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한 다양성과 단조로운 유사성 사이에서. 소이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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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 2008/08/27 17:58

Gayle Rubin, "The Traffic in Women: Notes on the "Political Economy" of sex", Toward an Anthropology of Women, (New York: Monthly Reviews Press, 1975), pp. 171-177의 초벌 번역^^;

"Vile and Precious Merchandise" -모니크 위티그

『친족의 기본구조』는 인간 사회의 기원과 본성에 관한 인상적인 진술이다. 이는 민족지적인 지구의 거의 1/3을 이루는 친족 체계에 관한 논문이다. 가장 기본적으로, 이는 친족의 구조적인 원리를 인식하기 위한 시도이다. 레비-스트로스는 (『친족의 기본구조』의 마지막 챕터에 요약되어 있는) 그러한 원리들을 친족 자료에 적용하는 것은, 서구 인류학자들을 혼란시키고 신화 속에 빠뜨렸던 금기들과 결혼 규칙에 관한 인지가능한(intelligible) 논리들을 밝혀준다고 주장했다. 그는 여기에서는 요약해낼 수 없는 복잡성을 가진 체스 게임을 구성해냈다. 하지만 그의 체스 말들 중 2개는, 특별히 여성과 관련이 깊다ㅡ"증여(gift)"와 근친상간 금기로, 이 둘의 접합(articulation)은 여성의 교환에 관한 그의 개념에 덧대어진다.

『친족의 기본구조』는 부분적으로 원시적인 사회 조직에 관한 유명한 이론인 모스(Mauss)의 『증여론(Essay on the Gift)』(Shalins, 1972의 챕터 4도 참조하라)에 대한 급진적인 주해(註解)이다. 모스는 원시 사회에서 가장 주목할만한 특징들 중 하나의 중요성에 대해서 최초로 이론화한 사람이다. 즉 선물을 주고, 받고, 보답하는 행위의 정도(extent)가 사회적인 교제를 지배한다는 것이다. 그러한 사회에서는 음식, 주술, 의식, 말(word), 이름, 장신구, 도구, 그리고 힘 같은 모든 종류의 것들이 교환 속에서 순환한다.

당신은 아마도 당신이 축적해 온(pile up) 당신의 어머니, 당신의 여동생(누나), 당신의 돼지, 당신의 얌(yam)을 먹을 수 없을 것입니다. 당신은 아마도 다른 사람들이 축적해 온 다른 사람들의 어머니, 다른 사람들의 여동생(누나), 다른 사람들의 돼지, 다른 사람들의 얌은 먹을 수 있을 것입니다. (Arapesh, 레비-스트로스, 1969:27에서 인용)

전형적인 선물 교환에서는, 당사자들도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 트로브리안드 섬(Trobriand Island)에서는, 각각의 가족들은 얌으로 이루어진 정원을 유지하며, 각각의 가족들은 얌을 먹는다. 하지만 가족이 기른 얌과 가족들이 먹는 얌은 같은 것이 아니다. 수확 시기에 남성은 그가 재배한 얌을 그의 동생이 있는 가족에게 보낸다. 그리고 그가 살고 있는 가족은 그의 아내의 오빠(남동생)에 의해서 먹을 것을 공급받는다(Malinowski, 1929). (재산의) 축적이나 거래(trade)의 관점에서 보자면 이러한 과정은 쓸모 없는 것으로 드러나기 때문에, 이러한 교환 논리는 다른 측면에서 탐구되어왔다. 모스는, 선물을 증여하는 것의 중요성은 선물 증여가 교환 파트너들 사이에서 사회적인 연결(link)을 표현하거나 확인하거나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제안했다. 선물 증여는 선물의 증여에 참여하는 사람들에게 신뢰와 연대와 상호적인 도움이라는 특별한 관계를 제공한다. 선물 교환은 또한 경쟁(competition, rivalry)의 관용적인 표현일 수 있다. 한 사람이 그가 보답받을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증여함으로써 다른 사람을 모욕하는 많은 예시들이 있다. 뉴기니 고지대의 빅 맨(the Big Man) 시스템 같은 어떤 정치 제도는, 물질적인 수준에서 불공평한 거래에 기초해 있다. 야심을 가진 빅 맨은 그가 보답받을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상품들을 준다. 그는 정치적인 위세를 그 보답으로 받는다.

