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한 다양성과 단조로운 유사성 사이에서. 소이연

카테고리

전체보기 (484)
일기 (198)
조각들 (74)
독서노트 (79)
스크랩 (57)
영화 (44)
음악 (0)
문학 (17)
번역 (14)
(0)
기타 (1)
미공개 (0)
영화 / 2008/12/09 00:16

본 지는 꽤 지난 영화지만...

이 영화, 꽤나 흥미롭다. 3명의 감독 중에, 미셸 공드리와 봉준호가 들어가는 것만으로도, 내게는 충분히 흥미로운 일이니까 말야. (사람들이 많이 주목했던 것 같은데, 레오 까락스라는 감독과 드니 라방이라는 배우는, 나로서는 이름만 들어봐서 잘 모르겠다.)

예전에 <사랑해, 파리>라는 제목으로 개봉했던 영화가 있었는데, 널리 이름을 알린 유명한 감독들이 모여서 짧은 단편들을 찍고 옴니버스 식으로 편집한 영화였다. 몇몇 작품은 지루했지만, 그 때만 해도 전반적으로 재밌는 시도였다고 생각했었다. 약 3박 4일간(이것도 머물렀다고 말할 수 있다면^^;) 파리에 머물 때 보았던 거리와 풍경들이 영화 속에서 낯설게 보여질 때ㅡ그러나, 영화에서 마레지구를 보아도 마레지구라 못믿는 나에게, 영화가 '이곳은 마레지구라고!'라고 주장할때ㅡ의 신선함만으로도 재미는 충분하지 않겠는가(이런 신선함은, 일전에 보았던, 전도연과 하정우 주연의 <멋진 하루>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또 구스 반 산트의 단편을 비롯해서 몇몇 segment들을 보고서는 완전 완소스러운 기분이 들었으니까. 근데, 내 기억으로는 그 영화를 봤을 때쯤해서(그 영화에 나왔던 얘기였나?) 도쿄와 뉴욕등을 돌아다니며 그 도시들을 배경으로 비슷한 방식으로 영화를 제작할 것이라는 얘기를 들었던 것 같은데... 도쿄!가 아마 그 후속이지 싶다.


<수면의 과학>, <이터널 선샤인>에서 받은 신선함보다는 한층 약했지만, 어쨌든 미셸 공드리가 맡은 segment 1은 마음에 들었다. (별로 스포 아님) 마지막 부분에 가서는 주인공이 의자로 변하는데, 왠지 그 장면은 내게 한강의 연작 소설 <채식주의자>와 단편 소설 <내 여자의 열매>를 상기시키기도 했고, 또 그 주인공이 택한 삶의 태도는 김기덕 감독의 작품 중 내가 유일하게 좋아하는 작품인 <빈집>에서 볼 수 있는 그것을 연상시키기도 했다. 물론, 미셸 공드리 특유의 말캉몰캉한(이터널 선샤인은, 내게 '비극'이 아니었다) 시선도 함께ㅡ그러나 너무 씁쓸하고 차가운 결말이었지만ㅡ공존하고 있었기에 완전히 한강이나 김기덕으로 환원할 수만은 없었다. 적어도 나에게 있어서, 이 segment는 한강-김기덕-미셸 공드리였달까. (난 새로운 것을 접해도 익숙한 것으로 해석하고 환원시켜야 이해가 쉬워지는, 다소 불성실한 관객... =_=)

segment 2 같은 경우엔, 다소 지루하게 봤다. 결말 부분의 묵시록적인 부분만 빼놓고는, '도시의 광인'이라는 소재는 그닥 나에게 와닿지 않았다. 일본인에 대한 일반적인 혐오를(japs!), 아주 우스꽝스럽게 전유해서 '대놓고' 드러내는 장면은 역시 불편했고(그 장면의 다른 일본인들은, 대체 왜 웃는가?), 뿐만 아니라, 그 광인이 도시 지하에서 발견한 일본 제국주의의 유산들로 일본의 심장, 수도 도쿄를 파괴하고 사람들을 죽이며 그 도시를 아나키 상태로 몰아간다는 설정에는 살짝 코웃음도 나왔다. 아무리 정신분석적으로 읽어서 끼워 맞춰 가는대로 좋게 생각하려 해봤지만 그렇게 하기에도 그닥 흥미로운 텍스트도 못 되었고(한 작품을 정신분석적으로 읽는다는건, 그 작품에서 아무런 메시지도 읽어낼 수 없었단 얘기ㅡ혹은 읽어내기 싫었거나 귀찮았단 얘기라고 생각한다). 아무래도, 이런 장르는 내 취향이 아닌가봐. 감독은 이 광인을 뉴욕까지 보내겠다고 선언했는데... 워워 플리즈.

완소 아오이 유우(!)가 나오고 봉준호 감독이 맡은 segment 3은, 주제 자체는 조금 지루했지만 그 안에 등장하는 몇몇 영화적 아이템(?)들은 재밌었다. <허니의 클로버>에서 아오이 유우 특유의 긴 생머리를 하고 나와 다소 몽환적이고 멍한 눈길을 보내고ㅡ카메라의 정면을 응시하는ㅡ어디선가 살며시 바람이 불어와 그 생머리를 날리는 장면은, 당시 많은 남자애들의 첫 사랑 '판타지'를 자극했던 걸로 기억한다(허나 말 그대로 '판타지'다). <도쿄!>에도 그 장면은 아주 아주 유사하게 변주되어 등장한다. <허니와 클로버>의 그 응시는 남성 주체 봉준호 감독 역시 매혹 시켰던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ㅅ-

참, 이 작품에 메인 캐릭터로 등장한 카가와 테루유키의 인터뷰를 봤는데... 아무리 제 딴에는 '농담'처럼 했다지만, 몇 명의 남자들이 모여서 성희롱을 대놓고 하는 모습에는 질릴 수밖에 없었다는. 이런 배우가 상대역이라면 연기를 하고 싶을까.



전반적으로는 맘에 들었으나, 부탁하고 싶은건, 제발, 서울에는 오지 '말아 달라'는 것이다. 일전에 서울을 배경으로도 이런 옴니버스 방식의 영화를 기획 중이라고 들었던 것 같은데... <도쿄!>를 보고 나서는 완전히 plz don't come! 이란 맘이 든달까. 좋게 해석하면 '유명 도시'의 '유명 감독'들에 의한 '창의적/창조적 전유'지만, 내가 볼 때엔, 다소 불쾌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는 제작자들의 편견을 작가주의의 이름으로 제 멋대로 정당화하는 걸로 비춰진다. 나야 파리에 대해 무지하고, 도쿄에 대해 무지하니까 그럭저럭 재밌게 볼 수 있었지만(그리고 아마 뉴욕도 재밌게 보겠지만), 서울이 그런 시선들에 노출되어 제멋대로 전유되는 모습을 속 뒤집어 지지 않고 보아 넘길 수 있을지 의문이다. 물론 내가 서울을 '잘' 아는 것도 아니지만서두.. 나, 민족주의자인가? ㅠㅠ

'영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번 애프터 리딩  (0) 2009/05/02
<키친>, Life. After. Romance  (2) 2009/02/23
도쿄!  (0) 2008/12/09
미인도  (0) 2008/11/30
과잉 감정  (4) 2008/09/23
Posted by 소이연

글 보관함

최근에 받은 트랙백

달력

« » 2012.02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