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방대에서 학생운동을 한다는 것 ―
삼류대에서 학생운동에 기웃거리는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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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 오십시오. 접속을 환영합니다."
독자가 이 글에 접속하여 필자와 본격적으로 소통하기에 앞서 에피소드 하나 풀어 보겠다. 이 원고를 처음 청탁 받고는 서울대 <학회평론>에서 청탁 받았다고 주위에 자랑했다. 동료들은 '서울대'가 주는 '경이로운 무게' 만큼의 부러움과 질시를 보냈다. 그리고 이 유치한 자랑에 유치하게 대꾸했다. '지방대를 다니는 것은 맞지만 니가 학생운동을 하고 있긴 하느냐'고. 동료들의 말뜻은 필자가 열심히 운동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글 쓸 자격이 없다는 얘기였지만, '너와 내가 하고 있는 일이 과연 그렇게 청탁 받을 만큼의 가치를 갖는 일일까?'라는 자괴감이 근저에 깔려 있었다. 그것은 또한 우리가 학생운동을 하긴 하나 하는 의문을 내포하는 것이기도 했다. 즉 우리의 운동이 수준 낮다는 의식이 깔려 있는 것이다.
바보가 아닌 이상 청탁자가 요구하는 글의 형식이 지역 학생운동의 현황을 담은 주간, 월간지의 '르포'가 아님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건 한겨레신문 지방면만 꼼꼼히 수합하면 어느 정도는 알 수 있다. 청탁자의 요구는 지방대의 운동 조건과 차별성에 대한 얘기를 써 달라는 것이었다. '지방대에서의 운동'의 외연은 '서울 아닌 다른 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운동이지만 그것은 지리상의 위치로 환원되지 않는, 운동에 있어서 상이한 질과 수위를 갖는 변방의 문제인 것이다. 따라서 그 지역의 특수한 조건과 결코 분리될 수 없는 문제겠지만 먼저 변방 일반이 갖는 조건부터 검토해 보고자 한다.
하지만 이 글에서 할 수 있는 얘기는 초두에서 꺼냈던 동료들과의 유치한 대화만큼이나 너절한 것일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아무리 멋드러지게 써보려고 시높시스를 짜 봐도 토로와 배설의 수준을 넘어서지 않는 이유는 필자의 능력 부족에도 기인하겠지만 이 글의 테마, 즉 '지방대에서 학생운동을 한다는 것'이란 테마 자체가 지방대생이 갖는 의식과 살아가는 삶을 자기 고백적으로 쓸 수밖에 없는 테마이기 때문이다. 이 글을 써 가면서 청탁한 이를 맘속으로 '이 따위 주제를 나한테 주다니, 나쁜 놈!'이라고 욕했던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공부 못해서 지방대 다니는 것도 서러운데 그걸 얼굴도 모르는 독자 앞에 드러내 놓으라는 요구가 괘씸했던 것이다. 그래서 글은 거의 열 받았던 기억을 반추하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지금이라도 이 글이 무가치할 것 같다는 판단이 들면 독자들은 즉각 다음 글로 뛰어넘길 바란다.
go margin
아무도 우리의 입학을 축하하지 않았다. 그것은 부모님의 기대와 성적, 가정형편 등과의 불만족스러운 타협에 불과했다. 엄청난 양의 입학금과 등록금을 내고서 들어온 학교는 기대에 비해 형편없었지만, 재수, 삼수를 하고 있는 친구들을 생각하며 그나마 다행스러워 했을 뿐이었다. 지방대가 한국 자본의 교육-노동시장에서 하위 관리자를 생산하는 부위라는 사실을 우린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조금 후진 학교일 뿐이야', '열심히 살면 뭔가 되겠지'라고 위안하면서 계층상승의 욕망을 요체로 하는 향학열을 부채질했다. 그러나 대학은 이미 수직서열화 되어 있었다. 그리고 이 대학의 서열은 큰 이변이 없는 한 평생에 걸쳐 내 삶에 확대재생산되어 투영될 것이었다. 이 사실이 너무 끔찍스러워 재수를 하거나 편입학을 감행해 보지만, 이는 결국 계층상승 욕망을 더욱 깊숙이 내면화시키고 자본의 질서가 갖는 힘을 절대화시키는 데로 귀착된다.