비록 모스와 레비-스트로스 모두가 선물 교환의 연대적인 측면을 강조했지만, 다른 이들은 선물증여에 의해 제공받는다는 것은 오직 사회적 상업의 편재(遍在)적인 수단이라는 점을 강화해줄 뿐이라고 주장했다. 모스는 선물이란 사회적 담론의 줄거리(thread)이자, 특화된 정부 기관이 부재하는 사회가 단결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주장했다. "증여란, 시민 사회내에서 국가에 의해 보장받는 평화를 성취할 수 있는 원시적인 방법이다. . . . 사회를 구성할 때, 증여란 문화의 해방이었다." (Sahlins, 1972:169, 175)

레비-스트로스는 원시적 교환에 관한 이론에다가 결혼ㅡ여성이 가장 귀중한 선물인ㅡ이 선물 교환의 가장 기초적인 형태라는 생각을 덧붙였다. 그는 근친상간 금기가 그러한 교환을 가족들과 집단 사이에 일어날 수 있도록 보증해주는 메커니즘으로 이해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근친상간 금기의 존재가 보편적이지만 그러한 금지의 내용은 매우 다양하므로, 그들은 유전적으로 가까운 짝짓기의 발생을 막기 위한 목적을 가진 것으로는 설명될 수 없다. 그 대신, 근친상간 금기는 섹스와 출산이라는 생물학적 사건 위에다가 족외혼과 동맹이라는 사회적인 목적을 부과한다. 특히 한 집단 내에서의 결합을 금지함으로써, 근친상간 금기는 집단들 사이에 결혼 교환을 강제하게 된다.

딸이나 여동생의 성적인 사용(use)에 대한 금지는, 그들이 다른 남성과의 결혼에 주어지도록 강제시킨다. 동시에, 이 금지는 이 딸이나 여동생에 대한 다른 남성의 권리를 확립시킨다. . . . 한 남성이 취하지 않은 여성은, 그러한 이유로, 바쳐진다(offered up). (레비-스트로스, 1969:51)

근친상간에 대한 금지는 어머니나 여동생이나 딸과의 결혼을 금지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어머니나 여동생이나 딸을 다른 이들에게 줘버릴 수 있도록 의무를 부과하는 규칙이다. 이는 증여에 있어 최상의 규칙이다. . . (Ibid.:481)

여성 증여의 결과는 다른 선물 교환의 결과보다 훨씬 심원하다. 왜냐하면 그렇게 만들어지는 관계는 단지 보답일 뿐 아니라 친족관계이기 때문이다. 파트너를 교환하면 친인척이 되고, 그들의 후손은 피로써 관계를 맺게 된다. "두 사람은 우정으로 만날 수도 있고 선물을 교환할 수도 있다. 나중에 그들은 말다툼하고 싸울수도 있다. 하지만 다른 씨족과의 결혼은 그들을 영원한 예절 속에 결합시킨다." (Best, 레비-스트로스, 1969:481에서 인용). 선물 교환에서는 흔히 있는 경우이지만, 결혼은 단지 평화를 이루기 위한 단순한 활동만은 아니다. 결혼은 아마도 꽤나 경쟁적일 것이며, (이 때문에) 서로 싸우는 수많은 친인척들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반적인 판단에서 보자면 그 이유란 근친상간에 대한 금기가 넓은 관계의 네트워크를 낳고, 다른 이들과 관계를 가진 사람들이 친족 구조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교환의 다른 모든 수준, 양, 그리고 방향(잔인한 것까지 포함해서)은 이러한 구조에 의해서 정해진다. 민족지적인 문학에 기록된 결혼 의례란 여성, 아이, 조개, 말(word), 가축의 이름, 물고기, 조상, 고래의 이빨, 돼지, 얌, 주문, 춤, 돗자리 등이 어떤 유대관계를 이루도록 해주면서 손과 손을 거쳐서 거래되는 부단하고 질서정연한 과정의 순간이다. 친족은 조직이며, 조직은 권력을 준다. 하지만 누가 조직되는가?

