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결산. 생각나는대로 업뎃 예정. ^^
2008년의 앨범
단연 이것!
브로콜리 너마저의 <보편적인 노래>. 앨범 표지의 이 아이는 왠지 소희를 닮았다네ㅎ
앨범에 실린 전곡의 가사에서 느껴지는 엄청난 매력도 매력이지만, 세상에, 노래 제목으로 '보편적'이라는 말을 누가 (감히) 넣을 수 있었겠으며, 실제로 넣었다 한들 얼마나 성공적이었을까. 그러나, 브로콜리 너마저는 훌륭히, 아주 탁월하게 해냈다! ㅋㅋ (심지어 이 블로그의 설명에 '보편'이라는 말을 넣을까도 고민했다. 이들 덕분에)
예전 EP앨범 내고 잠시 활동할 때, 그들을 실제로 보지 못한 것이 한이 된다-_-.. 비록 무기한 활동 중단이라고는 하지만, 언젠간 다시 볼 수 있겠지!
2008년의 BEST 영화
사실 2008년의 영화로, 얼마 전까지만해도 이윤기 감독의 <멋진 하루>를 꼽고 있었다. 그런데 바로 어젯밤, 마치 계시처럼, 다른 영화가 내게 찾아왔다. 김지수씨가 주연을 맡은 <여자, 정혜>. 감독은 같은 이윤기 감독. (이런 감독주의(?) 혹은 작가주의로부터 벗어나고픈데-_-)
<멋진 하루>에서 하정우씨를 '발견'한 것, 그리고 전도연씨를 '확인'한 것은 물론 큰 수확이었다. 그리소 서울의 '재발견' 역시도 큰 수확. 서울을 배경으로 이런 감정들을 불러일으킬 수 있었다니. 예전부터 전도연씨를 좋아하기는 했지만.. (2007년 생일에는 무려 전도연님을 실제로 보았다 ㅋㅋ)
<여자, 정혜>를 2008년 본 영화중 최고로 꼽은 이유는, 물론 가장 최근에 봤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나를 옭아매고 있던 몇 가지 문제들에 대한 해답을 건네주었기 때문이다! 이 영화를 페미니즘(적??)으로 볼 수 있고 또 실제로 보는 사람도 많은 걸로 알지만, 내가 이 영화를 좋게 생각하는건 적어도 이번엔 그런 맥락은 아니라는 점만 얘기해두고 싶다. 그렇다고 이 영화를 '자폐적'이라니 등등 운운하는 사람들은 정말 이해가 (잘 되기 때문에) 안 된다.
조금만 덧붙이자면, 나는 2004년 이 영화가 개봉된 이후 이 영화를 둘러싸고 오갔던 수많은 얘기들에는 시큰둥한편이다. 포스터이미지에 있는 "사랑, 할 수 있다는 희망"은 이 영화(실은 김지수씨가 맡은 역할)에 대한 심한 모욕이라 생각한다는 ㅎㅎ
실은 올해 영화쪽으로는 엄청난 수확은 없다 orz
2008년의 WORST 영화
단연 이 영화다. 영화 잡지들, 특히 필름 2.0에서는 大 특집 기사를 냈었고, 실제로 많은 이들이 기대를 했던 영화이기에 나름대로 기대감이 컸다는 점이 이 영화를 나름 WORST로 꼽은 배경이겠다.
이전에 개봉했던 크로넨버그의 <폭력의 역사>는 나름대로 충격이었다. 내가 봐온 영화의 문법들에서는 쉽게 나타날 수 없는 '폭력' 씬들은, 영상에 대한 나의 지평에 일종의 폭력을 가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번 <이스턴 프라미시스>는 좀 아니다. 필름 2.0에서 어떤 비평가가 최고로 꼽았던 목욕탕 격투 씬은 밍밍하기 짝이 없었다. 맞고 때리는 소리와 신음소리만 좋은 스피커에서 꽝꽝 울리게 깔고 비고 모텐슨이 홀딱 벗고 나와서(몸매가 썩 맘에 들지도 않았고) 치고 받고 베고 찌르고 사우면 뭐, 훌륭한 폭력에 대한 성찰이고 영상 미학인가?
