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ㅡ다들 말은 많이 들어봤지만 실제로 읽은 사람들은 별로 없다는 의미에서ㅡ인 폴 윌ㄹ스의 <학교와 ㄱ급 재ㅅ산>을 보다가 문득 이 책의 분석(자체라기 보다는 방법 및 방법적 주의)을 '학생 운동'에도 적용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안 그래도 하나 둘 '문'을 닫고 있는 학생 운동 집단이 늘어나고 있기에(아 진짜... ㅠㅠ), 사람들을 만나다보면 이와 관련한 이야기를 자주 하게 된다..
이 책에서 분석한 바ㅡ아주 간단하게 요약하자면ㅡ영국 노동자 계급 아이들의 ("해머 타운"이라는 특수한 지역이기는 하지만 동시에 편재성을 갖고 있다. 이는 데리다가 말했던 바, "다른 이름을 위한 한 이름"이라는, 일종의 '환유'로서 읽어야 한다.) 소위 "반학교문화"는, 학교 외부의 권력 관계 그리고 계급 관계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지만 그 자체의 규범, 논리, 작동 기제를 갖고 있는 소문화다. 그런데 "반학교문화"는 절대 수동적으로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 '생성'하는 것이다. 내부와 외부를 가르고, 외부와 관계를 맺지만, 그럼에도 나름대로 고유한 내적인 일관성을 갖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것은 단순한 개인의 총화 그 이상의 것이다. 구성원 개인의 내적인 독특한(실제로 독특한 특성이란게 있다면) 속성과는 별로 큰 관련이 없는, 말 그대로 '문화'(구성원 간에 공유된 지식, 내지는 감정 등의 체계)다ㅡ따라서 이 "반학교문화"는 문화가 작동하는 그 자체의 맥락에 들어가 있을 때에만 분석할 수 있는 것이다. 단순한 인터뷰 등의 방법으로는 이해할 수 없다. 그것은 학교의 '공식 문화'와 갈등 관계를 맺으면서, "반학교문화"는 '비공식 문화'로서 자리잡으며, 학교에, 아이에, 교사들에게, 지역 커뮤니티에 뿌리 내린다.
또한 "반학교문화"는 자본주의의 매커니즘에 대한(그리고 학교 제도에 대한) 일련의 직관적인 통찰을 담고 있다. ㅇ리스는 이를 "간파penetration"이라 개념화한다. 물론 그것이 체계화된 지식이 되어 외부로 개념화 해서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훌륭한 분석이다. 그 간파는 문화를 구성하는 주요한 요소가 된다. 그러나 이 "간파"만으로 노동자 계급이 훌륭한 프롤레타리아트가 되어 사회주의의 선봉이 되거나 혁명적/정치적 주체가 되지는 않는다. 일련의 문화적/정치경제학적 제한, 윌ㄹ스의 개념으로는 "제약limitation"으로 인해 "간파"는 왜곡되고 교란당하고 흔들린다. 이는 이데올로기와 밀접한 관련을 맺는다. 잠재적 가능성은 곧 실패하고 "공식 (지배) 문화"의 하부 구조로 편입된다...
이렇게 요약을 해놓으니 변변찮아 보이기도 하는데, 책을 막상 한 번 정독하면 그 이상의 통찰을 주는 구절들이 있다(그러니 한 번 쯤 읽어도 손해볼 책은 아니라는 이야기^^). 특히 지젝과 푸코의 인상 깊은 통찰 내지는 분석과 연관되는 부분이 읽히기도 하는데, 이쯤 되면 무척 흥미롭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문화기술지/민족지ethnography'라는 형식인데도 불구하고(사실은 현실감 없게 느껴지고 미덥지 않은 이야기들이 너무 많아서) 이 책에 수록된 부분은 상당히 현실감 있게 읽히기 때문에(라포rapport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생각케 한다)...
어쨌든, 소위 '학생 운동'과 윌리ㅅ가 "반학교문화"라고 보는 것 사이에는 일련의 공유하는 지반 내지는 매커니즘이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싸나이lads'와 소위 '운동권'이 공유하는 문화적 매커니즘(집단 정체성의 획득 과정, 하위 문화로서의 문화적 생성 과정, 또한 (대)학교의 '비공식 문화'로 자리 잡는 위치성, 그리고 "간파" 등등등)이 있지 않냐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은 '학생 운동'이 (또 얘기하기도 민망하지만) 하향길에 접어 들다 못해 아예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예전에 문화적으로 또 정치적으로 '번성'할 때 조차도 갖고 있던 내적인 가능성 내지는 한계 등을 거울에 비추어 보듯 살펴 볼 수 있지 않겠냐는 것이다. 그러나 도식적으로, 그리고 표면적으로 "반학교문화"에 대한 분석을 그대로 '학생 운동'에 때려 맞추고 들이미는 것은 명백한 오류가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꾸만 어떤 충동들을 느낀다. (우리는) 왜 이렇게 되었을까. 왜 이렇게 안 될까. 하는 탄식도 좋고 이미 사라진/사라져 가는 것들에 대해서는 애도하고 그리워하는 것도 좋다. 그리고 필요하다. 그러나 '왜'에 대한 보다 치밀하고 설득력 있는 분석이, 지금 우리에게는 필요할지도 모르겠다는 식의 충동을 느끼는 것이다. 그리고 ㅇ리스의 책에서 그 분석의 기초가 될만한 것들의 힌트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느낌이 든다.
또한 푸코가 말했듯, 정치권력에 대한 분석은 "위로 거슬러 올라가는 식"이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에("가장 낮은 곳에서 권력의 현상과 기술 및 과정이 작동하는 방식을 분석하고, 이 과정들이 어떻게 자리를 이동 및 확장하며 스스로를 변형시키는지, 그리고 특히 어떻게 이 과정이 전체적 현상들에 의해 포위되고 병합되었는지 . . . 를 보여주어야 할 것", (푸코,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 p. 49)) 윌ㄹ스의 책은 어느 정도의 키key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에 기초해서, '학생 운동'에 관해 이런 저런 생각이 들 때마다 포스팅을 하도록 해봐야 겠다. 물론 그것은 윌리ㅅ가 말한 것과 상이한 이야기가 되겠지만.
생각해보니 내가 아무래도 (누구의 표현을 빌어쓰자면) '운동권 경계인'이라서 이런 충동/느낌을 갖는 건지도 모른다. 발을 뺐다 넣었다 할 수 있는, 그럼에도 말만 디따 많은. 요즘 들어서 나의 '무책임'함에 염증을 느끼고 있다ㅡ서점 '그날'과 관련된 일들도 그렇고... 아마 이렇게 포스팅 해놓고는 또 딴짓하고 팡팡 놀겠지? 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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