만일 거래되는 것이 여성이라면, 그들과 연결된 여성들을 주고 받는 건 남성들이며, 거래의 파트너라기보다는 관계를 이어주는 도랑이 되는 건 여성이다. (*) (그러나) 여성의 거래가 여성이 대상화된다는 것을 필연적으로 암시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현대적인 관점에서보면, 원시적인 세계의 대상들(objectives)은 높은 수준의 개인적인 자질로 충만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선물과 주는 사람 사이의 구분을 암시한다. 만약 여성이 선물이라면, 남성들은 파트너를 교환하는 자들이다. 그리고 상호간의 교환이 그 교환이 가진 사회적 결합의 의사(擬似)-신비적인 힘을 수여하는 것은 파트너이지 선물이 아니다. 이러한 체계의 관계들은, 여성들이 그들의 순환에서 오는 이득을 알아차릴 수 있는 처지에 두지 않는다. 그러한 관계가 남성이 여성을 교환한다는 것을 조건으로 두고 있는 한, 사회적 조직이라는 그러한 교환의 결과물의 수익자는 남성이다.

결혼을 구성하는 교환의 총체적인 관계는 남성과 여성 사이에서 설립되는 것이 아니라, 남성으로 이루어진 두 집단 사이에서 설립된다. 그리고 여성은 교환 속에서 대상의 하나로서만 나타나지, 파트너의 하나로서 나타나지 않는다. . . . 게다가 이는 여자 아이의 감정이 중요한 고려의 대상이 되었을 때조차도 진실로 남아 있다. 제안된 결합에 묵종(默從)하는 동안 그녀는 교환이 일어나도록 촉진하거나 허락한다. 그녀는 이러한 본성을 바꿀 수 없다. (레비스트로스, 115) (**)

파트너로써 선물 교환에 참여하기 위해서라면, 반드시 증여할 수 있는 무엇인가를 가져야 한다. 만약 여성들이 남성에 의해 양도될 수 있다면, 여성들은 그들을 증여해 버릴 수 있는 신세가 아니다.

한 젊은 Northern Melpa족의 남성이 심사숙고하며 말했다. "여성이란 무엇인고하니, '우리가 moka를 만들도록 해줘요, 아내와 돼지를 찾을 수 있게 해줘요, 우리의 딸을 남자에게 줄 수 있게 해줘요, 우리가 전쟁을 할 수 있게 해줘요, 우리가 적을 죽일 수 있게 해줘요'라고 줄곧 떨쳐 일어나서 말할 수 있을 만큼 강한 존재죠. 하지만 실제로 그렇지는 않아요. . . . 그녀들은 단지 집에 머물고 있는 그저 하찮은 잡동사니에 지나지 않죠. 그렇지 않나요?" (Strathern, 1972:161)

실로 여성들이란! 이 젊은 남성이 말한 멜파족의 여성들은 그녀들아내이기에 아내를 갖지 못하며, 그렇기에 그녀들이 갖는 것은 남편들이지만, 이는 전적으로 다른 문제다. 멜파족의 여성들은 그녀들의 남성 친척이 가지고 있는 것과 동일한 딸에 대한 권리ㅡ증여권(소유권은 아니지만)ㅡ를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딸을 남성들에게 줄 수 없다.

