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집회, 그 속에서 느끼는 일말의 불편함
이명박 정권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반대로 시작된 촛불 집회가 ‘쇠고기’ 이슈를 넘어 점점 활발해지고 있습니다. ‘불법시위의 오명을 넘어서’ 이제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선 시민들은 국가의 부당한 정책 추진과 권력 남용에 대항하는 당당한 시민으로서 비추어지고 있습니다. 특히 경찰(정부)의 강경 진압이 크게 이슈가 되었고, 수많은 시민들이 강제 연행되는 과정에서 인권침해를 겪었습니다. 그 전까지는 ‘전경들이 더 불쌍하다’ 고 말하던 사람들마저도 ‘과연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인가’하는 의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비로소 우리들은 의회민주주의의 틀을 넘어서, 우리의 요구를 거리에서 외치는 것에 익숙해지고 해방감을 맛보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집회와 집회를 둘러싸고 이야기되는 어떤 것들은 집회에 참여하면서도 찜찜한 기분이 남도록 만들기도 합니다.
불편함 하나 : 관악의 학우가 전경에게 다쳤다! 그런데...
5월 31일에는 10만명 넘는 시민들이 시청광장에 모이고, 다음날 새벽에는 200여명이 강제 연행되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물대포를 맞고, 방패에 찍히고, 소화기 가루를 먹었습니다. 그 와중에 서울대 학우들 역시 물대포에 맞아 피멍이 들고, 방패에 찍히고, 연행되기도 하였습니다.
이 와중에, 관악 학우 한 명이 전경에게 맞아서 크게 다쳤습니다. 언론은 이 학우의 실명을 포함한 신상 관련 정보를 대서특필하면서 특히 ‘서울대 여학우’라는 점을 부각시켰습니다. ‘서울대 여학우, 군홧발에 무참히 밟히다’라는 식의 보도 태도는 학내외를 막론하고 별로 다르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이 짧은 한 문장은 우리에게 복잡미묘한 뉘앙스를 전달합니다. 우선 군홧발에 밟힌 사람이 ‘서울대’라는 점이 눈에 띕니다. 또한 그냥 ‘서울대 학우’ 일 뿐만 아니라 ‘여학우’라는 점이 그녀를 ‘무참히’ 밟은 ‘군홧발’의 폭력성을 부각시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어떻게 약한 여자를 그렇게 무자비하게 폭행할 수가 있는가?’ 하는 지점에서 분노합니다.
물론 전경으로 표상되는 국가에 의한 폭력은 합법의 가면을 쓰고 자행된 것이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적어도 우리들만큼은 그녀를 그렇게 무력한 피해자로만 호명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녀 역시 ‘예비군 오빠’들이나 ‘넥타이 부대’와 마찬가지로, 혹은 그들보다 더욱 간절한 마음으로 시민으로서의 정당한 권리를 요구하기 위하여 집회에 참석하였을 것입니다. 또한 국가가 자행하는 조직적이고 합법적인 폭력에 맞서 목소리를 내려고 자신의 양심에 비추어 행동하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현재 그 학우의 피해를 이야기하는 담론 구도는 그녀를 그저 군홧발에 짓밟힌 ‘여자’로 치환함으로써 그녀 역시도 한 사람의 당당한 시민이라는 사실을 잊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불편함 둘 : “남자분들 앞으로 나오세요, 여자분들 뒤로 빠지세요”
집회 현장에서 살수차가 등장하거나 방패부대가 밀고 들어올 때 항상 터져나오는 말입니다. 여남을 막론하고 간절히 ‘남자분 없어요?!’라며 ‘맨 앞에서 버티어 줄 건장한 남자 시민’을 목놓아 찾기도 합니다. 실제로 물대포를 맞더라도 물러서지 않으려고 버티는 여성들을 잡아끌어내고, 자신이 대신 앞으로 나가는 ‘흑기사’들도 있었습니다. 어떤 이들은 아예 군복을 입고 등장하여, 경찰의 방패를 코앞에서 마주하며 멋진 ‘예비군 오빠’들로 칭송받습니다. 2008년 현재, 집회에서 나오는 말들이고 일어나고 있는 일들입니다. 우리 안에 있는 성별분업 이데올로기는 민주주의의 정점이라는 집회 현장에서도 발현됩니다.
물론 전경과의 대치 상황에서 조금 더 잘 버틸 수 있거나, 다친 곳이 없는 사람이 앞장서서 전경의 폭력에 대항하고 대오가 흐트러지지 않도록 버틸 수는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사람이 꼭 ‘건장한 남성’이어야만 할 필요는 없습니다. 집회에서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이 얼마나 힘이 있느냐, 혹은 그 사람의 성별이 무엇이냐가 아닙니다. 오히려 그 사람이 얼마나 정부와 경찰의 폭력에 대항할 의지가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싸울 의지가 없는 최홍만보다 ‘폭력경찰 물러가라’를 소리 높여 외치는 여성이 오히려 집회 현장에서는 더 강한 사람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자분들 뒤로 빠지세요.’와 같은 말은 그 순간 집회에 참여한 여성들을 ‘시민’의 범위에서 배제시키고 투쟁의 현장에서 소외시키는 결과를 낳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앞에서 버티고 싶은 분이 앞으로 나와 주세요.’ 라는 말로도 충분합니다. 신체적 접촉이 불편하거나 전경과의 직접 충돌이 싫은 사람이라면, 여남을 불문하고 조금 더 뒤쪽에서 자리를 지키며 힘을 실어줄 수도 있을 것입니다.
불편함을 딛고 거리로 함께 가요!
‘촛불집회’는 광우병 쇠고기 수입 반대라는 사안으로 시작하여 현 정권의 무도한 신자유주의적 정책에 대한 총체적 반대의 흐름으로 발전하였습니다. 어쩌면 이번 촛불집회는 우리 사회 전반의 구조와 이념을 재구성하는 새로운 흐름의 시발점이 될지도 모릅니다. 그렇기에 그 속에서 우리 스스로 ‘시민’의 의미와 범위를 새로이 구성해야 할 필요성이 생겨납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여성들은 그저 국가권력의 폭력에 무기력하게 당하거나 시위대 남성들의 보호를 받는 ‘딸, 여동생’으로 불리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집회에 나갔다가 다친 관악의 학우와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어깨 걸고 싸웠던 시민의 한 사람으로 기억되기를 원합니다.
거리에서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http://club.cyworld.com/edu-fem
'스크랩'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도키도키한 행사들 (0) | 2008/07/24 |
|---|---|
| 어떤 매플소프들 (0) | 2008/07/13 |
| 촛불집회, 그 속에서 느끼는 일말의 불편함 (4) | 2008/06/20 |
| [학회평론 14호] 변방에서 중심으로 (2) | 2008/06/15 |
| '미친소'가 아닌 '병든소' 이야기 (0) | 2008/06/07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