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한 다양성과 단조로운 유사성 사이에서. 소이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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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노트 / 2008/09/19 00:34

만약 그 공동체가 바로 인종주의적 배제를 통해 구성된다면, 인종주의적 발언의 문제를 심사숙고하는 데 그 공동체를 얼마나 신뢰할 것인가?

주디스 버틀러. 「문화의 보편성」. 『나라를 사랑한다는 것』. p. 81.



마사 너스봄(누스바움)의 책을 읽다가 인용.

버틀러가 "만약"이라고 말했지만, 이를 좀 더 밀고 나가보자. 오늘날 "인종주의적 배제"의 매커니즘을 갖지 않은 '공동체'가 과연 존재할까(국가는 말할 것도 없으니까)? 심지어 무한히 다양한 국가와 '민족' 출신의 사람들이 모인ㅡ따라서 더 이상 지배적인 인종이 없는 특별한ㅡ'공동체' 속에서도 말이다. 더 나아가, 이 세계를,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인종주의를 경유하지 않은 발화를 할 수 있을까? 과연 우리는 인종주의를 경유하지 않은 사유를 할 수 있을까? 인종주의에 단순히 반대한다고, 우리는 차이를 존중해야 한다고 외치는 순진한 다문화주의적 리버럴 좌파 인종주의자들과 거리를 둘 때 조차도, 우리는 어쩌면 모두가 은밀한 인종주의자들은 아닐까?

인종주의는 진짜 어려운 주제란 말이야 (..)


푸코의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에 나오는 인종주의에 대한 분석은, 나로서는 상당히 신선한 것 이었다. 여태까지 볼 수 있었던 인종주의에 대한 분석들과는 사뭇 다른 관점이고 방법이었으니. 특히 인종주의 하면 딱 '흑인' 과 '라틴', 혹은 '홀로코스트' 운운하는 이야기들에 피곤해지기도 했고. 전부 다 미국-유럽산(産) 담론들. 한국에서도 뭐, 크게 다르진 않은 것 같다. 본격적으로 한국의 인종주의에 대해서 언급하는 글들은 찾기 힘든 것 같다. 다만 '이주노동자에 대한 차별 폐지', 혹은 뭐 '인권', '다문화' 등등의 어휘로 그것들을 에둘러 풀어낼 뿐. 아마 인종주의는 그저 '먼 나라' 이야기라고 생각하나 보다. 아마, 다들 그렇게 믿고 싶겠지.

푸코가 그 책에서 얘기하는 것은 인종주의 탄생의 역사적 비화랄까? 푸코가 보기에 인종주의의 탄생은 기존의 '주권적 역사'와 구분되면서, 16, 17세기 들어서 등장했다고 보는 넓은 범위에서의 "종족 투쟁의 역사" 내지는 "반역사"의 등장과 맞물려 있다는 것. 여기서 중요한 것은, "종족 전쟁의 역사" 관점 이후에 등장하였던(하지만, 푸코가 찬양하는ㅡ그러나 나중에 철회하는ㅡ"종족 투쟁의 역사"와 인종주의는 같지 않다), 그래서 오늘날의 우리가 '인종주의'라 이해하는 것은 반드시 '국가'를 경유해야 한다는 것이다. 인종주의는 반드시 '국가 인종주의'다. 또한 푸코는 이러한 "종족 투쟁의 역사" 이전에도 있었던, 예컨대 유대인에 대한 차별 같은 것들은 우리가 알고 있는 인종주의가 아니라고 강변하는 놀라운 주장을 편다. 이러한 푸코의 과격한 주장에 동의를 하든 하지 않든, 인종주의라는 다소 센세이셔널한 담론을 세밀하게 볼 수 있게 하는 새로운 관점을 제공하는 듯 하다. 사실 푸코가 인종주의 자체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서, 분석이 다소 미약하기는 하다마는..

물론, 게다가, 아직 이 책을 다 보지도 않았다(..). 그리고 이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에 이어, Security, Territory, Population이라는 제목으로 출판된 강의(이건 세미나에서 다 같이 구해뒀음)와 그 이후의 The Birth of Biopolitics라는 제목으로 출판된 강의(아직 영역본이 출판되지도 않았다 한다)로 이어지는 그의 이야기들을 다 보아야 하고, 『성의 역사』 1권의 5장 등을 꼼꼼히 참조해야겠지. 어쨌건 재미있고 호기심이 갈 수밖에 없는 분석들이라는 생각. 그리고 결국 이 일련의 세 강의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강의니까(이기도 하니까), 꼼꼼히 읽어두면 나중에 쓸모가 있을 것 같다. 결국 이 모든 건 우리가 서 있는 지반이 무엇인지, 그리고 우리는 이 지반 위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치밀하게 알고자 하는 나름의 노력... 쿨럭 -_-


어쨌건... 마사 너스봄의 짧은 논문, 그리고 이 논문에 응답하는 많은 지식인들의 답변을 모은 이 책, 은근히 재미있는 것 같다. 물론 짜증스러운 글들도 있고, 또 처음부터 끝까지 정독하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이 책의 부제는 "애국주의와 세계시민주의의 한계 논쟁". "애국주의"라는 말은, 예전 같았으면 당장에 폐기 처분해줘야한다는 생각을 했을텐데, 이제는 그렇게 생각할 수가 없다. 그렇다고 너스봄의 센세이셔널한 질문, "순화된(purified) 애국주의는 가능한가?"라는 질문에, 그녀가 주장하듯 "가능할" 뿐 아니라 '우리에게 반드시 필요하다'라고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흐억.


덧) 버틀러의 이 짧은 글에서 "실행의 모순"이라고 번역된 "performative contradiction"은 일반적으로 "수행적 모순"이라고 번역하는 걸로 알고 있다. "실행의 모순"이 뭐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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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소이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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