"여성의 교환"은 유혹적이고 강력한 개념이다. 이 개념은 생물학이라기 보다는 사회적인 시스템 안에 여성의 억압을 위치시킨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게다가, 이는 우리가 여성 억압의 궁극적인 장소를 상품의 거래라기 보다는 여성의 거래에서 찾아야 한다는 점을 제안한다. 여성의 거래에 대한 민족지학적이고 역사적인 예시들을 찾는 건 분명히 어려운 일은 아니다. 여성들은 결혼 안에서 증여되고, 전투 속에서 취해지며, 호의를 표하기 위해서 거래되며, 공물로 보내지고, 거래되며, 구입되고, 또 팔린다. 이는 "원시적인" 세계에 제한될 수 없다. 그러한 관습들은 더 "문명화된" 사회들 속에서 더 공언되고 상업화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남성들도 거래된다. 하지만 그들은 노예로서, 민완가로서, 운동선수로서, 농노로서, 혹은 다른 파멸적인 사회적 지위로서 거래되지, 남성으로서 거래되는 것은 아니다. 여성들은 노예로서, 농노로서, 성매매여성으로서 거래되지만, 단순히 여성으로서도 거래된다. 그리고 만약 인간의 역사의 대부분에서 남성들이 성적인 주체ㅡ교환하는 자ㅡ이고 여성들이 성적으로 반-대상(semi-object)ㅡ선물ㅡ이어 왔다면, 많은 관습들과 클리셰들 그리고 개인적인 특성들은 많은 부분 그럴듯하고 말이 되는 것처럼 보인다(다른 것들 중에서도, 아버지가 신부를 줘버리는 진기한 관습이 그렇다).

"여성의 교환"은 또한 문제적인 개념이다. 레비-스트로스가 근친상간 금기와 그 금기가 적용된 결과가 문화의 기원을 구성한다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에, 여성의 세계사적인 패배가 문명의 기원과 함께 일어났으며 또한 이 패배가 문화의 선결조건이라는 점을 추론할 수 있다. 만약 그의 분석이 그저 순수한 형태로 적용된다면, 여성주의자들의 계획은 반드시 남성을 근절하는 것보다도 훨씬 성가신 작업을 포함해야만 한다. 그리고 그 계획은 문화를 내다버려야만 하며 지구의 표면 위에 완전히 새로운 현상으로 대체해내야만 한다. 하지만 여성의 거래가 없다면 문화도 없을 것이며, 그것 이상의 다른 이유가 없다면 문화는 당연히 창조적(inventive)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미심쩍인 일이 될 것이다. 또한 "여성의 교환"이 친족 체계의 모든 경험적인 증거들을 충분하게 묘사하고 있다고 보는 것 또한 논쟁적이다. 레레(Lele)족이나 루마(Luma)족 같은 몇몇 문화권에서는, 여성을 노골적이고 공공연하게 교환한다. 다른 문화권에서는 여성의 교환은 추측될 수 있을 뿐이다. 특히 레비-스트로스의 샘플에서 제외된 그 사냥꾼들과 수집가들의 예에서 보자면, 이 개념의 효용성 또한 의심스러운 것이 된다. 무엇이 우리로 하여금 그렇게 유용하지만 여전히 어렵기만한 개념을 만들도록 했을까?