<폭력의 역사>의 위업에 비하면(사실은 그 위업이라고 해봐야 실상은 초라한 것이지만) <이스턴 프라미시스>는 형편 없는 편이라 할 수 있다. <폭력의 역사>는 일상적인 폭력, 혹은 일상 속에 감추어진 폭력을 매력적인(?) 영상을 통해 제공해줌과 동시에, 그 폭력을 둘러싼 엄청난 심리적 갈등과 불안을 포함한 감정상태들 역시 잘 보여줬었다고 믿고 있다. <이스턴 프라미시스>를 보면서는, 조악하기 짝이 없는 상징들에 실망했고, 전혀 흥미롭지 않은 씬들에도 실망했다. 사실 개인적으로 '조폭물'에 오래전부터 '신물'이 나 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크로넨버그는 이 프레임을 좀 벗어 났으면 좋겠다.
2008년의 소설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은 내가 처음 접한 김연수씨의 소설이었다. 그건 심히 잘못된 선택이었다. 김연수 입문으로는 적어도 나에게만큼은 적절하지 않았던 셈이다. 그 소설에 등장하는 특수한 소년적 자아는, 다소 신비롭게 묘사되는 여성-타자를 매개로 더 큰 보편적 자아로 성장한다(지극히 전형적인 '소년 드라마'다). 그는 이제 역사를 등에 업고, 역사의 행위자가 된다. 이 여성-타자는 이 유아적 소년적 자아의 역사적 보편 남성 자아로의 성장을 위한 소실 매개자(vanishing mediator)이다. 게다가 그리 될 수 있는 시대적 배경은 나에게는 '경외'(경의를 표하지만 동시에 멀리할 수밖에 없는)의 대상인, '80년대' 였다. 그래서 싫었다. 이렇게 어긋난 만남은, 그의 소설집 <내가 아직 아이였을때>로 이어졌다. 그 소설집은 물론 재미있었고, '빵집 자식'에 대한 나의 선망을 키워주기에 충분했지만,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에서 볼 수 있던 그 '소년적 자아'의 맹아를 보는 것 같아서 심히 불편했다. 물론 이런 소년적 자아는 아예 소실되어 버리고(이 자아를 반드시 미워만 할 수는 없다) '이무기 컴플렉스'와 '메시아 컴플렉스'에 사로잡혀 엉뚱하다못해 해괴하게 변하고, 종내에는 몰락하고야 마는 몇몇 유명 한국 남성 소설가들에 비하면, 김연수씨는 역시 좋아할 수밖에 없었지만.
그러다가 '발견'한 것이 <나는 유령작가입니다>이다. 그리고 이어 발견한 것이, 비교적 최근에 발간된 <밤은 노래한다>. 물론 <네가 누구든...>과 <내가 아직...>에서 볼 수 있던 자아들의 '흔적'이 발견된다는 점은 여전히 불편하고 신경이 거슬리지만, 그 자아의 틀에 사로잡히지 않고 새로운 문제 의식들(내게는 역사 인류학적인 의미로 다가온)을 제공해주었다. 나는 <나는 유령작가입니다>에 나오는 몇몇 문장들을 옮겨 썼다. 그만큼 좋았기 때문에 ㅎㅎ <밤은 노래한다>는, 김연수씨의 블로그(http://larvatus.egloos.com)에서 제공되는(?) '아키 라디오'를 통해 <밤은 노래한다 Sound Track>을 들으면서 재차 읽어볼 계획이다. '사운드 트랙'이란 표현을 보고 피식 웃으며 들었지만, 선곡이 정말 탁월했다.
그나저나 내가 종종 찾아가는 블로그의 주인인 한 문화평론가는 <밤은 노래한다>를 보고서 김연수는 어쩔 수 없는 386작가이며 이 소설에서는 역사가 픽션을 너무 침해했다고 말했지만, 나로서는 결코 동의할 수 없는 말이다.
