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한 다양성과 단조로운 유사성 사이에서. 소이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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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 2008/06/03 09:21

5월 31일에서 6월 1일로 넘어가는 밤은 너무나 길었다.
그 긴 밤을 마무리하고 몇 시간 자지 않고 나는 독산동 이모 댁으로 향해야만 했다.
오랜만에 엄마가 와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은 너무나 귀찮았다.
피곤이 쌓여 있기도 했거니와 잠도 덜 잤고, 어차피 가서 한 시간만 있다가 과외를 가야만 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폰은 물에 젖어 고장난 상태였고ㅡ 때문에 과외를 미룰 수도 없었기에..


독산동 이모는 무척이나 아팠다 한다. 지금도 그렇다. 나는 전혀 몰랐다.

집안이 '엉망'이었다. 바닥을 청소한지 3개월이 넘었다 한다. 늘 청소기로만 닦고...
나도 도착해서 걸레로 좀 닦아보았더니, 걸레는 금새 시커멓게 변했다.
평소에 실내가 더러우면 못 참으시던 이모였는데...

눈물이 났다. 슬펐다. 말을 잃었다. 언제부터, 왜 갑자기 이렇게 약해지셨나요...
이모는 모든 어른들이 그렇듯, 같은 이야기를 반복했다.
내가 아빠를 닮았다는 둥, 네가 벌써 졸업반이냐는 둥, 그리고 언제나 내 건강 걱정. (ㅠㅅㅠ)


그 다음 느껴지는 건 강렬한 분노였다.

독산동 이모는 두 아들과 이모부와 함께 산다.
두 아들 중 한 사람은 출가해서 살고 있고,
한 사람은 이모들과 엄마와 내가 거실을 청소하는 동안 방안에서 티비를 보고 누워 있었다.

처음에 나는 자고 있는 줄 알았다. 뭐, 바쁘게 사니 잘 수도 있다 싶었다.
그런데 막내 이모가 밥 먹어야지! 하니까 그 인간은 바로 "안 먹어"라고 대답했다.

앞 뒤 종합해보니, 이 인간은 평소에 가사 노동은 하나도 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이모는 아파서 아무 것도 못하는데, 이상하게 반찬은 언제나 그렇듯 풍성했다.
아픈 몸 이끌고 아들과 이모부 밥은 계속 챙겼다는 얘기다.
그런데도 이 미친놈은 방에 틀어 박혀 플스나 하고 컴퓨터나 하고 야동이나 봤다는 거다.
(예전에 컴퓨터를 빌려 쓰다가 수도 없이 발견했다)
아 썅. 미친 새끼. 쥐박이 만도 못한 새끼. (-_-)


일이 대강 끝나고 방으로 돌아가야 할 때가 되어서 아침을 먹을 수 있었다.
아침을 먹으면서 엄마와 이야기를 아주 가볍게, 조금 나눌 수 있었다.
핸드폰이 고장났다는 얘기를 하면서 엄마에게 보여주었다.
엄마는 핸드폰 이쁜거 샀는데, 아깝다고 말해주었다.

아- 놀랐다. 이 핸드폰은 2월 초에 샀는데, 그럼 4개월 동안 엄마랑 나랑은 한 번 본 적이 없다는 얘기?
따져보니, 그랬다.

원래 집회에 있을 때 엄마가 "보고 싶으니 꼭 오라"는 문자를 보냈을 땐,
사실 귀찮기도 하고 그래서 '피곤하니, 그냥 담에 집에 내려간다'고 문자를 보낼 뻔 했다.

그렇게 1시간 남짓 이모집에 있다가 엄마와 이모들이 억지로 가득 챙겨주는 반찬을 받아 쥐고 집을 나섰다.

인사를 하려고 뒤돌아 섰는데,
엄마는 벌써 눈시울이 젖어 있었고, 울고 있었다.

아....... 버스를 타러 터덜터덜 걸어가면서 계속 울었다.


나란 인간이 너무 싫었다.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다정한 척 하면서, 막상 가까운 사람에게는 늘 차가웠다.
(조금만 친해지면, 그 누구도 나보고 다정하다는 소리는 안한다)
이렇게 엄마는 나에게 있어 일종의 감정적 식민지였던 셈이다.
가장 힘들고 가장 외로운 순간에 생각나는 사람은 결국 200km 거리에 있는 엄마였다.
그냥 뭐라뭐라 이것저것 말하지 않아도 엄마의 목소리만 들으면 안심이 되었는데.
나는 지금, 지금까지 엄마에게 뭐하고 있었던 걸까.

마찬가지다. 이모들한테도.
이모들과 막내 외삼촌은 사이가 너무 좋아서 주변에 모여 살고
자주 모여서 서로의 안부를 묻고 서로를 돕고 산다.
때문에 나에게도 나에게 어울리지 않는 친절과 애정을 퍼주신다.
근데 난 언제 한번 이모들의 생신이나 뭐 같은거 챙겨드린적이 없다.

내가 아까 분노를 느꼈던 그 이종 사촌과 나는 뭐가 다른가.


그리고 그날 밤에도 집회였다.

엄마가 집에 잘 돌아갔는지, 잘 쉬고 있는지 안부 문자라도 할 법 한데
행진을 하다가 결국 잊었다.

대신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받지 않았다. 집회에 있다고 하면 분명 걱정할테니까.
그러자 문자가 왔다. 나에 대한 걱정으로 가득한...


6월 1일은 완전히 무너진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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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소이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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