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들 / 2008/03/19 00:44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정체성들 중에는, 단지 구분을 위한 구분에 지나지 않는 정체성들을 볼 수 있다. 이렇게 차이를 생성하는 것은, 물론 권력의 산물이다(국가의 주권성sovereignity이나 통치성govermentality라는 의미에서의 권력이 아니다). 따라서 그러한 정체성의 구분/차이/분류 체계는 당연히도 사회적 위계hierarchy를 만드는 기제이며, 차별을 보다 더 수월하게 하기 위한 이데올로기의 호명이자 정치적 전략이고 효과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나는 정체성이라는 말을, 한 개인이나 집단의 심리에 깊이 뿌리 박힌 사회적 기질로서 의식적이거나 무의식적으로 그 개인이나 집단이 세상을 바라보고 인식하는 방식과 행동 양식의 프레임을 짜는 기능을 수행한다는 의미에서 사용한다.)
비혼, 즉 '독신'이라는 것도, 이러한 정체성의 한 범주에 들어갈 수 있다는 점은 한국 사회가 얼마나 이성 결혼 중심주의로 짜여져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런 상황에서, 독신은 때로 한 개인의 사회적 신분과 지위를 결정하는 중요한 기표가 되기도 한다. 특히 독신 정체성이 젠더 정체성, 나이 정체성과 결합하면 놀라우리만치 개인을 강하게 옭아매는 경우가 있다. 남성과 여성에게 독신이라는 정체성은 다르게 의미화되며, 나이라는 정체성 역시 마찬가지다. 30대 남성 비혼자와 30대 여성 비혼자에게 독신이라는 정체성의 의미는 다를 수밖에 없다.
독신이 한 개인의 뚜렷한 정체성이 될 수 있음에 반해, 결혼한 사람들은 정체성이 되기엔 상대적으로 모호하다. 그들은 차라리 다른 정체성으로 설명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유부남' '유부녀' 따위나 '애 아빠' '애 엄마' 따위의 호칭을 결혼한 사람들에게 부여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 호칭은 독신이라는 정체성에 비하면 지나치게 성별화 되어 있으며, <(최종적인 목표가 결혼인)연애시장>에서 '교환가치'가 있느냐 없느냐를 판별하는, 비교적 단순한 기호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호칭를 꼬리표로 달고 다니는 개인들은, 자신의 교환가치가 <(최종적인 목표가 결혼인)연애시장>에서는 바닥에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이들 호칭은 그 호칭이 부여된 사람들이 <연애시장>에서의 '사용/교환가치'를 여전히 갖고 있음을 부정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즉, 그것들은 한 개인의 뚜렷한 정체성이 되기엔 '턱 없이 모자란' 사회적 기호이다.
여기서 독신(미/비혼)이 기혼자들과 대조된다는 점이 중요할 것이다. 기혼자들이 위에서 말했듯 정체성으로 보기엔 좀 어려운 것과 반대로, 독신은 뚜렷한 정체성이 될 수 있다.
나는 아마도 독신으로 살 것 같다. 한국에서 20대 초/중반에게, 독신은 정체성이라고 보기엔 어려울지 모르겠다. 그래서 현실적으로 독신이 주는 의미가 무엇인지, 독신으로 살아가는 어려움이나 즐거움 따위도 사실 잘 모르겠다. 파트너쉽을 인정하는 제도, 예컨대 동반자 등록제 등이 도입이 되면 다행이겠지만,
비혼, 즉 '독신'이라는 것도, 이러한 정체성의 한 범주에 들어갈 수 있다는 점은 한국 사회가 얼마나 이성 결혼 중심주의로 짜여져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런 상황에서, 독신은 때로 한 개인의 사회적 신분과 지위를 결정하는 중요한 기표가 되기도 한다. 특히 독신 정체성이 젠더 정체성, 나이 정체성과 결합하면 놀라우리만치 개인을 강하게 옭아매는 경우가 있다. 남성과 여성에게 독신이라는 정체성은 다르게 의미화되며, 나이라는 정체성 역시 마찬가지다. 30대 남성 비혼자와 30대 여성 비혼자에게 독신이라는 정체성의 의미는 다를 수밖에 없다.
독신이 한 개인의 뚜렷한 정체성이 될 수 있음에 반해, 결혼한 사람들은 정체성이 되기엔 상대적으로 모호하다. 그들은 차라리 다른 정체성으로 설명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유부남' '유부녀' 따위나 '애 아빠' '애 엄마' 따위의 호칭을 결혼한 사람들에게 부여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 호칭은 독신이라는 정체성에 비하면 지나치게 성별화 되어 있으며, <(최종적인 목표가 결혼인)연애시장>에서 '교환가치'가 있느냐 없느냐를 판별하는, 비교적 단순한 기호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호칭를 꼬리표로 달고 다니는 개인들은, 자신의 교환가치가 <(최종적인 목표가 결혼인)연애시장>에서는 바닥에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이들 호칭은 그 호칭이 부여된 사람들이 <연애시장>에서의 '사용/교환가치'를 여전히 갖고 있음을 부정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즉, 그것들은 한 개인의 뚜렷한 정체성이 되기엔 '턱 없이 모자란' 사회적 기호이다.
여기서 독신(미/비혼)이 기혼자들과 대조된다는 점이 중요할 것이다. 기혼자들이 위에서 말했듯 정체성으로 보기엔 좀 어려운 것과 반대로, 독신은 뚜렷한 정체성이 될 수 있다.
나는 아마도 독신으로 살 것 같다. 한국에서 20대 초/중반에게, 독신은 정체성이라고 보기엔 어려울지 모르겠다. 그래서 현실적으로 독신이 주는 의미가 무엇인지, 독신으로 살아가는 어려움이나 즐거움 따위도 사실 잘 모르겠다. 파트너쉽을 인정하는 제도, 예컨대 동반자 등록제 등이 도입이 되면 다행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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