최근에는 그의 산문집 <여행할 권리>를 읽었다. <밤은 노래한다> 출판 이전에 나온 산문집인데, 기대 이상이었다. 몇몇 거슬리는 구절들을 빼고는, 앞으로 여행갈 때 이런 책 한 권씩은 꼭 들고 가야지 싶다. 게다가 <밤은 노래한다>에서 느껴졌던 김연수씨의 수많은 고민들, 그리고 그 고민들과 함께 했던 잠들 수 없는 밤의 흔적들을 느낄 수 있었다!
쓰다보니 의도찮게 길어졌는데... 사실 더 쓰고픈 말은 많지만 이후 '김연수論'포스팅으로ㅋㅋ
2008년의 소설가
소설가 한강씨. 아 진짜, 배수아씨 이후로 이런 충격은 처음이었다. 배수아씨가 소행성급이었다면, 한강씨는 빅뱅(아 빅뱅도 좋아)급 충격이었다. 위에 베스트 소설을 꼽아놓고 따로 베스트 소설가로 한강씨를 꼽은 이유는, 한강씨의 작품에 더 많은 의미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처음 접한 한강씨의 소설집은 작년에 읽은 <채식주의자>였다. 3부로 이어지는 연작 소설인데, 1부만 읽고서 그만 겁에 질려서 놓아버렸다. 그 뒤로 <그대의 차가운 손>, <검은 사슴>, <내 여자의 열매>를 읽어 나갔고, 그 작품 하나하나마다 가슴 속 유리창에 쩌럭쩌럭 금이 가는 소리를 들으며 읽어 나갈 수밖에 없었다. 읽고서는 감정적으로 탈진해버릴 때가 많았다. 읽고는 뭔가를 쓰고 싶어지기는 하는데, 도저히 손을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말이다. 헥헥. 최근에는 아주 옛날 책으로 보이는 <여수의 사랑>을 읽고 있는데, 맨 앞의 단편 하나만 읽고서도 헥헥대고 있다. 20대 중반이 된 이후로 소설을 보고서 운적은 없었는데... 그걸 깨줬다.
내 나름대로의 김연수論은 쉽게 쓸 수 있겠지만, 한강論은 쉬이 쓸 수 없을 것 같다. 작품들에서 반복되는 몇 가지 테마들, 소재들을 못 찾아내는 것은 아니지만, 사실은 쉽게 생각하고 싶지 않아서 keeping 중이다. 이러다가 오정희씨의 경우처럼 흐지부지해지는 건 아니려나-_-
한 인터뷰에서 :
“저의 경우는 이야기가 저를 찾아온다고 할까요. 글을 쓰다 보면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와 이야기 자체가 부딪칠 때가 있어요. 그럴 때 저는 이야기가 하고 싶은 쪽으로 가요. 시는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면 되는데 소설은 시보다 논리적이고 나와 이야기가 어떤 작용을 해서 뭔가를 만들어 내는 것이죠.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와 이야기가 잘 만나야 하는 것 같아요. 내가 다 통제하면 소설 쓰는 재미가 없을 것 같아요.”
이건 완전 김연수씨랑 어떤 면에서는 반대되는 내용이라서 ^^; ㅎㅎ 사실 이 인터뷰를 읽으면서는, 내가 상상하는 한강씨와는 많이 다르다는 생각을 하게됐지만, 어쨌든.
덧1) 여기까지 쓰고 나니 갑자기 S의 말이 떠오른다. ㅋㅋ 한강씨가 "왠지 너무 글쟁이 같아서 재수 없다"고 했던.