그러다가 우리 삶에 큰 이변이 생겼다. 재수 없게 학생운동을 하게 된 것이다. 이 큰 이변은 서열에도 영향을 끼친다. 미국 CIA의 분류에 따르면 한국의 제6계층인 직업적 운동권 계층으로 추락할 위기가 도래한 것이다. 누가 뭐래도 한국 학생운동은 직업적 운동가를 양산하는 주요 시스템이다. 80년대 그 치열했던 운동의 역사 속에서 배출된 무수한 학생운동가들이 생을 바쳐 지금의 대중운동을 일구어냈다. 그런데 이 대중운동의 시대에도 '공부도 못하는 게 데모질이야!'라는 말로 대변되는 의식이 우리 내면에 또아리를 틀고 있다. 지방대 학생운동가들에게 열등감을 갖게 만드는 첫 번째 계기는 운동 바깥에 존재했다. 그것은 바로 대학의 서열이다. 운동의 깊이가 더해갈수록 열등감의 계기와 더 자주 맞닥뜨리게 된다.
그래서 지방대 학생운동가는 학생운동사를 읽으며 비애를 느낀다. 70년대와 80년대의 학생운동사는 엄밀한 의미에서 서울대운동사였고 90년대 운동은 전대협-한총련 운동의 역사였다. 무림-학림 논쟁이, MT-MC 논쟁이 과연 지방의 대학들에 영향을 끼쳤는지 모르겠다. 아니 영향받을 학생운동의 주체가 존재했는지도 모르겠다. 학생운동의 대중화가 이루어졌던 87년 이후라고 하더라도 전대협-한총련을 주도하는 학교는 서울의 학교들과 지방의 메이저 캠퍼스들이었다. 마치 구한말에 족보 산 집안이 그렇듯이 자기 학교의 학생운동사를 공부해 보려고 해도 어느 시기 이전으로는 올라가지 않는다. 전국적 흐름에서 영향을 받아 발생했을 뿐, 자기 운동의 역사가 존재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또 있었다손 치더라도 전국적 흐름을 선도한 적은 없었다.
이렇게 심화되는 열등감은 캠퍼스 바깥으로 나가 지역 연대질서를 일구어가는 과정에서 또 한 번 결정타를 맞는다. 필자의 지역 연대운동체 회의에서 우리 지역 메이저 캠퍼스는 지역 학생운동에 소극적으로 임하면서도 헤게모니를 잃을 것 같으면 매우 분파적인 발언을 해가면서 '메이저 캠에 걸맞게 대우해줄 것을 은근히 그러나 강력하게' 주장하곤 한다. 그렇다고 그 학교 대오가 수가 많다거나 주도적으로 일을 펼쳐왔는가 하면 또 그렇지도 않다. 함께 집회를 치러 내고선 갑자기 분담금을 못내겠다는 등 땡깡을 피우기도 하고, 연대운동체의 일정에 함께 할 수 없다면서 공연히 어깃장을 놓는 등의 힘빼기 전술을 구사하며 은근히 자기 캠퍼스의 서열을 확인하곤 하는 것이다. 이렇게 지방대 집단 안에까지 존재하는 운동의 서열은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운동은 그 모든 억압적 질서로부터의 해방되는 과정이다'라는 진술을 의심케 만든다. 필자에게 쌓이는 스트레스의 정체는 기실 운동 가운데에조차 일, 이, 삼류대가 존재한다는 엄연한 사실이다.
그래도 캠퍼스로 돌아오면 우린 여전히 캠 운동을 담당해야 하는 막중한 책임감을 짊어진 활동가이고, 후배들에게는 절대적 존경을 받는 선배이기에 죽으나 사나 당면한 사안에 대처하기 위해 골머리 싸안고 움직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지역과 캠운동이 갖는 협소함과 일천함은 또 한 번 답답함을 느끼게 한다. 수공업적이고 부실한 학습풍토를 개선해 보려고 연세대에서 제기됐던 제2대학 자료를 뒤적여보기도 하고, 고려대 생활도서관 회보를 펴보기도 하지만 입맛만 다시다가 덮곤 한다. 그런 사업을 꾸릴 주체가 없어서라기보다는 이용도가 낮을 것이 뻔하기에 '냉면 개시' 깃발을 내걸고 싶은 맘은 굴뚝 같지만 채산성 때문에 접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답답함이 어디 그뿐이겠는가? 단대신문들도 발행되고 교지도 여러 개인 학교나 총학생회 기관지가 우리 학교 교지보다 더 화려하게 나오는 학교를 볼 때, 또 한 학교 학생들이 돈 받고 파는 책을 만드는 『학회평론』을 볼 때도 '없는 자궁'과 '없는 아가미'가 답답한 것이다.