"여성의 교환"은 문화에 대한 정의도 아니며, 문화에 내재해 있는 혹은 문화 그 자체의 작동 원리도 아니다. 이 개념은 섹스와 젠더에 관한 사회적 관계들의 특정한 측면에 대한 예리하지만 응축되어 있는 하나의 이해이다. 친족 체계는 자연 세계의 한 부분 위에 사회적인 목적(end)을 부과한 것이다. 그렇기에 친족은 용어의 가장 일반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생산"이다. 이는 물체(이 경우라면 사람)를 주관적인 목적으로(to) 변형시키고 형성시키거나 주관적인 의도에 의해(by) 변형시키고 형성시키는 것을 말한다("생산"의 이러한 관점에 대해서는 맑스, 1971a:80-99를 보라). 친족은 사람들 사이에 특정한 "재산" 형식을 포함하는 그 나름의 생산, 분배, 그리고 교환의 관계를 갖고 있다. 그 형식은 배타적이거나 사유재산권과 같지는 않으며, 그보다는 다른 사람들 사이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갖고 있는 서로 다른 종류의 권리들을 갖는다. 결혼 교환ㅡ결혼을 특징짓는 의례에서 순환하는 선물들과 물질들ㅡ은 정확히 누가 누구들 사이에서 어떤 권리를 갖는가를 결정하는 풍부한 자료의 원천이다. 그러한 교환들을 보면서 많은 경우에 여성들의 권리는 남성들의 권리에 비하면 훨씬 더 찌꺼기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을 추론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친족 체계는 단지 여성만을 교환하지는 않는다. 그 체계는 성적 접근, 가계의 지위, 혈통의 이름과 조상들, 권리와 사람들ㅡ남성, 여성, 그리고 아이들ㅡ을 사회적 관계의 구체적인 시스템안에서 교환한다. 그러한 관계는 언제나 남성들을 위한 특정한 권리, 그리고 여성들을 위한 특정한 권리를 포함한다. "여성의 교환"은, 친족 체계의 사회적 관계가 남성들이 그들의 여성 친족들에 대해 특정한 권리를 갖는다는 점, 그리고 여성들은 그들의 남성 친족들에게 뿐 아니라 그녀들 스스로에게도 남성 친족들과 같은 권리를 갖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한다는 점에 대해 성급하게 설명한 개념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자면, '여성의 교환'이라는 개념은 여성이 그녀들 스스로에게도 완전한 권리를 갖지 못하는 체계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이다. [그러나] 여성의 교환은 만약 그것이 문화적 필연성(necessity)으로서 비춰질 때나, 특정한 친족 체계에 접근하는 분석을 할 때 유일한 도구로서 사용된다면 난처하게 된다.

만약 레비-스트로스가 여성의 거래를 친족의 기본적인 원리로서 본 점이 맞다손친다면, 여성의 종속은 섹스와 젠더가 조직되고 생산된 관계성의 생산물로써 관찰되어야 할 것이다. 여성에 대한 경제적인 억압은 파생적이며 이차적인 것이 된다. 하지만 섹스와 젠더의 "경제학"이 있으며,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성체계(sexual system)의 정치 경제학이다. 우리는 섹슈얼리티의 특정한 관습이 생산되고 유지되는 정밀한 메커니즘을 측정하기 위해서 각각의 사회를 연구할 필요가 있다. "여성의 거래"는, 성체계를 설명할 수 있는 개념들의 무기고를 건설하기 위한 최초의 한 걸음일 뿐이다.


(*) "뭐라구요? 당신은 당신의 여동생과 결혼하고 싶다고요? 대체 뭐가 문제요? 매부(brother-in-law)를 원하지 않는거요? 만약 당신이 다른 남자의 여동생과 결혼하고 다른 남성이 당신의 여동생과 결혼한다면, 당신은 최소한 두명의 매부(자형;처형;시숙)을 얻을 수 있다는 걸 모르겠소? 그렇지 않고 당신이 만약 당신의 여동생과 결혼한다면 매부를 단 한명도 얻지 못하는데도? 당신은 누구랑 사냥을 갈것이며, 누구랑 정원을 돌볼 것이며, 누구를 방문할 것이란 말이오?" (Arapesh, 레비-스트로스, 1969:485에서 인용)

(**) 여성을 수단으로 하여 남성들 사이에 만들어진 유대에 기초한 사회에 대한 이러한 식의 분석은, 완전히 이해할만한 여성 운동의 분리주의자적인 응답을 만들어 낸다. 여성들 사이에서의 무매개적인(unmediated) 유대에 기초한 사회 조직을 만들려는 시도라는 점에서, 분리주의는 이 사회 구조 속에서의 변화로 보일 수 있다. 분리주의는 또한 여성에 대한 남성들의 "권리"에 대한 근본적인(radical) 거부로서, 그리고 여성들 스스로에 대한 여성의 권리에 의한 선언으로서 보일 수 있다.

Posted by 소이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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