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한 다양성과 단조로운 유사성 사이에서. 소이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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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들 / 2008/04/04 02:15

문학에서 성(性)을 다루는 건 정말 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쉽지 않은 일이다. (하나마나 한 소리 ^^;)


왜 이런 얘기를 하냐면, 어제의 한 에피소드 때문에. 메리 롤랜드슨(Mary Rowlandson)의 "The Sovereignty and Goodness of God"을 다루는 수업 중. 이 작품은, 17세기 미국의 퓨리턴 이주민 공동체와 아메리칸 원주민 사이의 전쟁 속에서의 체험담을 다루고 있다. 뉴 잉글랜드에서는 최초의 여성 작가가 남긴 작품. 퓨리턴 이데올로기가 아주 담뿍 녹아들어가 있는 텍스트다.

교수 : 왜 롤랜드슨이 자신의 포로 체험기(captivity narrative)를 시간적 순서가 아닌, 공간적 순서로 기술했는지 알겠나?

학생들 : ..... [자기는 답을 알고 있으니 맞춰보라는 식의 퀘스쳔은 던지나 마나 아닙니까요?]

교수 : 대개 일기는 날짜 순서를 따르잖아. 근데 이 작품은 왜 공간 순서로 1st remove, 2nd remove 이런 식으로 기술했냐는 말이지. 나는 이게 어떤 근본적인 남성과 여성의 차이에서 오는 기술 방식의 차이는 아닐까 생각하는데. 누구 한 번 말해봐요. [헉!!!!!!!]

학생1 : 저는 그 차이는 그냥 위급한 포로 상황에서 시간적 감각이 없어진 것이라 생각합니다.

교수 : 그 말도 맞을 순 있는데, 누구 다른 생각하는 사람?

학생2 : 저는 원래 여성들은 공간적 변화에 민감하다고 생각해요. 옛날에 남성들은 수렵 생활을 했고 여성들은 채집 생활을 했잖습니까? [이쯤에서 피식 웃어버렸다. 아, 난 진짜 농담인 줄 알고...] 아무래도 그러다보면 여성들이 남성에 비해 주변 공간 변화에 더 민감해 지지 않을까 생각해요.

학생3 :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교수 : 음음. 그렇죠. 사실 나는 이렇게 남성과 여성 사이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고 생각해요. 완전히 다르다는게 아니라, 다른 점이 있다고 생각한다는거죠. [이쯤에서 내 표정은 썩어 들어가고...] (짐짓 검열 작동) 아, 그렇다고 이게 무슨 성차별주의는 아니에요. 허허허. 성차별주의는 남성과 여성이 다르다는 이유로 불공평한 분배를 할 때 생기는거고. [오오... 교수님 잘 나가다가 왜 이러시나이까 ㅠㅠㅠ] 나는 어떤 유전자의 영향이 있다고 생각해요 [헉!] 어떤 생활 습관이 우리의 유전자에 기록이 되어서 그게 내려오지 않느냐는 거지. 아까 수렵과 채집 생활을 얘기했는데, 그런게 우리의 유전자 속에 남아서... @#$@ [중략] 어쨌건 그래서, 오늘 우리가 읽은 이 텍스트도 이런 점에서 특징을 찾을 수 있지 않냐는거지.


이 놀라울 정도로 안습인 에피소드는, 오늘 실제로 벌어졌던 일을 생각나는대로 각색한 것임을 밝혀둡니다;

오늘 다 같이 읽어 갔어야 할 텍스트에 보면 인종주의적 '타자화'의 일반적인 전략을 요약해 놓은 부분이 있다. 그 중 첫째는 집단간 차이를 생산하고 강조한다는 것. 이것도 사실은 너무나 뻔한 말이지만, 이런 설명 문구는 오늘 수업에서 한 저 에피소드랑 완전 충돌되잖아욤! 게다가 오늘 읽을 텍스트는 교수님이 직접 쓰신 글 아닙니까요 ㅠㅠ 헌데 남성과 여성이 근본적으로 다르고 심지어 유전적으로 다르다니요. 무슨 근거로? 대체 실제로 그랬는지 아니었는지도 알 수 없는 그런 신화적인 태곳적 이야기를 들고와서 성차sexual difference를 정당화 하시다니요!

사실 문학에서 성(性)을 빼놓으면 서사의 진행이 턱- 막혀버릴지도 모른다. 대다수의 서사들은 성을 매개로 이루어진다(물론 인종, 계급 등의 범주와 동시에 작동한다). 때문에 문학을 공부할 때 성을 다루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워 보인다. 하지만 문학을 다룰 때 이렇게 탈역사적으로 성을 다루기 쉽기 때문에 늘 문제가 생긴다. 잘 나가다가 갑자기 뻘줌한 안드로메다 점프가 생겨버리는 것이다. 성차는 많이들 알다시피 근본적이고 본질적인 것이 아니다. 태곳적에 남자는 수렵 생활을 하고 여자는 채집 생활을 했다... 따위(-_-)로 정당화 될 수 있는 그 무엇이 아니란 말이다. 성차는 기본적으로 제도의 효과다. 특정한 제도 내에서 생산되는 그 무엇이라는 얘기. 버틀러 식으로 말하자면 성차는 어떤 제도 내에서 반복/ 인용/ 수행을 통해서 구성되는 것이지, 어떤 '구조' 내에 깊숙히 내재하고 그 구조 자체를 구성하는 근본적인 그 무엇으로 볼 수 없다.

