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식이 끝나고 집에 와서 잠시 쉬다보니 정말 쉬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아무것도 안해서 쉬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 건 아니다. 서울에 있을 때의 나와 집에 있을 때의 나는 많이 다르지 않다. 컴퓨터 하고 책 보고. 외출은 최대한 자제하고. 오히려 서울에 있을 때보다 몸을 움직이는 일은 더 많다. 예를 들면 설거지를 한다든지, 식사 준비를 한다든지, 청소를 한다든지, 사촌 동생을 만난다든지 하는 일들. 입의 숫자가 늘어나면 그만큼 할 일도 많기에(여전히 엄마가 가사 노동의 대다수를 하시지만) 은근히 몸에 피로가 쌓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쉰다'는 느낌이 드는 건 뭘까.
내가 가족과 대화가 많느냐, 고 하면, 전혀 그렇지 않다, 고 대답할 수 있다. 나는 가족과의 대화가 편하지 않다. 미뇸피에 올린 졸업식 사진을 볼 수 있는 사람이면 알겠지만, 친구들과 있을 때의 나와 가족과 있을 때의 나의 표정과 자세는 정말이지 다르다. 나는 가족과 있을 때 오히려 얼굴이 경직된다. 엄마 아빠는 결코 동의한 적 없는 이야기이지만, 친척들을 나를 만나면 의젓한 '첫째' 같다는 말을 많이 한다. 내가 말도, 대화에 대한 반응도 거의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건 물론 은연중에 행하는 비난이다. 대화에 적절히 참여하지도 않고, '가족'의 대소사에 전혀 참여할 의지를 보이지 않는 나에게, 에둘러 표현하는 일종의 비난이다. 그러니, 단연코, 가족이 그냥 문자 그대로 '편해서' 쉬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건 아닌 것 같다.
이것 저것 이유를 들 수 있겠지만, 내가 지금 쉬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결정적인 이유는, 결국 '감정 낭비'를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서울에 있으면 이래 저래 지치기만 한다. 3~4평 남짓한 개인적인 공간도 (돈에 의해) 보증되어 있지만 그 공간은 절대 '쉴' 수 있는 공간이 아니다. 그냥 '재충전'의 공간일 뿐, 나에게 어떠한 영감도 느낌도 감흥도 주지 못한다. 그리고 4년 반동안 축적된, (좋은 기억보다는) 좋지 않은 기억들이 끝없이 몰려든다. 그 탓에 꿈자리가 좋았던 적도 별로 없다.
그래서 서울에 있으면 일종의 '중독'이 심해진다. 그건 물론 도피에의 욕망이다. 내게 불쾌를 유발하는 행위로 이행하는 것을 막기 위한 일종의 방어 기제로써, 일종의 불가피한 도피 행위인 것이다. 담배를 피운다든지, 밤마다 맥주를 마신다든지, 게임을 다운받아서 한다든지, (가장 나쁜 버전으로는) 사람에게 중독되든지. 나는 그저 끝없이 중독될 대상을 찾아 헤맬 뿐이었다. 어쩌면 한 친구가 말해 주었듯, 혼자 지낸 시간이 너무 오래 되어놔서 이런지도 모르겠다.
물론 나는 여전히 혼자 지내는게 좋다. 요리를 해서 누군가에게 줄 때를 빼고는, 누군가와 같이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은 없다. 고작 이틀 정도 집에 내려와 있으면서도(게다가 부딪히는 일도 거의 없으면서도), 은근히 짜증나는 구석이 한 두개 있는게 아니다. 그런 짜증은 짧은 시간은 견뎌낼 수 있어도, 오랜 시간 견뎌낼 수는 없는 종류의 짜증이다. 그 짜증이 쌓이면, 마치 서울의 내 방에 있을 때처럼, 나는 도저히 '쉴' 수 없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결국 나는 집에서 쉬고 있다는 느낌을 받으면서도, 곧 떠날 생각을 하고야 만다. 이건 부모님이 싫어서도 아니고, 집에 정이 안 붙어서도 아니다. 그냥 이건 내 문제다.
어쨌거나 오랜만에 '쉬'는 것 같아 좋군 =ㅅ=
덧) 점점 나의 욕망의 좌표에 근접해 가는 느낌이다. 내가 뭘 원하는지, 내가 뭘 원하면 안 되는지.. 윤리를 근본적 차원에서부터 재구성할 수 있는 시점인 것 같다.
일기 / 2008/08/31 00:18
TAG
일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