의 문법과는 전연 달랐다. 시작하자마자 등장하는 강렬한 영상 덕에, 다소 건조한 분위기로 전체 서사를 이끌어 나감에도 불구하고 집중해서 볼 수 있었다. 조조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졸렸을 법도 한데. 어쨌든 그러한 강렬한 충격을 주었던 영상들은 '영화적' 문법으로는 재현하기 힘든 것일테다. 오로지 추상화되거나 압축된, '그림'이라는 문법으로만 가능한, 그런 영상. 그래서 이 애니가  다큐멘터리인지(그래서 재현의 방식만 애니메이션인지), '애니메이션'인지 불분명하게 구분된다는 점도 좋았다. 왜, '팩션'이라는 장르가 주는 쾌감도 있지 않나. 팩션도 팩션 나름이지만. 실제 사건(학살)에 기반한 서사 위에 애니메이션에서만 가능한 영상미를 최대한으로 끌어올린 결과물이랄까.

또한 트라우마, 기억, 은폐(기억의 억압), 폭력을 다루는 서사들이 대개 '피해자'의 입장에서 기술되는 것과는 달리 '가해자'의 입장에서 기술된다는 점도 인상깊다. '피해자 서사'에서 '가해자'는 많은 경우 '악' 그 자체로 재현된다. 그렇게 '경악'의 대상이 됨으로써 서사를 접하는 이들에게 일종의 충격을 주는 효과도 얻을 수 있고, '피해자 공동체'의 기억의 (재)구성을 통한 연대를 모색하는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정치적) 효과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효과에도 불구하고 '피해자 서사'는 여러 가지 문제점들을 지닐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에 정리해서 언급하기로 하고, 하나만 언급하자면 아렌트가 말한바 '악의 평범함(혹은 진부함) the banality of evil'에 대해서 그 어떤 썩 괜찮은 대답도 하기 어렵다는 점을 들고 싶다.

물론 '가해자 서사'는 그 자체로 위험한 시도가 될 수 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청산'되지 못한 수많은 역사적 폭력들에 대한 일종의 심리적 면죄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치 같잖은 성폭력 가해자 옹호론 같달까. 하지만 <바시르>의 '가해자 서사'는 다른 방법론을 제기한다. 이 애니메이션을 보기 전에 섣부른 '도덕적 죄책감'으로 서사를 포장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있었는데, <바시르>는 그런 걱정을 일소해주었다. 역사적 사건의 행위자들이 반드시 지녀야할 윤리적 책무(의무)는 분명 '도덕적 죄책감'하고는 다를 수 있(고 있어야 한)다. 죄책감이 윤리적으로 책임지는 태도로 곧장 연결되기 위해서는, 분명 쉽사리 뛰어 넘기 힘든 어떤 비약과 도약(quantum leap)이 있어야 한다. <바시르>는 그러한 윤리적 책무에 도달하기 위한 어떤 힌트와 단서를 제공한다. 더 길어질 것 같아서 생략.



그리고는 덕수궁 미술관에서 (거의) 공짜로 하고 있는 <근대를 묻다ㅡ한국근대미술 걸작전>을 보고 왔다 ㅎㅎ 이 행사의 취지는 상당히 불손(!) 한 것 같았지만, 이런 규모의 전시회를 덕수궁 입장료만 내고 무료로 볼 수 있다는 점이 어디랴. 상당히 많은 근대 화가들과 그림들을 건질 수 있었다. 게다가 '근대'라는 말이 주는 매력과 판타지가 있으니까 말야. 나중에 뭐 발표할 때나 보고서 쓸 일이 있을 때 써먹으면 좋겠다 싶은 그림들이 몇 있어서 열심히 팜플렛에 적어왔는데, 정작 구글링했을 때 나오는 것들은 몇 없었다 orz 이런 현상도 흥미롭다. ㅋ 근대 (지식인) 남성 화가들의 멘탈리티가 엿보이는 작품들이 몇 개 있었는데, 인터넷에서 그 그림들을 찾을 수 있다면 언젠가는 포스팅하고 싶다.

그나저나 사람은 왜케 많았는지; 좀 주의깊게 보려고 해도 전혀 되질 않았다. 하기사 방학이었으니까. 소리 지르며 서로를 잡아 채려드는 아이들도 많았고, 전시 감상에 방해가 되는 잡담을 나누는 사람들도 너무 많았고. 이런 전시회는 아침에 사람들 별로 없고 조용할 때 와서 봐야하는데..



또 <쌍화점>도 보았다! (꺅!)

<미인도>보다 야하다는 사람이 많던데, 나는 둘다 *-_-*... 두 영화 모두 야하지만 나에게 폭력적으로 다가오지 않아서 꽤나 몰입해서 볼 수 있었다. 크로넨버그가 과연 이런 영상들을 찍을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그 누구라도 같이 봤다면 조금 민망할 수도 있었겠다 싶었다. 사실 뭔가 더 아우라가 있어 보이는 영상은 <미인도>의 영상들이었다. 영화 상에서 캐릭터 간의 관계 형성 과정이 <쌍화점>이 더 치밀해서 그렇지, 영상 그 자체로는 <미인도>에 손을 들어주고 싶다.

주진모의 연기는 정말 대단했다. 사랑, 질투, 폭력, 애증의 감정들이 눈빛에 그대로 살아나서 나는 정말이지 후덜덜 했달까. 내가 이제는 경험할 수 없을 것만 같은, 나를 깊숙한 구석에서부터 온통 뒤흔들어 놓는 감정들을 담은 눈빛을 화면에 마구 쏘아낼 수 있다니. 송지효는 기대 보다는 좀 못 미쳤지만, 아마 이는 송지효의 극중 역할 때문이었을 것이다. 3각 관계에서 상당히 애매한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그 둘에 비하면 우리 인성씨는 애기였다, 애기. 후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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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소이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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