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한 다양성과 단조로운 유사성 사이에서. 소이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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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 2008/06/18 14:07

(아빠의 어머니) 할머니는 내가 중 2때던가, 3때 던가 돌아가셨다. 급작스러운 죽음이었다. 당시 나는 밤 늦게 게임을 하고선 늦게 자버렸고, 잠에서 깨어나니 할머니는 이미 집에 계시지 않았다. 새벽에 앰뷸런스가 와서 난리를 피웠었고, 아빠는 할머니와 병원으로 가 있는 상태였다. 잠이 많았던 나와 내 동생들은 뒤늦게 깨어나 멍하게 집안의 상황을 파악하기 시작했고, 나는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건지 알 수가 없었다.

잠이 겨우 깬 나에게 엄마는 할머니가 새벽에 갑자기 돌아가셨다고 말해 주었다. 그리고 엄마는 나더러 밥을 먹고 일단 학교에 빨리 가라고 재촉했다. 잠이 덜 깬 나는 여느 때처럼 학교에 자전거를 타고 가서 여느 때처럼 수업을 들었다. 나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몰랐다. 나에겐 죽음이라는 개념이 없었다. 그렇데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니?

상황 파악이 가까스로 된 것은 수업을 듣던 도중이었다. 나는 컴퓨터 수업을 듣고 있었는데, 거의 자유시간처럼 웹 서핑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친구(지금은 아니다만) 두 명이 내 표정이 안 좋아 뵌다고 말을 걸었다.

그 순간 눈물이 났다. 대체 하룻밤 사이에, 내가 게임을 하고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난 새애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그리고 내가 얼마나 엉뚱한 곳에 와 있는건지, 그때서야 겨우 깨달았기 때문이다. 수업이 끝나고 나는 눈물을 펑펑 쏟으며 자전거를 타고 미친듯이 달려 집으로 도착했다. 집과 학교 사이는 평소 10분 정도 걸리는 거리인데, 그날은 정말 미친듯이 달렸는데도 왜 30분 이상 걸린 것처럼 느껴지는지 모를 일이었다.

집에 도착하니, 이미 '초상집' 분위기로 바뀌어 있었다. 나는 자전거에서 내린 뒤 자전거를 받쳐둘 생각은 안하고 집어 던진 채 울면서 집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 때 어떤 어른들이 했던 말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쯧쯧, 제 할머니 돌아가신줄도 몰랐구먼..." 맞는 말도 아니고 틀린 말도 아닌 그렇게 무심코 던진 누군가의 말이, 내겐 지금까지도 외상적인 상처로 남아 있다.

나는 많이 울었다. 나는 지금도 소리내서 잘 울지 못하는데, 그 땐 정말 엉엉 울었다. 아마 내 기억에 남아 있는 한에선 처음이자 마지막인 것 같다.


할머니 상喪을 하는 3일 동안 나는 또 다른 잊지 못할 경험을 했다.

나는 아빠가 그렇게 거칠게 화를 내는 건 처음 보았다. 자기의 자식들에게. 나는 아빠에게 '맞은' 기억도 아주 어릴 적 오락실에 갔다왔을 때 딱 한 번인가 밖에 없다. 그리고 그 때를 제외하곤 지금까지도 아빠가 진정으로 화를 내는 건 본적이 없다. 아니, 단지 화를 내는 것 뿐 아니라, 아빠의 어떤 '인간적'인 감정이 들어간 말과 행동들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보았던 것 같다. 내가 전교 1등을 (평생에 걸쳐 딱 한 번) 했을 때에도, 내가 소위 '명문 대학'에 붙었을 때에도, 내가 그 어떤 못된 패악질과 못된 짓을 했어도, 아빠는 그냥 무뚝뚝하게 고개를 끄덕이거나 살짝 미소 짓기만 할 뿐이었다. (그리고 아빠는 우리가 아니라 그 기쁨, 슬픔들을 모두 자기 친구들과 나누고 풀었다)

그런데 그날, 아빠는 달랐다. 너희는 어떻게 새벽에 그 난리를 피웠는데 잠만 잘 수 있었냐고, 할머니는 죽어가고 있었는데 너희는 어떻게 그렇게 태평하게 잠만 잘 수 있었냐고, 그렇게 아빠는 울면서, 역시 울고 있던 우리들에게 마구 소리를 질렀다. 나는 그 때 아빠가 너무 무서웠다. 변명은 커녕 아빠에게 그냥 위압되어서, 학교에 있을 때에야 뒤늦게 깨달았던 그 죄책감과 슬픔과 상실감에 짓눌려서, 나는 아무말도 하지 못하고 그냥 울었다.


왠지 그 때 이후 나는 장례식, 내지는 상喪을 치르는 게 정말 싫어진 것 같다.

나는 나의 장례식을 치르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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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소이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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