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 훅스의 신간, <경ㄱ 넘기를 가르치기>의 초반부를 뒤적이다가, 지금 내 상황에서는 읽어도 크게 와닿지 않으리라는 판단하에 일단은 잠시 접어 두었다. 내가 살고 있는 공간이 제약하는 경험의 폭 때문에도 그렇고, 현재 나의 '신분' 때문에도 그렇다 -_-
분명 '해방적 교육'이라느니, "자유의 실천으로서의 교육"이라느니 하는 개념들은 매력적이다. 여기서 매력적이라는 말은, 그 개념들이 그럴싸하게 들리기는 하나 불가능한 것에 불과하다고 (암묵적으로) 표현하기 위해서 한 말이 아니다. 오히려 어떤 상황에서도 포기될 수 없는 어떤 것, 반드시 지켜야만 하는 어떤 것, 그러면서도 나를 확 잡아 끈다는 의미에서(많이 오버하자면, '소명'이라고 할 수도 있을만큼? ㅋㅋ) 매력적이라는 말을 쓴 것이다. 특히 요즘 같은 때에는, 더욱 더.
"가르치지를 원치 않는 교사"와 "배우기를 원치 않는 학생"이 있는 교육이란 대체 무엇일까. 벨 훅스가 말한 것처럼, "은행 출납식 교육"ㅡ교사가 전해준 지식만을 학생들은 그저 은행에서 빼다 쓰듯 훗날 사용할 수 있다는ㅡ이 대학에서도 주류 중의 주류인 지금, 대체 '교육'의 위상은 어디에 어떻게 있는 걸까. 교육의 의미는 무엇일까. 여기에 맑시스트들의 개념이나 소위 '비판 사회학' 같은 흐름에서 쓰이는 '사회과학'적 어휘들을 갖다 붙여서 뭐라뭐라 할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심정적으로 답답하고 갑갑해져 오는 건 어쩔 수 없다.
나의 경험을 반추해보면, 나에게 있어 "해방적 교육", "자유의 실천으로서의 교육"은 대학에 가서야 비로소 맛볼 수 있었다(어디까지나 '맛만 봤다'는 얘기). 그렇다고 그 대학이 그 자체로 해방적이고 자유의 공간이었냐, 하면 다들 알겠지만 그런 것도 아니었다. 강의실에서 진행하는 모든 강의가 다루는 것들은, 말 그대로 강단 지식에 지나지 않았다. 그것들은 나에게 흥미도, 의미도, 전연 주지 못했다. 정말 단 한 냥의 즐거움도 얻을 수 없었다. 영어교육이었던 전공 강의는 말할 것도 없었다. 그 강의들은, 너무나 단순했던 내 견해들ㅡ예컨대 평준화 찬성, 고교등급제 반대 등등ㅡ에 대해서 너무나 단편적이고 표면적이긴 했지만 지지하는 말들을 해주곤 했던 고등학교 논술 선생의 말들 보다도 힘이 없었다. 물론 때때로 재밌는 강의가 있었다. 당시로서는 접해보지 못한 새로운 관점들과 지식을 만날 수 있었던 ㅇㄹㅎ 개론, 한국 현대사 입문 같은 강의들. 그러나 1년에 한 강의 정도? -_- 그나마도 수강자들의 태도 탓에 금방 질려버리는 경우가 많았다.
어쨌든 내가 처음으로 해방감과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었던 수업은 2학년 말이었던가? 페미니즘의 미학과 예술이라는 수업이었다. 물론 그 전에도 학회 세미나 등을 통해서 봤던 책들이 해방감과 자유로운 느낌을 주곤 했었지만(세미나 자체는 아니었다! 그 뒤의 수다가 그랬지), 대학 강의실에서는 처음이었다. 수업이, 그리고 교수자가 흥미롭다고 느낀 적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 수업만은 시시하지 않았고, (벨 훅스가 강조하는) 흥(excitement)이 났다ㅡ물론 기말고사 시즌에는... 흑. 그 뒤로 수업의 연장선에서 방학 간 학기 간 안가리고 몇 년간 진행했던 세미나도 내게는 아주 큰 의미로 다가왔다. 교수자인 ㅇㅎㅅ 쌤은 여느 강사들과는 많이 달랐고, 수업 스타일도 당연히 다른 수업들과는 꽤나 달랐다. 형식적인 측면에서 다른 점도 있었지만, 일단 '분위기'등이 달라서 나는 정말 즐거운 마음으로 (발제를 맡거나 하면 의무감에 늦은 밤까지 시달리기도 했지만-_-) 수업과 세미나에 참여할 수 있었다. 버틀러의 사유들도 그 세미나에서 만난 거고.
