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한 다양성과 단조로운 유사성 사이에서. 소이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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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 2009/11/11 23:23

블로그 재오픈하고 예전 글들 읽다가 다시 읽고 싶어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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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작년 여름 장마비가 쏟아지던 어느 날, 나는 몹시도 귀찮음을 많이 타는 친구와 함께 종로에서 꽤 비싼 낙지 볶음을 먹고 영화 한 편을 보았다. 그 영화의 제목은 몹시 흥미롭게도, <친밀한 타인들Intimate Strangers>. 프랑스 영화였는데, 제목과는 달리 내용은 그닥 맘에 들지 않아서 지금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어쨌든, "친밀한 타인Intimate Stranger".

아주 매력적인 말이다. 왜 매력적인가? 이는 아마도 시쳇말로 "사랑"이라고 하는 것, 혹은 "연애 감정"이라고 하는 것의 기반을 이루는 것 중 하나이기 때문일 것이다. 첫눈에 반하는 것을 믿는 사람들, 혹은 새로이 만난 사람들과만 사랑에 빠지는 사람들은 이 말에 암묵적으로나마 매력을 느끼리라. (우리 어디서 본 적 없어요? 왜 이렇게 친하게 느껴지지?)

나의 인식 체계에 아직 포섭되지 않은 타인. 나의 세계에 상처를 입히며 비집고 침투해 오는 타인. 내가 만든 경계를 가볍게 넘어, 내 안의 리비도를 자극하는 타인. 다시 말해 타자성otherness을 가진 '특별한' 타인. 그 타인이 가진 그 무엇(x, objet a) 때문에 우리는 그를 '친밀하다'고 느낀다. (영화 <클로저>에서 나탈리 포트만과 주드 로가 사랑에 빠지는 것은, 나탈리 포트만의 "Hello, stranger"라는 대사 이후이다. 그녀는 기억도 못하지만.)

이는 보다 의미심장한 뜻을 가진다. 한국어로 친밀하다는 말의 영어 단어는 intimate이다. 이 단어는 협박하다, 위협한다라는 뜻의 동사인 intimidate와 매우 닮았다(어원적으로는 동일한 기반을 가진다 들었다). 이와 비슷한 단어이자 명사 형태이기도 한 intimity는 친밀한 사이, 혹은 은밀이란 뜻을 가진다. 다시 말해 '친밀한 것'은 곧 한편으로는 나와 너의 세계를 서로가 위협한다는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서로의 세계를 (은밀하게 둘만) 서로 의지하고 저당잡는다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한 사람이 가진 세계의 경계란 사실 너무나 취약한 것이어서, 약간의 위협과 협박으로도 그 세계는 간단히 벌거벗고bare 상처 입고야 만다. 특히 의미심장한 '특별한' 타인이 침투할 경우에는. 그 침투와 그 침투로 인한 깊은 상처, 나의 벌거벗은 모습이 누군가에게 노출된다는 것. 나의 허약한 세계가 벗겨진다는 것. 그것이야 말로 소위 "사랑"이라는 것의 시작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내가 생각하는 "사랑"은 "애착" 내지는 "집착"을 언제나 동반하는 것이다. "사랑"은 그 자체로 성욕과는 다소 별개의 문제다. (사랑에서 성욕의 문제는 애착과 집착 때문이다. 애착과 집착은 아주 쉽게 성애화eroticize된다) 이는 벌거벗겨진 후의 부끄러움, 그리고 침투로 인한 상처란 오직 그 타인에게서만 '보상'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일종의 리비도 경제. 물론 이건 '욕망'이나 요새 유행 좀 타시는 '쾌락'으로서의 사랑과는 좀 다른 문제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처음 만나는 타인으로부터 "친밀함"을 느낀다는 건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 과거의 기억을 현재에 소환하고, 그 기억을 현재화하려는 끊임없는 심리적 작용이 "친밀한 타인"을 만들어 내는 것이라는 생각이다. 그것은 아주 일시적인 경험일 뿐이고, 기회만 된다면 언제든 박살날 수 있는 아주 허약한 판타지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친밀한 타인"을 만나면 설레기 마련이다. 우리는 "친밀한 타인"을 만나면 쾌재를 부른다. 그가 주는 매력을 어찌 쉽게 거부할 수 있으랴. 나도 마찬가지고...


그러나 이제는 태도를 바꿔야 한다는 생각을 오래 전부터 하고 있다. 그건 바로, "친밀한 낯섦intimate strangeness"에 대한 나의 모든 기대를, "낯선 친밀함strange intimacy"으로 바꾸는 것.

말은 쉽지만 이건 정말이지 어려운 일이다. 우리는 흔히 아주 친밀한 이로부터 낯선 모습을 발견할 때 우울증에 빠진다. 그가 갑자기 왜 저런 모습을 내게 보일까. 혹시 내가 뭔가 잘못한 것일까. 아, 혹시 우리 관계가 이제 점점 멀어진다는 것을 뜻하는 걸까. 불안과 공포, 엄청난 집착과 질투의 시작. 이질감. 슬픔. 우울. 세계의 붕괴. 끝도 모를 심연 속으로. 우리는 이걸 느낄 때, 진한 외로움을 느낀다.

하지만 누군가의 "낯선 친밀함"을 내 안으로 감싸 안는 태도야 말로, 한 타인을 대하는 '최대의 예우'라 할 수 있다. 관성에 도전할 수 있고, 매너리즘을 경계하며, 한 인간은 언제든 변화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긍정한다. 내 세계는 언제나 당신에게 열려 있음을. 우리 둘이 만든 이 세계가 변화한 것은 어디까지나 당신과 내가 조금 변했기 때문이지, 우리 관계 자체가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님을. 그리고 이는 내가 사람을 바라보는 관점, 그리고 감수성이 무뎌지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하는 하나의 방법이기도 하다.

(그리고 아주 현실적으로 지금의 나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태도이기도 하다. 나를 나로부터 해리시키기. 나를, 나의 바람을, 나의 욕망을 나 스스로 관찰하기. Protect me from what I want...)


나는 사람을 오래 사귀고 싶다. 나와 너, 두 타인 모두가 이 세상에서 사라지는 그날까지 이어질 수 있는 오랜 만남. 애정. 관심. 편안함. 익숙함.
 
그러면서도 때로는 늘 새롭고 이질적인, "낯선 지인strange intim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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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소이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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