덧2) 왠지 왼쪽의 사진은 내가 아는 누구를 어딘가 좀 닮았다;
2008년의 애정가는 책(비소설)
카테고리 분류가 좀 애매하긴 한데^^; 소설 분야를 제외하고 단연 이 책에 애정이 가장 많이 간다. 지인이 번역했다는 사실 말고도, 중간에 꼽사리로 번역 검토 작업을 조금이나마 같이 했기 때문에 ㅎㅎ 그리고 내 이름도 살며시 등장한다(이 공명심;) 이제 한국 출판계는 <젠더 트러블>, <안티고네의 주장>, <불확실한 삶>, <누가 민족국가를 노래하는가>를 갖게 되었다. 곧 <Undoing Gender>도 나온다는 것 같고, <Excitable Speech>도 누군가가 번역을 맡았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갑자기 버틀러가 풍성해지는 느낌이어서 기분이 깔끔하다는 ㅎㅎ
그나저나 알라딘에서 보니 <젠더 트러블>은 잘 나가는데, <불확실한 삶>은 좀 덜 나가는 편이어서 속상하다. 총명하기 짝이 없는 우리 '주디'님의 사유는 비단 <젠더 트러블>류에 고정된 것이 아닌데도 말야. 물론 <불확실한 삶>이 2001년, 9/11의 맥락에서 쓰여졌다는 한계도 있다고 할 수 있겠다만, 꼭 그렇지도 않다. 주변부 리틀 제국으로서, 한국의 맥락에서는 읽어야 할 책인데. 유행하는(사실은 유행했던) 어휘인 '벌거벗은 삶' 운운하느니 버틀러의 이 책과, 버틀러와 스피박의 대담을 담은 <누가 민족국가를 노래하는가>를 보는게 훨씬 낫다. 어쨌든 속상해서 그런지 젠더 트러블은 구입을 미루고 있다 ㅎㅎ
2008년의 학술서(?)
역시 카테고리 분류가 애매... 대체 '학술'이 뭐람 ㅋ
어쨌든 피에르 클라스트르의 <국가에 대항하는 사회>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재밌고 또 치밀한(그러나 물론 논리의 점프들이 보인다) 역사-정치 인류학. 또 분명 몇 가지 불편한 점들이 있고, 그가 타고난 시대적 한계랄까, 젠더의 한계랄까 하는 것들이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런 점들을 감안하더라도, 내가 최근에 하고 있는 고민들에 대한 탁견을 제시한다고나 할까 ㅎㅎ
특히 내가 여전히 좋아하지만 또 멀리할 수밖에 없는 맑스주의가 견지하고 있던 오래된 이론적 형식틀에 대한 통박을 보여준다는 점이 좋다. 그러니까, 경제라는 하부구조와 그 이외의 상부구조라는 개념말이다. 이 경우 당연히 정치는 경제의 그림자이고 환영이 된다. 그렇다면 정치는 물론 제거될 운명이거나, 제거되어야만 한다. 그에 반해 클라스트르는 그러한 2원적 구조 자체가 쓸모가 없으며, 만약 그러한 이론적 틀을 유지하고 싶다면, 정치가 하부구조고 경제가 상부구조라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한다고 주장한다(물론 이러한 그의 견해는, 어느 정도는 맑스주의에 대한 (의도적?) 오독에 기반한 것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사회, 민족, 국가, 시민, 국민, 경제 등등 거대하기 짝이 없는 어휘들의 관계에 대해 정리할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도 좋다. 특히 '사회'라는 애매모호한 개념에 대해서 말이다. 이 책을 읽고서는 사회를 아예 물신화하든지, 사회를 국가 자체와 동일한 것으로 간주하거나 국가에 의해 사회가 대체된다는 식으로 이해하고야 마는 수많은 사회'과학'적 통념들과 결별할 수 있을 것 같다.
좀 안타까웠던 점은, 이 책 1장 코페르니쿠스와 야만인을 시작으로 책 페이지 순서대로 읽어나갔다는 것이다. 지금 혹시 누가 이 책을 읽는다고 한다면, 1장을 우선 읽고 그 다음엔 바로 11장, 국가에 대항하는 사회로 넘어가라고 말해주고 싶다. 그 다음에 2장부터 차근차근 읽어 나가면 훨씬 더 즐거운 독서가 될 것이라고. 아, 1장 읽은 뒤에 2장까지 읽고 11장으로 점프하는 것도 좋겠다.
언제부턴가 라캉과 라캉주의자들로부터 거리를 두기 시작하는 바람에 읽을 거리를 잘 못잡아 나가고 있었는데, 마침 새로운 독서 방향을 만난 것 같다. ㅎㅎ
2008년의 BEST
뭐니뭐니해도, 난리부르스를 했던 것 같다. 나야 배우로도, 작가로도, 연출로도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2008년을 보건대 그때만큼 좋았던 일들도 없었던 것 같다. 교지를 나온 이후로 방황의 길을 가려던 찰나에 만난, 아주 소중한 '사건'.
