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tz Klein, The Bisexual Option: A Concept of One Hundred Percent Intimacy (1978), Mell Storr, Bisexuality, NY: Routledge, 1999, pp.38-48에서 재인용 및 번역.
정신병리학자들이 질문해 온 오래된 낭만적인 질문 중의 하나는, 한 남자가 혹은 한 인간이 두명의 여성을 동시에 사랑할 수 있는가? 이다. 그 질문에 대한 내 대답은, '만일 그럴 수 있다면 그럴 수 있다' 이다. 인간이 남성과 여성을 동시에 사랑할 수 있는가? 그럴 수 있다면 그럴 수 있다. 이는 개인들이 가진 충실함의 기준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그/녀들은 피상적이거나 일시적인 걸 뛰어넘어, 관계 속에서 진실된 신뢰라는 부담을 감당할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그/녀들은 이중적인 역할을 함으로써 '스파이'가 되는가?
[...]
우리들의 사회에서, 친밀감에 대한 공포는 부분적으로 헤테로포비아와 호모포비아 또는 양쪽 모두를 통해 표현된다. 이러한 공포와 혼란의 중요한 이유는, 섹슈얼리티와 친밀감이 매우 깊이 연관되어 있음에도 필연적으로 같이 가지는 않는다는 점에 있다. 이들은 상보적이지만, 한편으로는 매우 독립적인 감정이다. 그 감정들의 양립가능성은, 개인적인 환경이나 사회적 압력에 의존한다.
병원에 누워있는 좋은 친구와 가까워지면 섹스와는 전혀 관련이 없는 '순수하고' 100% 친밀감의 수준에 도달할 수 있다. 하지만 친구 간의 사이가 가까워지고 섹스의 가능성이 높아지면, 친밀감은 병원에 있을 때보다 훨씬 더 복잡해진다. 혹은, 두 명의 사람이 일치감을 공유하기 위해 한번 서로를 안아 주는 것ㅡ성적이든 감정적이든ㅡ이 논리적으로 자연스러운 상황을 가정해보라. 만약 그 포옹이 개인적이나 사회적인 압력에 의해 거부된다면, 그 두 사람은 100% 친밀성에 도달하지 못한 것이다. 즉 그들은 그 상황에서 가능한 선택들에 자유롭게 부응하지 못한 것이다.
어떤 강좌 교재 였던 책. 클레인이 보기에 감정적인 층위에서는 여성과 남성 모두가 '양성애적' 층위에서 움직인다. (요약하자면) 결국 그래서 클레인은 양성애야말로 100% 친밀함에 도달할 수 있는, 유일하게 자유로운 선택이라고 말한다. (허허허 ^^;) 갑자기 너무나 낭만적인 이야기들을 끌고 들어오기도 하고. 그러니까 태초에 우리는 하나였으나 신이 우리를 찢어 놓았다는, 그런 식의 말 이랄까(이게 클레인의 말은 아님). 나이브하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틀린 말은 아니란 생각이다.
하지만 이런 클레인의 생각을 한국의 맥락에 그대로 끌고 들어오면 곤란하다. 적어도 클레인이 이 책을 쓴 미국에서는 G/L 집단과 B집단 사이에 여러 가지 알력이 많이 있었고, 그 과정의 산물이니까. HIV에 대한 공포가 미국을 휩쓸 때 나온 이야기기도 하니까. 한국은 뭐, 내가 알기론 사회적 현상으로서의 '호모 포비아'가 전면에 나선 것도 얼마 되지 않을 뿐더러, 특히 B집단 같은 경우엔 '전무全無'에 가깝잖아? 게다가 당시에는 클레인 같은 사람들이 내놓은 생각들이 여피족스러운 '쿨한 유행'으로 다루어졌다는 점도 부정할 수 없다. 심지어 유력 일간지 등을 통해서도 보도가 된... "왜 하나만 해? 둘 다 할 수 있는데?" 뭐 이런 -,ㅡ
이런 쿨한 맥락에서 "그녀애자" 혹은 "그남애자"라는 말도 성립하게 된다. 자기는 그녀나 그남을 '인간적인 매력 때문에' 사랑하는거지, 내가 G나 L이기 때문인 것은 아니라고. 이런 탈정치도 문제적일 것이다. 예컨대, 왜 굳이 자기가 G나 L이 아니라는 걸 덧붙이는가? 어떤 성적 규범 속에서 그런 말을 덧붙여야'만' 하는가? 그건 '-포비아' 때문은 아닌가? 동시에 개인의 섹슈얼리티를 굳이 정치화하는 것도 문제적일 순 있다. 정치란 기본적으로 개인들을 추상화하지 않으면 성립하지 않는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 추상화 과정 자체에서 배제와 인식론적 폭력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으니까.
멜 스토어의 책에는 너무 적게 인용이 되어 있어서(그래도 5장 정도는 된다마는), 클레인이 쓴 full text로 읽으면 재밌을 것도 같다.
덧) 이런 글을 읽으면 꼭 이런 글을 쓴 이의 성적 지향이 무얼까 추측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 같다. ㅎㅎㅎ. 그런 것도 또한 현재 우리들이 속한 성 제도(sexual regime)의 효과겠지. 이성애/동성애/(양성애)라는 단순하고 명쾌 투명한 구도로 섹슈얼리티를 재단할 수밖에 없는, 그렇게 빈곤하면서도 동시에 폭력적인 제도. 또 한편으로는 정체성의 정치학에서는 필요할 수밖에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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