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계급은?

생각 2008/08/03 17:34

나에게 계급이란 무엇일까? 인종, 성, 장애 등등, 소위 '사회적'인 분류를 위한 범주의 하나에 지나지 않을까?

벨 ㅎ스의 새 책, <벨 훅ㅅ: 계급에 대해 말ㅎ지 않기>를 읽으면서 눈물을 펑펑 쏟았다. 슬펐다. 이 책의 원제이기도 한데, 도대체 "우리는 어디에 서 있는가"?

벨 훅ㅅ가 어렸을 때와 성장 과정에서 겪었던 일들, 그리고 자신이 성장한 집 주변에 있는 여대에 진학 했다가 겪었던 온갖 계급-인종 차별들, 좀 더 인종적으로나 계급적으로 평등함을 지향한다고 알려진 스탠포드 대학에 진학했을 때에 겪었던 모든 계급성들... 이 모든 것들이 갑자기 현실처럼 나에게 다가왔다. 살아 나가기에 한국도 엄청나게 끔찍한 공간이지만, 미국이라고 해서 다를 바는 전혀 없었던 셈.


그렇다면 나의 계급은 어떨까? 나도 완전 잘사는 집안의 아이는 못된다. 아빠는 한 시골에서는 제법 높은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행정 관료이고, 엄마는 읍내의 한 병원에서 사무일을 본다. 엄마와 아빠 사이에는 3명의 자식이 있고, 첫째와 둘째는 이름만 대면 많이들 아는 대학에 다니고 있고 셋째는 집에서 2시간 거리인 다른 도시에서 유학중인 고등학생이다. 이들의 학비와 생활비를, 빠듯하기는 하지만 내 부모님은 다 대주고 있다. 나의 경우에도 매달 34만원의 방세와 6만원 가량의 핸드폰 비, 그리고 10여만원 정도의 용돈 보조를 해주고 있다. 나도 40만원의 과외 수입을 갖고 있으며 이걸로 그냥 한달은 그럭저럭 살아간다. 놀 것도 다 놀고 살 것도 대충은 다 사면서. 약소하지만 1만원의 후원금도 내고 있고.

어쨌든 나는 무리 없이 학교를 졸업했다. 학비를 마련하거나 아르바이트를 많이 하든지, 돈을 벌기 위해 아웅다웅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며 '쿨하게', 그리고 내 하고 싶은 짓 다하면서 졸업을 앞두고 있다. 교지에서 5학기를 보냈고 다른 단체나 학회 등에서도 시간을 많이 보냈다. 이렇게 '운동권 경계인'의 감수성으로 학교 생활을 하면서, 나는 내 소속 과의 수업들을 경멸하면서, 그리고 많은 타인들을 경멸하고 비난하고 증오하면서, 그러면서도 나와 어딘가 비슷한 이들과는 잘 어울리면서 4년 반을 보냈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이 과정에서 계급은 굉장한 역할을 했다. 아이들을 만나는 과정들을 쭉 돌이켜보면, 나는 나와 비슷한 아이들을 찾으려 했던 것이다. 그래서 서울의 아이들과는 거리를 뒀고, 대부분 지방에서 유학을 온 아이들에게 친밀함을 느꼈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부모님이 교수 등의 전문직인 아이들이라기 보다는, 대개 행정 관료나 선생님 내지는 (어느 정도의 수입이 있는) 노동계급의 아이들 사이에서 편안함을 느낄 수 있었다. 너무 가난해 보이거나, 너무 부자처럼 보이는 아이들에게 편안함을 느끼는 일은 굉장히 어려웠다. (물론 '보이는'게 문제 였다. 실제로 그 아이가 어떤 계급에 속해 있든 상관없이!)

아마 계급은 나에게 '환상'의 영역이었던 것 같다. 계급성, 계급투쟁의 대의, 이 모든 것에 동의를 하고 있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남의 일'이었다. 가끔은 계급이 어떻고 저떻고 말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만약 그 '남의 일'이 '나'에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다는 점을 느끼게 되면, 나는 아마 입에 똥을 물고 끔찍한 말들을 내뱉으며 경멸하고 거리를 뒀을지 모를 일이다. 가난은 그저 끔찍하거나 아니면 아름답거나 둘 중 하나여야만 했다. 물론 그것은 같은 것을 지칭하는 다른 어휘일 뿐이다. '아름다운 가난'이나 '끔찍한 가난'이나, 둘다 계급이나 가난을 타자화하는 말인 점에서는 완전히 똑같다.

