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에르 바야르,『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 김병욱 역, 여름언덕, pp.204-5
특정 책을 읽은 사람들과 그 책을 모르는 사람들, 이렇게 두 진영으로 양단하려는 것은 독서 행위의 불확실성을 모르는 소치다. [...]
그렇다면 '타자가 안다는 생각에서 벗어나는 것'ㅡ여기서 '타자'란 곧 자기 자신이기도 하다ㅡ이야말로 우리가 읽었건 읽지 않았건 책들에 대해 좋은 여건에서 얘기를 할 수 있는 일차적 조건들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책들에 대한 담론에서 문제의 그 앎이란 불확실한 앎이며, '타자'란 우리의 대화 상대들에게 투영된 우리 자신의 불안한 형상이다. 학교 교육이 선전하는 교양 같은 존재, 그 허구성이 우리의 삶과 사유를 방해하는 흠결 없는 교양 같은 존재가 타자인 것이다.
'타자'가 알 거라는 생각이 주는 두려움은 책들에 대한 진정한 모든 창작을 가로막는 족쇄와 같다. 타자가 읽었으리라는 생각, 그가 우리보다 더 많이 알고 있으리라 하는 생각은, 창작을 비독자가 궁지를 모면하기 위해 부득이 의존하는 수단으로 환원시켜버린다. 사실은 비독자나 독자 모두가 그들이 원해서건 그렇지 않건 이미 책들을 꾸며나가는 끊임없는 과정 속에 들어가 있으며, 그러므로 진짜 문제는 거기에서 어떻게 빠져나오느냐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그런 과정의 폭과 역동성을 증가시키느냐 하는 것인데도 말이다.
이 책의 핵심이라면 '핵심'으로 느껴지는 부분이어서 옮겨둔다. ^^;
무엇보다 이 책은 재밌다. 문학 작품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데, 이렇게 인용을 많이 하면서도 이 책이나 저자를 믿을 수가 없어서 인용이 된 원래의 책을 봐야겠다는 의심이 들지 않게 할 정도로 잘 정리되어 쓰여진 책인 것 같다. 그만큼 '속아 넘어가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모든 인용은 속임과 속음 사이에서 벌어지는 역동적인 게임이고 거기에서 비로소 의미가 만들어지니까. 사실 '그럴싸함plausible'을 텍스트에서 구현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어쨌든 저자는 문학교수이자 정신분석학자라는데, 딱 그 느낌의 책이다. 이 책이 제시하는 '해법'도 거의 모두 정신분석학적 맥락에서 나오는 것들이다. (내가 아는) 프랑스에서 이 책이 나와도 전혀 이상할 것 없이, 너무나 자연스러워보이는..
예전에 한 교수의 연구실에 찾아가서 면담했을 때 일부러 이런 질문을 던진적 있었는데. "연구실 여기에 있는 책, 쭉- 다 보신거에요?" 사실 대화를 나누다가 좀 조금 뒤틀려 버린 마음에서 했던 말이기는 했지만. 그 교수는 내가 걱정하는 부분에 대해 대수롭지 않다는 듯(그걸 왜 걱정하니? 역시 ㅇㅇ대 애들은... 이런 말투;) 넘어가버렸다. 때문에 나는 이 말이 교수에 대한 공격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사실 좀 옹졸....; 이 책을 보고 나니, 그 때 의도했던 것 보다 그 교수에게 더 큰 실례를 저질렀을 수도 있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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