그 다음으로는 풀집에서 들었던 정희ㅈ 선생님의 강의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다. 물론 선생님의 기대보다는 늘 수강자가 차고 넘쳐서, 애초에 의도했던, '책상 모아 놓고 썰 푸는' 강의를 할 수는 없었지만. 어쨌든 그 강의에 온 수강자들의 열정, 그리고 때때로 들을 수 있었던 정ㅎ진쌤을 포함한 그 사람들의 삶의 이야기들은 내게 큰 의미였다. 그리고 내 좁디 좁은 인식에 충격을 주어 확장시키는 이야기들을 강의 시간 내내 전해주는 ㅈ희진쌤의 이야기들은 노트에 기록해두고 지금도 틈나는대로 보고 있다(고작 노트한 것 가지고도 empower될 수 있다!). 그 덕에 이젠 왠만한 '쎈' 담론 아니면 자극 받지도 않는다. 너무 잰체하고 폼만 잡는 남성 학자들의 강의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강의. 그 다음으로는 여이연에서 들었던 ㅇㅅㅇ 강의도 있지만... 이 강의에 대해서는 일단 패스.
결과적으로 보면, 내게 "자유의 실천으로서의 교육"은 결국 페미니즘과 관련되어 있었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페미니즘을 다루었다고 해서 어떤 교육의 장이 "자유의 실천"이었냐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어떤 독문과 교수가 맡았던 어떤 강의는 답답하기 그지 없었다. '사회학적' 인식틀로만 페미니즘을 다루었던 어떤 강의도 정말이지 재미없었다. "자유의 실천으로서의 교육"에서 중요한 것은, 역시 그 교육의 장 내부에 있던 '관계의 질서'였던 것 같다. 다시 말해, 그 교육의 장에서 당사자들이 '무엇을 습득하는가' 하는 점도 중요하지만, '어떤 이들이 모여서 어떻게 습득하는가' 역시도 매우 중요한 것이다.
나는 우리 사회에서 '해방적'인 것으로 간주되는 여러 학문이나 인식론들을 공부하는 모임들에 종종 가기도 했지만, 대개는 지긋지긋함을(때로는 공포를) 느끼면서 뛰쳐나왔다. 지식이 '해방적'이면 뭘하나, 그 지식을 공부하고 써먹는 사람들이 '해방적'이지 않은 걸. 관계를 불가능하게 만들 정도로 자의식과 자기 연민으로만 가득한 사람들이 모인 교육의 장에서는 대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런 식으로 유지되고 진행되는 교육의 장이, 대학에서 유행하는 '실용적 지식'이나 "은행 출납식 교육" 보다 도대체 나은 점이 있었을까? 오히려 더 무서운 것은 아닐까?
어쨌든, 이 책은 천천히 완독하도록 하자 ㅎㅎ
덧) 내가 좋아했던 강의나 모임에서, 나 스스로가 그 내부의 관계에 대해서 치열하게 고민했느냐하면, 또 그렇지도 않았다. 그냥 편안함을,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을 뿐. 내가 그 모임들에 어떤 폐를 끼쳤는지는, 알 듯 말 듯 모르겠다. 흑.
덧2) 난 너무 관계에 있어 소심하고, 또 너무 자주 관계에 소홀해지는, 이기적이고 게으른 사람이란 생각이 많이 드는 요즘이다. 이거, '생각'만 할게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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