생각해 보면, 내가 다니는(이제 곧 졸업이군) 대학은 계급이 높은 학생들이 주로 다닐 것으로 생각되는 학교이다. 단지 경제 자본 뿐 아니라, 문화 자본까지도 두루 갖춘 부모들을 둔 학생들이 실제로 굉장히 많다. 그리고 그것은 그들의 옷과 신체와 행동거지와 사고 방식 모든 것에 반영되어 있다. 촌스러움과 세련됨 사이에서 많은 아이들은 갈등을 겪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오랜 시간 젖어 있어서 '자연스러운' 세련됨을 풍기는 아이들과, 이제서야 세련됨을 학습하는 아이들 사이에서는 알 수 없는 거리감과 요원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웬만한 노력이 없으면 이 거리는 좁힐 수 없었다.

정치적 올바름마저 계급을 따라가곤 했다. 그것도 세련됨의 일종이었으니까, 잘 나가는 아이들은 너그러운 휴머니스트로서 정치적인 올바름까지도 쉬이 가질 수 있게 되는 모양이다. 비싼 옷과 가방을 갖고 있는 아이들이 수업시간에 공정 무역, 가난한 사람들, 환경 오염에 대해 운운하는 모습에 심한 불편함이나 때론 역겨움을 느끼면서도 그건 단지 불편함이나 역겨움일 뿐이었다. 그것을 말할 사람도 별로 없었으니까.

나는 그런 점들을 마음 속으로는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에 대해서 굳이 의식하거나 표현하려고 한 적은 없었다. 주변에서도 그런 이야기들은 잘 하지 않았다. 가까운 친구들도 계급에 대해서는 잘 이야기하지 않았다. 성, 장애, 환경, 인종 등등에 대해서는 이야기할 수 있었지만, 언제나 계급은 껄끄러운 주제였다. 자기가 '현재' 돈이 없다는 사실을 말하는 아이들은 많았지만, '왜' 돈이 없는가, 즉 자기의 계급 내지는 자기 부모의 계급이나 재산에 대해서는 잘 말하지 않았다.

어쩌면 그것 모두는 이 학교에 다니는 모든 학생들의 관계를 지배하는 일종의 규범 내지는 규칙 같은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계급에 대해 말하지 않는거. 계급에 대해서 말한다는 건, 부끄러운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열등감 이런거, 잘 인정하지 않는 사회이기 때문이고, 내가 다니는 이 학교는 이 사회의 '중심부'에 있는 학교이기 때문이다. 네가 잘나서 잘하면 되는거지 왜 남 탓을 하느냐, 너도 잘나서 여기까지 온 거 아니냐, 너도 이제 계급 상승을 하고 있는거 아니냐 하는 암묵적인 이야기들이 모든 구성원들을 지배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암묵적인 이야기'라는 말은, 설령 자기 스스로는 계급 시스템의 모순 등을 알고 있고 그것에 대해서 말할 수 있음에도, 정작 자기 문제가 되면 자기 탓 내지는 개인 탓으로 돌리기 쉽기 때문에 그렇다. 그리고 때로는 이 사회의 계급성이나 가난을 목격했을 때 '슬퍼할' 줄도 알아도, 그건 결국 1시간 지나면 잊어 버릴 문제이기 때문에 그렇다. 그럼 '나'의 계급성은 결국 '나' 스스로 열심히 극복해야 한다. 그걸 다른 사회적 범주와 차별 탓으로 하는 건 안된다. 학벌도 갖췄는데 뭐가 문제랴. 하는 생각들.


학교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내가 성장한 지역을 보면 이 계급 문제는 좀 더 뚜렷하게 드러난다. 나는 완전 변두리인 시골에서 자랐고, 그 지역에는 가난한 아이들이 더 많았다. 초등학교 중학교 동창 아이들 중에 잘 사는 아이들은 굉장히 드물었다. 그리고 그 아이들은 많은 경우 내가 자란 고향에서 머물고 있으며, 부모님의 계급이나 가업을 그대로 이어받는 것으로 알고 있다. 나는 굉장히 드문 케이스이다.

부모님이 종종 하는 말 중에 "대학에 입학한 것만으로도 됐다"는 말이 있다. 나는 이제야 이 말을 실감한다. 나는 계급 이동에 이미 가까이 다가왔으며, 설령 앞으로 어려움을 겪을 수는 있을지라도 나의 학벌 자원이나 문화 자본 등은 적어도 한국 사회에서는 일종의 계급 보증서로서 나의 계급 이동을 철저히 보증해줄 것이기 때문이다.


정말 모르겠다. 그냥 끔찍하고 슬프고 그렇다.

벨 훅ㅅ의 책의 원제인 "where we stand: class matters" 마냥,
"나(우리)는 어디에 있는가?" 하는 질문.

정말 중요한 주젠데 나는 너무나 부분적으로만 대답하고 있었다.

'생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로테스크한 풍경 하나  (0) 2008/09/07
유학을 간다고 해서  (2) 2008/08/31
나에게 계급은?  (10) 2008/08/03
촛ㅂ집회에서의 ㅇㅂㄱ '논란'을 보며  (2) 2008/06/12
"시민고객"  (2) 2008/06/04
Posted by 비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