이렇게 답답한 지방대 학생운동 출신들은 또 어떻게 살아갈까? 가끔씩 찾아오는 선배들을 만나면 지방대 출신이 살아가는 모습과 운동권 출신이 살아가는 모습이 심하게 비틀린 채 결합된 군상들을 보게 된다. 운동권의 덕목에 전문성이란 것이 추가된 지 오래되었지만 우리 캠에서 자질과 적성, 전공을 살리는 선배를 본 적은 없다. 한국 사회에서 30세가 넘기 전에 자리잡기 어렵다는 것은 알지만, 자기의 운동적 전망을 사회에 나가서 선명하게 주도적으로 풀어내는 서울대 출신을 볼 때 왠지 그 이면에 우리 캠 선배들의 모습이 오버랩되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래서 가끔 운동을 하다가 변절했다는 서울대 사람 얘기를 들을 때면, '서울대 놈들이 다 그렇지'라고 예민하게 반응하며 냉소적인 말들을 뱉어 버리곤 한다. 사실, 변절의 기회조차 지방대생에겐 주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난 직업적 운동이나 삶의 현장에서의 운동을 포기하고 이름도 없는 작은 회사에 취직해 소시민으로 근근히 살아가는 우리 선배들이 과연 변절했는가 의문을 품곤 한다. 적어도 변절이라고 말하기 위해서는 운동의 포기 정도가 아니라 사회적 출세를 의미해야만 할 것 같다. 그래야 '변절'이라는 주홍글씨가 자랑스럽지 않겠는가?
특별히 비운동권에 대하여
'특별히' 비운동권에 대해 발언하고 싶은 이유는 97년 학생회선거를 통해 전국적으로 30여 개 대학에서 비운동권 후보가 당선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들의 엄청난 약진 앞에서 경악하기보다는 '96년 연세대사태로 인한 학우들의 일시적 이반'이라고 위안하고 싶어할 지도 모르겠다. 필자는 다만 96년 학생운동탄압(특히 NL에 대한)이 전면화되었던 정세 속에서 비운동권 집단이 효율적으로 정세대응을 했기 때문에 승리할 수 있었다고 보지는 않는다. 이들이 운동세력에 비해 조직력이 약한 것은 사실이지만, 전무한 것은 아니다. 더구나 지방대에서의 비운동권 집단의 양태를 보면, 이들 집단이 8∼90년대를 지나면서 끈질기게 살아 남아 성장한 유일한 세력임을 입증한다. 따라서 97년 한 해만의 현상으로 치부할 수는 없다. 더구나 학생운동세력과 학생대중의 적대적 관계가 조장되고 안착화되고 있는 현실에서 이들 비운동권은 기존 운동세력에게 혁신에의 과제를 더 이상 방기할 수 없음을 '실천적으로 보증'하고 있는 것이다.
97년 4월, 광주 전남대에서 열린 한총련 대의원대회에서 호남대학교 교지편집위는 총학생회가 앞장서서 교지편집위를 탄압한 사실을 폭로했다. 한총련 대의원들은 그 대자보 앞에서 모두 공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총학생회장이 교지편집위 편집장에게 욕설을 퍼붓고 폭력을 행사하며 해산을 명령하는 일이 어디 있을 법한 일인가? 또 올해 어느 지방대에서는 비운동권 총학생회가 앞장서서 대학노조 사무실에 쳐들어가 테러와 폭력을 행사한 일도 있었다. 하지만 실상, 이러한 사건들은 지방대에서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아주 드문 사례들은 아니다. 90년대를 지나면서 지방대에서 비운동권이 당선되는 경우가 점차 빈도를 더하더니 급기야 97년에는 한총련 탈퇴 선언이 줄을 이었다. 이런 학교에서 운동권 세력과 비운동권 집단간의 충돌은 불가피한 것처럼 보인다. 왜 그럴까?
