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한 다양성과 단조로운 유사성 사이에서. 소이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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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 2008/08/23 16:12

나는 사람을 구분하는 용어들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가족', '친구', '연인', '동료', '선생님' 등등. 그러한 용어로 한 번 다른 사람들을 설명하고 나면, 나는 그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알게 된다. 그것은 사회 문화적인 각본에 의해서 충실하게 뒷받침되고 지지된다. 나는 정해진 각본을 그저 수행하기만 하는 아마추어 연기자처럼, 혹은 마치 프로그램이 입력된 기계처럼, 그들을 일정한 과정과 방식에 따라서 대한다. 물론 이러한 방식은 매우 편리하다. 내가 접할 수 있는 사람들 하나하나에게 쓸데없이 과잉 집중할 필요는 전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 번 그렇게 입력된 사람에게서 나는 그 어떠한 매력도 발견하지 못한다. 솔직히 말해, 금방 지겨워진다. 특히 가족과 선생님 같은 경우에. 친구나 연인도 마찬가지고. 그건 정말이지 각본대로 움직여야만 하는 일종의 사회적인 역할 수행에 지나지 않는다. 그 각본은 수행자의 자아를 묘하게 지워버리고 다 똑같은 주체로 만들어버린다. 예컨대 나의 아버지는 아버지이지, 나에게 특별한 '개인'이 아니다. 그 각본을 넘어서는 순간 사회적인 처벌과 비난이 가해지니까, 다들 두려움과 공포심을 느끼며 그 역할이 만들어낸 경계를 충실하게(=대충) 지킬 뿐이다. 그 경계를 넘어서는 건, 오로지 특별한, 기적과도 같은 어떤 '발견'에 의해서만 이루어진다. 수없이 많은 감자 더미 속에서 '특별한 감자'를 찾아내는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데.

내가 어떤 사람에게 매력을 느끼려면, 그 사람은 나에게 '개인'이어야 한다. 즉 그 어떤 사회적 의미망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사람이어야 한다. 물론 그 사람에게 매력을 느낀다고 하여 그 사람이 반드시 나에게 소중하거나 중요한 사람이 되리라는 법은 없다. 하지만 역으로 어떤 사람에게 어떤 매력도 느끼지 못하면 그 사람에게 애착을 갖는 건 정말이지 불가능한 일이다. 나는 그 사람에게 매력을 느낀 뒤에야(그 사람을 개인으로 인식한 뒤에야), 그 사람을 나의 주변에 두고 싶은 욕구 혹은 그 사람의 주변에 내가 있고 싶은 욕구를 느낀다.

사실 이러한 욕구는 그 어떤 어휘로도 설명하고 증명할 수 없다. 내가 매력을 느끼는 사람에게 어떻게 나의 마음을 표현할 수 있을지는 정말이지 모를 일이다. 내가 가진 언어의 공백과 틈새를 메울 그 어떤 제스쳐도 찾을 수 없는 순간. 표정을 어찌해야할지, 행동을 어찌해야할지 몰라 허둥대는 순간. 내가 당신을 '개인'으로 생각하고 있으며 나는 당신에게 매료되었다는 사실을 표현하고 싶은 순간. 그러나 한편으로, 내가 당신에게 '개인'인지 확인 받고 싶어서 오랜 망설임 끝에 입술을 겨우 떼는 두렵고 무서운, 하지만 살갗을 뚫고 나올 것 같은 강렬한 심장 박동을 느낄 수 있는 순간. 그 모든 순간을, 나는 사랑한다.


이래서 나는 '통속성'과 싸우고 싶은 것이다. 내가 알 수 없는 힘의 작용에 의해 매력을 느낀 사람이, 사실은 그냥 '개인'이 아니라 통속적인 한 인간 개체에 불과하다는 거, 다시 말해 그냥 손쉽게 볼 수 있는 감자 하나에 지나지 않았다는 걸 깨닫는 순간만큼, 내가 비참해지고 더럽게 느껴지는 순간도 드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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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소이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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