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들 / 2007/02/12 04:32
예전부터 지금까지 고민해 오던 것은, 내가 '활동가'가 될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였다. 물론 이런 고민의 자체가, 소위 '지식인'과 '활동가'의 이분법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한계점이 있다. 또한 과연 '활동가'란 무엇이냐를 어떻게 정의내리느냐에 따라서 나의 고민은 손쉽게 탈출구를 찾을 수도 있고, 혹은 더욱 카오스로 빠질 수도 있는 노릇인 것이다. 내가 지금까지 정리한 것은, 지식인과 활동가는 분명히 차이점이 존재한다는 것, 그러나 '활동가activist'만이 '활동(운동; movement)'을 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 그러면서도 '활동가'의 경계가 매우 모호하다는 점이다. 그리고 '지식인'과 '활동가'는 결합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면서도, 요즘 들어서는 이 둘 사이에 좁혀지지 않는 하나의 큰 강이 흐르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즉, 여전히 나의 고민은 탈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얼마 전 까지의 나의 태도를 돌이켜보면, 나의 포지션은 대체로 '지식인'이었다ㅡ아직 내가 '학생'이라는 스탠드포인트에 있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그러나 여기서의 '지식인'의 의미가 "엄청나게 똑똑하고 지적 사유를 잘 하는 사람"이라는 의미도 아니며, 요즘 들어 경멸적인 의미로 쓰이고 있는 "제도적(academic) 지식인"의 의미도 아니다. 내가 말하고자 했던 '지식인'은 '활동가'와 다소 이분법적인 위치에 있는, 그러면서도 제도적(주류)/비주류로 나뉘는 학계의 계층적 분류를 감안하지 않은 거친 분류법 위에 있다(그렇지만 굳이 따지자면 '비주류' 지식인이다). 다만 여러가지 가시적으로 벌어지는 다양한 운동들에 나는 '직접' 참여하고 있지 않았다는 것이다. 난 다만 뒤에서 지켜볼 따름이었으며 종종 집회에 나간다거나, 혹은 뉴스 따위를 통해서 사건들을 접할 때면 맘 속으로 응원할 따름이었다. 적어도 남이 보기엔(그리고 내가 보기에도) 전혀 '활동'은 하지 않고 있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나는 언젠가, 내가 나의 정치를 확고하게 정립하고 나의 행동들에 신념을 가질 수 있다면 '활동가'가 될 것임을 다짐하고 있었다.
그런데 얼마 전에 지금 하고 있는 어떤 세미나에서 약간은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내가 나름 존경하는 어떤 선생님께서ㅡ적어도 나는 그 선생님을 제도권academic 지식인이라 생각한 적이 없었다ㅡ현장에서 활동중인 선배와 이야기했던 내용을 들려주셨던 것이다. 그 내용의 골자는, '활동가'와 자신은 너무나 달랐다는 것, 단어 선택이나 생각하는 수준도 그렇지만, 이미 대화 자체가 잘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즉, '언어' 자체가 다른 것이다. 내게 있어서 이것은 큰 문제로 다가왔다. 그래서 생각해 봤는데, 나는 경험 상 '활동가'들을 만날 기회가 종종 있었다. 그러나 그때마다 느꼈던 감정은, 언제나 '답답함'에 가까웠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나랑은 너무 다른 사람들(포지셔닝이 지나치게 달랐던 사람들)이란 생각에 한편으로 친밀하고 존경하는 감정이 들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거리감을 느꼈던 적이 많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들 어떤 '신념' 같은 것이 나와는 비슷한 점도 있었지만, 많은 경우 그들이 갖고 있던 신념은 지나치게 확고하고, 때로는 '종교적'이거나 '신화적'이기 까지해서, 그것이 더욱 거부감이 들기도 했기 때문일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내가 아는 어떤 한 활동가 선배가 '지식인'들(제도권 지식인과 '비주류' 지식인을 모두 포함하는)에 대한 회의감과 강한 경멸감을 은연중 보여주었던 것이 생각났다. 그리고 그것은 나에 대한 실망과 아쉬움으로 나타났었다ㅡ그것은 '활동가' 포지션에서 본 나는 '지식인'포지션에 가깝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결국 좋든 싫든, 나는 '지식인' 포지션에 가깝다. 내가 많은 것을 바꾸거나 포기하지 않으면, 나는 절대로 '활동가' 포지션을 취할 수 없을 것이다. 하나의 예를 들자면, 어떤 활동가는 내게 자신이 갖고 있는 '좋은 학벌'이 운동 사회에서도 여전히 통용되고 있다는 '한탄'을 한적이 있다. 나도 역시 그 활동가에 못지 않은 '좋은 학벌' 따위를 갖고 있다는 것은 변하지 않는 사실이다. 이 거대한 학벌 구조가 통채로 바뀌지 않는 한, 나는 이것을 어떤 '원죄' 같은 딱지처럼 달고 다녀야 할 것이다. 솔직히 내가 요즘 유일하게 흥미를 갖고 있는 것은, 어떤 정치적 액션을 기획하고 실행하는 것이 아니라, 이론을 접하고 나의 것으로 끌어들이는 것이며 부족하나마 조금씩 사유하고 글을 생산해 내는 것이다. 나의 몸은 점점 더 무거워지고, 신념은 점점 비일관적이고 모순적으로 되어가고 있다. 적극적인 '활동가'가 되는 것은 나의 희망일지 모르겠지만, 결국 나와 점점 더 멀어지고 있는 것이다. '앞길'을 고민하면서, 그리고 점점 많은 이야기를 접하면서, 그건 결국 로망으로 끝나게 되는 것일까,하는 생각에 가슴이 퍽퍽해져 온다.