지방대에서 비운동권이 광범위하게 당선될 수 있는 조건은 지방대 학생대중의 의식의 후진성에 있지 않다. 대학이 밀집되어 있는 서울이나 광역시와는 달리, 학우대중의 상당수가 그 지역 출신인 시, 군 지역 학교는 동문회를 중심으로 지역세가 발호될 수 있는 조건이 조성된다. 한, 두 고등학교 출신 동문세력 또는 연합동문 형식으로 묶여 있는 이들은 비운동권을 넘어서 반(反)운동권으로서의 자기 색깔(?)을 분명히 하면서 단대 및 자치기구, 총학생회에 후보를 조직적으로 출마시킨다. 이들은 거의 모든 과에 골고루 흩어져 있어 선거에서는 위력적인 힘을 발휘한다. 또한 나름의 재생산구조를 갖추고 끊임없이 '활동가'(!)들을 충원 받는다. 이들은 학생운동이 대중화되었던 87년 이후에는 학생운동세력을 지원해주는 역할을 하기도 하였으나, 학생운동과 학생들의 관계가 유리되는 것을 넘어서 적대적 관계로까지 악화되고 있는 현실의 틈을 비집고 자신들의 이념적 입장을 반운동권으로 선명하게 표방했다.
그러나 이들이 반운동권 깃발을 일관성 있게 내걸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들 백색 세력의 주동력은 학생회비와 졸업 이후의 진로 보장이다. 따라서 캠퍼스 내에서의 역관계에 따라서는 운동권 세력과 일정 지분의 양보를 전제로 한시적으로 연합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보통은 독자적으로 또는 비운동권 집단들의 연합 형식으로 출마한다. 이들의 학생회 사업 작풍은 막대한 학생회비를 갖고서도 제대로 된 사업 하나 추진하지 않은 채 1년을 넘겨버리는 경우가 허다하며, 각종 비리 의혹도 끊임없이 제기된다. 또 1년 사업이 채 끝나기도 전에 연합으로 학생회를 잡은 각 블럭간의 내부갈등으로 집행부가 분열되어 쪼개지기도 한다. 이들의 행태가 폭로되어 탄핵, 사퇴까지 이어지더라도 다시 학생회 선거에서 운동권/비운동권 구도로 쟁점을 형성하면서 학우들의 표를 긁어간다. 또 선거 운동은 1년 동안 축적된 학생회비를 갖고 과학생회장 등을 술판으로 몰아 가는 조직선거 전술을 구사한다. 이들 중 수뇌부는 졸업 이후 학교측에 의해 취직을 보장 받거나, 일부 종교집단이나 지역 관공서에서 '모셔가기도' 한다.
대부분의 지역세력은 또한 학교 밖의 조직폭력배와 연계하기도 한다. 강원도 지방이 타 지역보다 심각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학생회 선거에 지역의 조직폭력배를 동원하여 협박, 테러 등을 가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또 가두시위 등의 계획이 있을 때에는 이들과 경찰이나 지역의 조직폭력배들과 함께 미리 입수한 가두시위 장소에 진을 치고 있어 시위 계획을 수포로 만드는 경우도 있다.
비운동권 집단이 광범위하게 지방대 캠퍼스를 장악할 수 있는 이유는 대학 바깥에서뿐만 아니라 90년대 끝물의 대학현실에서도 찾을 수 있다. 지금의 대학은 과연 비싼 등록금을 내면서까지 다닐 가치가 있는지 의문이 들만큼 그 사회적 위상이 추락했고, 대학인의 '교육'은 고사하고 '관리'조차 제대로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대학은 개인을 훈련시켜 노동시장으로 배출하는 '양성소'에도 못미치는 '대기소'로서 밖에 의미를 갖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 무한경쟁의 시대에 살아남기 위한 발버둥은 오로지 개인의 몫으로 국한지어지고 그 책임 또한 개인의 몫으로 떠넘겨진다. 파편화되고 원자화된 이들에게 그 어떤 울타리가 공통의 질서와 이념적 지향을 갖게 만들 수 있을 것인가?
학생회는 관성화된 사업 사이클과 폐쇄적 구조로 대중과 점점 유리되면서 결합 고리를 잃어가고 있으며, 게다가 학생 대중을 투쟁의 주체로 세울 수 있는 테마도, 정책도 부재한 상태이다. 정치조직에서는 저항의 주체를 형성하라고 소리 높여 외치고 있기는 하지만 엄밀하게 말해서 저항주체 형성의 프로젝트를 제출하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제출된 생활도서관이나 제2대학, 반대학 같은 사업들은 이벤트화되면서 학생회의 반짝 사업, 공약으로 변질되었다.