난리부르스가 특이했던건, 이미 '개인적으로' 관계를 맺고 있었던 사람들이 모여서 모임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물론 아닌 친구들도 있었지만^^) 대개 어떤 모임을 통해 사람을 만날 경우, 그 모임에 대한 애정이 떨어지거나 그 모임을 하지 못하게 되는 순간, 그 사람에 대한 감정이 어떻든, 관계가 소원하게 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난리부르스는 그렇지 않았다. 10월 11월에 거쳐서 한창 힘들었을 때, 그래도 가장 많이 생각나고 또 힘이 되었던 일들은 난리부르스에서 겪은 일이었다.
조만간 또 하나의 '사건'을 만들 것 같은데... 같이 하지 못해서 정말 유감이다. 어떤 형식으로든 같이 하고 싶은 마음은 큰데... 휴.
2008년의 WORST
지난 10월과 11월, 그리고 현재까지 이어졌고 앞으로도 이어질 일상의 시작. 어제가 D-600이었다...
그리고 지난 1~2월, 그리고 4~6월을 잊어서는 안 된다. 물론 지금도.
2mb의 등장이 제발 한국 정치사의 '트라우마'로 남기를.
2008년의 슬픔
지난 여름의 몇몇 기억들. 지금까지도 나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무엇보다 나에 대한 발견, 그리고 곧바로 이어지는 나에 대한 혐오로 마음 고생을 심하게 했다.
2008년의 예능프로그램
<패밀리가 떴다>! 이른바 패떴.
며칠 전에 본 뉴스에, 패떴의 피디가 패떴의 인기 비결이 '자막'이라고 했다는 얼토당토 않은 말은 했던데... 무엇보다 패떴의 매력은 자막이 아니라 등장 인물들이다. 무엇보다 남자들만 등장하는 예능에 신물이 나던 차에 <무한걸스>는 유일한 비타민이었는데, 패떴의 등장으로 순위구조에 큰 변동이 생겼다 ㅋㅋ
이효리와 박예진, 그리고 유재석과 이천희 때문에 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왠지 친근하지만 정작 만나면 절대 친해질 것 같지 않은 대성도 좋고 ㅎㅎ 하지만 난 윤종신 싫고(예전에 했던 경악스러운 발언. 여자는 회와 같다 였나? -_-), 김수로도 싫다. 하지만 강호동, 은지원, 이수근, 유세윤, 엠씨몽, 정준하, 정형돈, 노홍철, 박명수 싫은 것에 비하면야, 뭐.
이효리-유재석은 진짜 최고다. 둘다 다른 의미로 최고라는 것이지만.
어쨌든 유재석 같은 연예인이 예능을 계속 맡아줬으면 좋겠다. 다른 예능 프로그램의 출연진들이 워낙 개판이니 유재석이 더 빛나보이는 것 같다. 유재석은 어딘가에서 "모든 사람이 불편하지 않은" 웃음에 대한 이야기를 한 적 있다. 말은 쉬운데 실제로는 어려운 일이다. 우리네 생활에서 웃음 자체가 희화에 의해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나는 이제 그 꼴은 못 본다.
2008년의 연예인
'잔진'.
'전진'이 아니라는 점이 중요하다.
내가 무한도전을 봤던 2가지 이유 중에 하나였다 ㅋㅋ
그리고 박예진.
패떴의 영향이 크지만.
출연하는 프로그램마다 이미지가 너무 다른데도 하나같이 좋다. :)
To be continued...
덧) 2008의 BEST 영화에 <미쓰 홍당무>를 넣어도 될 것 같다! 오늘에서야 봤는데, 아 이건 뭥미 진짜 대박 ㅋㅋ 웃지 못할 장면들도 많았지만, 대개 정말 웃겼다 ㅋ 누구랑 같이 봤음 더 재밌었을텐데, 혼자 봐서 아쉽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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