얼마 전 까지의 나의 태도를 돌이켜보면, 나의 포지션은 대체로 '지식인'이었다ㅡ아직 내가 '학생'이라는 스탠드포인트에 있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그러나 여기서의 '지식인'의 의미가 "엄청나게 똑똑하고 지적 사유를 잘 하는 사람"이라는 의미도 아니며, 요즘 들어 경멸적인 의미로 쓰이고 있는 "제도적(academic) 지식인"의 의미도 아니다. 내가 말하고자 했던 '지식인'은 '활동가'와 다소 이분법적인 위치에 있는, 그러면서도 제도적(주류)/비주류로 나뉘는 학계의 계층적 분류를 감안하지 않은 거친 분류법 위에 있다(그렇지만 굳이 따지자면 '비주류' 지식인이다). 다만 여러가지 가시적으로 벌어지는 다양한 운동들에 나는 '직접' 참여하고 있지 않았다는 것이다. 난 다만 뒤에서 지켜볼 따름이었으며 종종 집회에 나간다거나, 혹은 뉴스 따위를 통해서 사건들을 접할 때면 맘 속으로 응원할 따름이었다. 적어도 남이 보기엔(그리고 내가 보기에도) 전혀 '활동'은 하지 않고 있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나는 언젠가, 내가 나의 정치를 확고하게 정립하고 나의 행동들에 신념을 가질 수 있다면 '활동가'가 될 것임을 다짐하고 있었다.
그런데 얼마 전에 지금 하고 있는 어떤 세미나에서 약간은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내가 나름 존경하는 어떤 선생님께서ㅡ적어도 나는 그 선생님을 제도권academic 지식인이라 생각한 적이 없었다ㅡ현장에서 활동중인 선배와 이야기했던 내용을 들려주셨던 것이다. 그 내용의 골자는, '활동가'와 자신은 너무나 달랐다는 것, 단어 선택이나 생각하는 수준도 그렇지만, 이미 대화 자체가 잘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즉, '언어' 자체가 다른 것이다. 내게 있어서 이것은 큰 문제로 다가왔다. 그래서 생각해 봤는데, 나는 경험 상 '활동가'들을 만날 기회가 종종 있었다. 그러나 그때마다 느꼈던 감정은, 언제나 '답답함'에 가까웠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나랑은 너무 다른 사람들(포지셔닝이 지나치게 달랐던 사람들)이란 생각에 한편으로 친밀하고 존경하는 감정이 들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거리감을 느꼈던 적이 많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들 어떤 '신념' 같은 것이 나와는 비슷한 점도 있었지만, 많은 경우 그들이 갖고 있던 신념은 지나치게 확고하고, 때로는 '종교적'이거나 '신화적'이기 까지해서, 그것이 더욱 거부감이 들기도 했기 때문일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내가 아는 어떤 한 활동가 선배가 '지식인'들(제도권 지식인과 '비주류' 지식인을 모두 포함하는)에 대한 회의감과 강한 경멸감을 은연중 보여주었던 것이 생각났다. 그리고 그것은 나에 대한 실망과 아쉬움으로 나타났었다ㅡ그것은 '활동가' 포지션에서 본 나는 '지식인'포지션에 가깝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결국 좋든 싫든, 나는 '지식인' 포지션에 가깝다. 내가 많은 것을 바꾸거나 포기하지 않으면, 나는 절대로 '활동가' 포지션을 취할 수 없을 것이다. 하나의 예를 들자면, 어떤 활동가는 내게 자신이 갖고 있는 '좋은 학벌'이 운동 사회에서도 여전히 통용되고 있다는 '한탄'을 한적이 있다. 나도 역시 그 활동가에 못지 않은 '좋은 학벌' 따위를 갖고 있다는 것은 변하지 않는 사실이다. 이 거대한 학벌 구조가 통채로 바뀌지 않는 한, 나는 이것을 어떤 '원죄' 같은 딱지처럼 달고 다녀야 할 것이다. 솔직히 내가 요즘 유일하게 흥미를 갖고 있는 것은, 어떤 정치적 액션을 기획하고 실행하는 것이 아니라, 이론을 접하고 나의 것으로 끌어들이는 것이며 부족하나마 조금씩 사유하고 글을 생산해 내는 것이다. 나의 몸은 점점 더 무거워지고, 신념은 점점 비일관적이고 모순적으로 되어가고 있다. 적극적인 '활동가'가 되는 것은 나의 희망일지 모르겠지만, 결국 나와 점점 더 멀어지고 있는 것이다. '앞길'을 고민하면서, 그리고 점점 많은 이야기를 접하면서, 그건 결국 로망으로 끝나게 되는 것일까,하는 생각에 가슴이 퍽퍽해져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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