대중을 최우선으로 내세우는 슬로건이 민망할 만큼 대중을 전취해내지 못하는 현 지방대 학생운동의 널럴한 정세대응력은 학생대중으로 하여금 학생운동을 공격의 제1대상으로 지목하는 비운동권 집단에게 표를 몰아주게 하는 요인이 된다. 어쩌면 지방대 학생대중을 하나로 묶어줄 수 있는 유일한 테마는 비운동권, 반운동권이라는 자기 선언일 지도 모른다. 더구나 96년 연세대사태처럼 정권의 물리적-이데올로기적 탄압이 가중된 시기에는 더욱더 수월하게 어필할 수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학생운동의 대중적 외연의 상실과 지방 중소도시의 동문회 집단의 존재, 그것이 비운동권 이익집단이 독버섯처럼 피어날 수 있는 근본적인 조건인 것이다.
go center
97년 한총련 대의원대회 의장선거에는 좌파에서 두 정파가 후보를 냈다. 그 논의 과정에서 한 후보자는 전국 총학생회장단 회의에서 한 지역의 좌파 학생운동을 무당파적이라고 폄하하는 발언을 하여 회의 분위기를 격렬하게 만들었다. 결국 휴회 끝에 후보자가 사과를 하고, 지역 수임자가 사과를 받아들이는 선에서 회의는 속개되었다. 그렇지만 그 얘기를 들은 지역 활동가들은 모두 씁쓸해 하였다. 지역 활동가들이 씁쓸해 했던 이유는 '정파적 목마름'에 있었다.
원전 속의 당파성은 적대적 계급 가운데 편들기의 문제이다. 그러나 그 후보자가 말했던 당파성은 정파적 실천을 갖느냐 안 갖느냐의 문제에 불과한 것이라 생각한다. 보다 세밀하게는 정파운동의 부재 가운데 대중추수적이고 다만 현실에의 안티적 조응으로 일관하는 그 지역 학생운동의 한계를 지적하는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그것에 씁쓸해했던 그 지역 운동가들은 캠 운동에서 정파적 관점에 매우 목말라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었다. 사실 지역 활동가들 상당수는 정파적 실천에 목말라 한다. 한 활동가는 주관적인 느낌이라고 전제하면서 서울의 운동이 그 지역의 운동보다 10년은 앞서 있다고 평가했다. 서울지역 수준으로만 상승되어도 지역의 분위기는 일신될 수 있을 거라고 덧붙이면서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그러나 그 활동가가 말하는 '수준' 역시도 거의 지역의 정파적 활동에 있어 10년 뒤쳐져 있다는 것일 뿐이다. 운동 수준의 이러한 단순비교는, 특히나 정파적 활동을 기준으로 일괄적으로 운동을 재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
매우 싱거운 결론이겠지만 지역 학생운동은 자기 캠퍼스 현실에 천착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기 긍정성을 획득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가령 그 자기 긍정성이란 이런 거다. 서울의 정파운동은 자신이 갖고 있는 분파적 폐해를 줄이기 위해서 상당수 개방했지만 그 정치조직 중앙이 보이고 있는 극심한 파벌싸움을 보면 그와는 일정한 간극을 유지하고 있는 지방대 풍토는 오히려 상대적으로 건강성을 갖고 있다고 판단된다. 그 상대적 건강성은 자기 대오를 유지해가는 기풍의 문제이다. 한국 학생운동을 학생회운동, 나아가 한총련운동으로 치환해서 사고하는 우파 운동도, 은연중에 학생운동을 정파운동으로 이해하고 있는 좌파운동의 시각도 문제다. 지리한 조직, 사상논쟁의 과정에서 깨져 나가고 있는 운동 대오의 문제를 일정 정도 방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학생운동의 대중적 외연을 어떤 관점을 갖고 어떤 조직과 저항의 방식으로 전취해낼 것인가이다. 대중의 표정을 읽어내야 한다는 상투적인 결론밖에 얘기 못하는 것은 필자의 한계겠지만, 그 대중의 표정을 연상하는데 있어 도움을 주고자 몇몇 사례를 들어보도록 하자.