위 에피소드에서의 성차에 대한 이해는, '역사성'에 대한 몰이해 + '사회적인 것(the social)'에 대한 무관심 혹은 불능에서 기인한다. 성차는 사회적인 층위에서 규범적으로normatively 개인들에게 영향을 발휘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성차를 다룸에 있어 그 사회성, 그 사회적인 맥락들을 고려해야만 한다. 문학 작품을 읽는다는 것은, 그 작품을 읽고 있는 우리들의 사회성과 그 작품이 쓰여지던 당시의 사회성과의 상상적 조우라는, 하나의 사건을 작동시키는 행위이다. 특히 문화적 맥락이 다른 지역의 작품을 읽을 경우엔, 그 차이란 더 크다면 크지 적다고 보기엔 힘들다.
 
게다가 우리는 '과거'의 그 작품을 읽는다고는 하지만, 사실 그런 식으로 만나는 과거는 어디까지나 제 현재의 '투사'의 효과이다. 즉 과거 역시 문학 작품을 읽음과 동시에 '구성되고' '생산된다'(물론 이미 정해지고 유통되고 있는 역사 담론의 어떤 규칙이 있다는 점을 인정해야겠지만). 그런 점에서 '상상적'이다. 제 아무리 발버둥쳐봐야 우리들의 맥락과 우리들이 속해 있는 제도의 틀을 벗어나서는 문학 작품을 대할 수는 없는 법이다. 우리는 모두 사회에, 혹은 상징계에ㅡ두 개념이 같은 말은 아니다ㅡ등록register 되어 있기 때문에. (그렇기 때문에 '사회적인 것'을 통과하지 않는 정치학은, 사실상 아무런 쓸모가 없다. 쓸모가 없다기 보다는 제 목적에 봉사할 수 없다.)

하지만 때로 이런 맥락성을 잊어 버리고, 문학 작품을 쉽게 '탈사회적인 것'으로 간주하기도 한다. 완전히 자기 맥락에서 전유해버리거나, 혹은 완전히 현재와는 다른(이해할 수 없는) 어떤 그 무엇으로 탈맥락화 시켜버리기도 하는 것이다. 또한 갑자기 모든 사회적 역사적 맥락을 떼어내고, 위의 에피소드처럼, 어떤 특정한 속성을 '근본적인' 것으로 등장시키기도 한다. 하지만 "악은 악을 지각하는 시선 자체에 내재해 있다"는 말처럼, 근본주의는 기본적으로 보면 재귀적인reflexive 규정이다. 자기를 참조하면서, 혹은 자기를 지시하면서, 담론과 규범norm을 생산해내는 게 근본주의의 특징이다. 이런 맥락에서, 근본주의자들은 끊임없이 차이를 생산해내고 유포하지만, 그 과정에서 되려 자기 자신에 대해서 너무나 잘 드러내주는 꼴이 되어버리고 만다. 문학에서 성을 다루면서 빠져버리기 쉬운 함정인 셈이다.

게다가 언어가 주는 수행성을 무시할 수도 없다. 화행이론이 말해주는 거지만, 모든 말은 그 자체로 가치 중립적이고 '진술적인 것'은 없다. 모든 진술은 동시에 특정한 진리를 생산하는 것이며, 따라서 그것은 그 자체로 순전히 정치적이다. 이런 입장에서 보면 무슨 관념이 발화되고 유통되기 시작하는 그 순간, 그 관념은, 무수한 행위자들 사이의 '인용' 행위라는 매개를 타면서, 동시에 어떤 '효과'를 가지고 돌아다니기 마련이다. 때문에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 순간 이미 어떤 정치가 발생하는 셈이다. 그 발화된 말로 인해 그 말을 보증해주고 그 말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다른 맥락들이 함께 작동하기 시작하니까. 그 맥락들이 작동하지 않으면 우리는 그 말을 아예 '이해조차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따라서 이미 그 수업은 성-근본주의, 혹은 성차별적인 정치로 화끈 달아 올랐던 셈이다..


뭐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수도 있는 거지만, 적어도 인종주의를 공부하는 수업에서는 나올 수 없는, 성립할 수도 없는 말이지 않은가. 나와서도 안되는 말이고. 사실 이런 점은 문학 교수직을 맡고 있는 내가 친애하는(정말이다) 그 교수님이 더 잘 알고 있을 일이다. 그런데 갑자기 엉뚱한 '유전자'까지 나오니 나는 더더욱 당황할 수밖에 없다규... 저절로 성차 근본주의에 토대가 없다는 사실을 밝히고 만 셈이지만,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학생 1,2,3를 보면서 나는 울화통이 터지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정답'을 말했다고 간주된 2번 학생님.. (아 이 계몽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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