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한 다양성과 단조로운 유사성 사이에서. 소이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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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2008/09/21 00:17

어제는 오랜만에 종로-광화문 쪽에 출두(?)했다. 내가 가는데야 사실 뻔하니까, 뭐 갔던 곳들을 늘어놓을 필요는 없을 듯 하고.. 생각보다 길게 느껴졌던 하루 동안(그래서 집에 와서는 완전 녹초; 헥헥_) 시네큐브에서 하는 두 편의 영화를 보았다. 두 영화 모두 하루에 딱 한 번 상영하는, 영화들.


그 중 하나는 <카라멜>.

레바논의 영화라는데. 영화 전체 배경의 분위기가 흔히 보기 힘든 분위기였다. 요즘 들어 한국에도 소위 '중동' 쪽의 작품들이 소개 되고 있는 것 같다. 서구 영화계가 주목하고 있어서인가? 그래봐야 개봉한 숫자는 얼마 되지도 않지만..

어쨌거나 이 영화 굉장히 마음에 들었다. 이 영화 만든 감독의 처음 장편 영화라는데, 감독도 무려 주인공으로 출연한다(굉장히 아리따우심). 출연한 이들도 모두 전문 배우가 아니라 '길거리 캐스팅'한 사람들이란다. 그런데 연기도 다들 너무나 잘한다. 요즘 드라마 같은데서 볼 수 있는 이른바 '발 연기'에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말야.

영화에서 볼 수 있는 관계의 윤리랄까, 할 수 있는 것들이 무척 좋다. 미용실이라는 공간을 중심으로 엮어지는 인물들의 (남들이 보기엔) 사소한ㅡ그러나 본인들에게는 아주 중요한 일상의 '사건'들일ㅡ이야기들. 물론 내가 직접적으로 이입할 수 있는 캐릭터는 없었지만, 뭐 어때. 사실 일상만큼 가볍지만 무거운 것도 없기 때문에, 레바논의 '현실'들은 만만치않게 다가온다. 마음 편하게 볼 수 없는 장면들이 많다는 거다. 그리고 우리들의 '정치적 올바름'의 입장에서 보면 그닥 올바른 영화도 아닐 수 있다. 하지만 '우리들의' 정치를 성급하게 적용하여 판단하기보다는, 일단은 영화의 문법, 그리고 그 인물들의 관계등에 초점을 맞추고 싶은게 솔직한 맘이다.

이 영화에서 가장 최고로 명장면을 꼽자면, 미용보조사 리마가 여자 손님의 머리를 감겨주는 몇 장면들. 아 이렇게 대사 하나 없이 얼굴 클로즈업 만으로 감정이나 미묘한 분위기를 전달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배우도, 편집도, 연출도 대단하다. 이렇게 묘한 감정선과 분위기를 잡아내는 능력은 탁월하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요즘 보기 드문 (여러 가지 의미로) '찐한' 장면. (^^;)

정말 미용실은 에로틱한 공간인 것 같다. 물론 늘 그런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에로틱하게 되기 '쉽다'고나 할까. 그렇지, 그렇고 말고. :D 이렇게 말하니 외로움을 느낄 때마다 미용실에 가는 소설 속의 한 인물도 떠오른다. 평소에는 (다른 사람들에게) 강인하고 차가운 캐릭터인데, 가끔, 정말 가끔은 머리를 감겨주는 미용보조사의 손길에서 나름의 묘한 위안을 받는... 이건 에로틱은 아닐 수 있겠구나;


다른 한 영화는 <더 걸>.

이렇게 직선적이지만 지루하지 않은 영화가 있을까. 스토리 전개가 예상 가능할 뿐 아니라, 굵직한 스토리에 맞춰서 모든 장면이 딱딱 맞춰서 따라가는 느낌이다. 딱딱 맞춰서 간다는건, 이 영화의 장면 장면들이 여느 영화에서 그렇듯 '현실적'으로 보여서 그런건 아니다. 리얼한 배경이 여러 가지 장치들에 의해 묘하게 뒤틀리고 딱 그 장면에서 강조해야 할 특징만을 정확히 강조한, 그래서 너무나 영화 스토리 상의 상황에 딱 들어맞는 그런 장면이랄까. 연극적이라면 연극적이겠군.

내용은 완전 무겁다(그러나 영화 자체는 그렇지 않다). 영화의 도입부에서도 말하고 있는 거지만, 이건 단지 독일의 한 소도시의 문제만은 아니다. 전후 독일의 어디에서나 볼 수 있었을, 너무나 현실적인, 그래서 더 '현실적'이고 그래서 더 끔찍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 그리고 얼핏 행복하게 끝나는 듯하던, 그래서 교훈을 주는 듯 하던 영화는 결말을 살짝 뒤튼다. 그리고 그 마지막을 보고는 가슴이 무너져 내렸다. 결국 이렇게 되는 걸까.

영화의 내용을 보편화해서 내 일상에까지 끌고 내려오면 영화의 문제의식을 '물 타기'하는 것이 되겠지만, 그래도 그렇게 하고 싶은 충동을 버릴 수는 없는 것 같다. 이건 정말 '공동체'에 대해서, 아니면 최소한 사람들이 모여사는 것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꼭 봐야할 영화 같다. 꼭 나치독일 이후의 독일에 대한 관심이 아니더라도 말이다. 대체 사람이 아니라 사람'들'ㅡ대중, 인민, 시민, 국민, 민족, 인종 등등 그 어떤 범주든간에ㅡ은 무엇인가. 믿음이란 무엇인가. 권력이란. 공동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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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소이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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