6,000명이 넘는 학우들이 참여한 학생총회를 성사시켜 내고 대학교육개혁투쟁에 힘있게 들어간 97년 4월의 인하대학교 사례는 많은 점을 시사한다. 대학 사회에서 아직도 학생회라는 기구를 통한 대중적 결집이 가능하다는 사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학생회를 뛰어넘는 대중자치기구는 아직 없다. 하지만 인하대의 학생회들이 어떻게 대중을 그렇게 조직할 수 있었을까? 엉뚱하지만 굴업도 핵 폐기물처리장 문제로 인천지역 학생운동의 대중동원력과 결합력이 비약적으로 상승했다는 데에서 그 원인을 찾으려 한다. 인천지역 학생운동은 서울 출신 학우들이 많은 관계로 지역의 사안에 적극적으로 결합하기 어려운 조건을 안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굴업도 핵폐기물 처리장처럼 전국적 이슈가 되는 사안을 갖고 대중과 적절하게 결합했던 결과 캠 내 운동의 지반과 대중적 외연을 획득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각 캠퍼스의 현실에 천착하고 대중의 표정을 포착해야 한다는 것은 상투적으로 들릴지 몰라도, 여전히 거머쥐어야 하는 원칙인 것이다. 92년 경부고속전철의 경주통과안에 반대해 벌어진 동국대 경주캠퍼스의 대중적 투쟁, 96년 대구 승당마을 철거투쟁에의 지역 학생운동의 결합, 96년 합천 해인사 골프장 건설문제에서의 불교학생회의 투쟁 등도 그러한 사실을 뒷받침해준다. 한총련 주류가 캠별, 지역별로 총파업투쟁에 적극적으로 결합하면서 96년 8월 연세대사태에서 입었던 타격을 딛고 실천동력을 회복할 수 있었던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또 한편, 96년 시화호 무단방류사건, 여천공단 환경오염 문제 등에 대한 학생운동 진영의 무감성은 안타까운 사례에 속할 것이다.
97년, 서울의 도심개발 계획이 거의 마무리 되어가고 있다. 86년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시작된 빈민주택가의 철거와 서울 재정비는 일단락 지어지고 이제 광범위한 개발이 전국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이것은 선진복지통일한국이라는 목표 하에 사회간접자본의 확충을 중심으로 한다. 그렇기 때문에 지역의 문제는 대부분 빈민주택가 재개발, 철도, 원자력 발전소, 도시개발계획 등이 이슈로 떠오르는 것이다. 이러한 개발은 민중생존권을 철저히 유린하면서 모든 민중에게 환경 오염으로 인한 고통과 비용을 떠 안기게 된다. 또한 이것은 비단 해당 주민들만의 문제로 국한되지도 않는다.
지방대 학생운동은 이러한 이슈와의 광범위한 연대를 구축하는 가운데, 학생대중의 참여와 결집을 최대한 끌어내야 한다. 그 가운데 반자본의 관점으로 각이한 사안들을 정세적으로 바라보고, 학생대중을 투쟁의 주체로 세워내야 하는 것이다. 바로 그러할 때 최대한으로 대중과의 접촉 지형이 확장될 것이다.
Log out ; 모든 변방은 중심이다.
대학을 입학하면서부터 스스로 많은 것을 포기해야 했던 지방대 학생운동가들. 그들이 운동을 해나가면서 '단지 지방대를 다니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자신에 대해 다시 한 번 절망하고 체념해 버리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필자 자신도 혹여나 그러하지 않는가 반문하면서 우리의 희망은 어디로부터 출발해야 하는지 고심하지 않을 수 없다.
다만 현실의 문제로부터 한 치의 물러섬 없이 임하는 것, 그것이 변방에서 중심으로 가는 길이라는 결론을 조심스럽게 얘기하고 싶다. 아니 '모든 변방은 중심이다'라고 말해두고 싶다. 이러한 언급이 힘을 가진 언설이기 위하여 보다 각론화된 검토가 풍성하게 이루어져야만 할 것이다. 개별적인 문제에 대해 일반적인 풀이법만을 제시하는 건 힘빼기의 공식이기 때문이다.
가령 이 글에서 누락되어 있는 서울 소재 대학의 제2캠퍼스 문제가 그런 경우다. 학생들은 독립채산제를 실시할 것을 요구하지만, 사립학교법이 걸림돌이 된다. 제2캠퍼스 간의 연계를 통해 법적 소송까지 불사하지 않는 한 이들 학교의 문제해결은 요원할 수밖에 없다. 제2캠퍼스들의 문제뿐만 아니라 지방대가 안고 있는 제반 문제들과 싸워나가는 것, 그것만이 유일하게 이곳, 변방을 중심으로 가져갈 수 있는 길이다.
지금 당신은 어디에 서 있는가? 변방인가? 중심인가? 아니 이 우문을 폐기하자. 그저 당신이 서 있는 그곳을 중심으로 가져가야 한다고만 얘기해 두자. 'X' 또는 'bye' 를 치기 이전에 접속 종료 직후 당신이 해야 할 일을 구상하라.
"안녕히 가십시오. 접속이 종료되었습니다."
학 / 회 / 평 / 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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