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께 이대에서 있었던 로지 브라이ㄷ티의 강연회에 갔었다. 해외 석학 초청 강연을 명목으로 진행하는 일련의 강연 중에 하나였다. "긍정 윤ㄹ학과 생ㅁ 정치Affirmative Ethics and Bio-politics"라는 제목의 강연. 사실 뭐 강연 내용이라고 해봐야 별 것 없었다. 사실 고작 1시간 30분 동안 하는 강연에서 우리가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까? 잘 해봐야 지극히 당연한 강연으로 끝나거나, 그럴싸하고 화려한 말들의 향연이 되거나, 이미 알고 있는 걸 확인하거나, 뭐 그런 거지. 번역된 브라ㅇ도티의 책(<유목ㅈ 주체>)은 조금 읽다가 내 성정에 안 맞아서 던져 버렸지만, 그래도 어쨌든 유명한 페미니스트로 알려진 강연자니까 강연을 듣다 보면 공감이라도 할만한게 있을까 싶었는데 역시 책을 읽었을 때와 같이 공감도 거의 가질 않았다. 사실 지향하는 바나 생각하는 건 통하는 데가 있는데, 표현상의 문제랄까 태도상의 문제랄까? 요약하자면, 내가 앞으로 읽을 일은 없는 사람.
무엇보다 짜증스러웠던 건, 브라이ㄷ티의 강연 태도였다. 소위 해외 석학(distinguished professors)들이ㅡ특히 미국이나 유럽 출신의ㅡ한국 땅에 강연을 오면 많은 경우 느껴왔던 거지만, 이들은 정말 명성과는 달리(사실은 명성에 걸맞게) 불성실하거나 거만하거나 소통하려는 노력을 보여주지 않거나 뭐 그렇다(내가 경험한 최악의 강연자들은 울리ㅎ 벡과 요한 갈ㅌ). 한국이라는 '지식 불모지'에 자신이 '지식 선진지'에서 연구하고 주워 들은 결과물을 몇 방울 뿌려주시고 우리는 그 단물 몇 방울을 빨아마시려고 모여 들고... 겨우 맛봤더니 그냥 흔해 빠진 수돗물이고. 그런 점에서는 브ㄹ이도티도 마찬가지였다. 나한테는 약간의 충격이었달까. 안 이런 유명한 외국인 강연자는 정말이지 드문 것 같다.
그런데 내 경험상으로 이런 태도를 보이는 학자들은 대개 영어에 매우 능통했다. 언어가 주는 권력 탓일까(니들도 한 번 언어때문에 헤매어 봤음 좋겠다고! 왜 니들은 항상 자신감에 넘칠 수밖에 없는거지!)? 조금은 다른 얘기지만, 다른 몇개의 심포지움을 기웃기웃 했을 때 그곳에서 발표를 했던 잘 알려지지 않은 젊은 연구자들의 태도와는 사뭇 달랐다. 그들에게서는 뭔가 진정성 같은 게 느껴졌고 심포지엄에 온 사람들과 소통하려는 노력 같은게 잘 보여서 듣는 도중에도 (비록 질문 같은 건 안해도) 내가 살아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아왔다. 꼭 언어의 문제가 아니더라도. 그러나 위에서 언급한 저런 학자들의 강연을 들으면 정말 답답하고 내가 죽어버린 느낌이다. 강연에서 좀 겸손해달라, 우리를 '배려'해달라, '언어'의 문제에 보다 민감해달라, 뭐 이런게 아니다. 지식 전달 잘 해주고 가면 나쁠게 뭐가 있나. 하지만 뭔가 근본적으로 뒤틀려 있다는 느낌이다. 만나면 안되는 사람들이 만나고 있는 느낌이다. 혹은, 아직 만날 때가 아닌 사람들이 만나고 있는 느낌이다.
어휴. 내 언어가 부족해서 느낌을 기술하기 어렵다. 아 암튼. 그냥 내가 가진 자격지심이면, 차라리 좋겠다. 우울해 흑...
어쨌거나 나는 또 내일 있을 비토리오 ㅎ슬레의 "Philosophy and Its Languages: A Philosopher's Reflections on the Rise of English as Universal Academic Language"라는 강연을 들으러 갈 예정이다. 제목은 되게 거창하고 끌리는데 결과는 어떨지 궁금..
'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초등학교 때의 반공 웅변 대회 원고 (0) | 2008/08/15 |
|---|---|
| 병원이 싫다 (2) | 2008/08/14 |
| 지식 식민지? 언어 식민지? (8) | 2008/07/28 |
| 고민 2개 (0) | 2008/07/28 |
| 오후 내내 (0) | 2008/07/27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