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한 다양성과 단조로운 유사성 사이에서. 소이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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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노트 / 2007/06/08 18:28

우울증은 치료를 해야 하는 질병이며, 더 나아가 치료 '가능'한 대상인가? 아마도 미국을 위시한 의학계에서는 그렇다고 대답할 것이다. 굳이 정신 의학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우울증은 항우울제의 처방으로 간단히 '치료'될 수 있는 대상으로 보인다. 물론 그 항우울제의 부작용도 심각하다지마는, 나는 인간의 정신 활동이 이렇게 약빨로 좌지우지 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더 없이 위험해 보인다. 더 나아가 최근 보고되는 뇌에 관한 연구들은 인간의 정신 질환은 모두 뇌 작용의 산물로써, 뇌에 적절한 조치를 취하면 많은 정신 질환은 치료될 수 있는 것으로 보고 하는 듯 하다.

<How to Read Lacan> 서문에서, 지젝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한 세기 전 근대 유럽의 역사 속에 무의식의 발견을 끼워 넣기 위해 프로이트는 그가 "나르시시즘적 질병"이라고 부른 세 가지 연속적인 인간 모욕의 관념을 발전시켰다. 첫째, 코페르니쿠스(Nicolaus Copernicus, 1473~1543)는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돈다고 주장함으로써 우리 인간에게서 우주의 중심 위치를 박탈했다. 둘째, 다윈(Charles Darwin, 1809~1882)은 맹목적인 진화를 통해 인간의 기원을 설명함을써 인간에게서 특권적인 생명의 지위를 박탈했다. 셋째, 프로이트(Sigmund Freud, 1856~1939)는 인간의 심리 활동에서 무의식이 차지하는 지배적인 역할을 가시화하면서 우리의 자아가 우리의 집주인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한 것이다. 100여년이 지난 오늘날, 보다 급진적인 인간 모욕이 출현하고 있다. 최근의 과학적 성과는 인간의 나르시시즘적 이미지에 하나의 모욕을 더 추가한다. 우리의 정신은 데이터 처리 과정인 연산 기계에 불과하며, 자유와 자율에 대한 감각도 기계 사용자의 환영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p. 7)


최근의 뇌 연구는 이렇게 인간에 대한 굴욕을 추가하고 있는 것이다. 지젝은 여기서 '급진적'이라고 표현하고 있으나, 나는 그런 성질을 넘어서 갑자기 이러한 흐름이 매우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진중권씨가 최근 '사이보그'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나는 이 아저씨가 갑자기 뒤늦게 공상과학영화나 소설에 빠져버렸나, 라고 생각했었다. 이제 나는 인간이라는 유기체에 기계를 덧대어 '진화'시키든, 기계에 인간이라는 유기체를 덧대어 생산해내든, 그 결과는 3류 공상과학소설에서나 볼 수 있었던 그런 것으로 돌아갈지도 모른다는, 그런 막연한 불안감이 앞서는 것이다. 모든 것을 디지털화 하려는 이 욕망이야 말로, 역시 인간에게 돌이킬 수 없는 최대의 굴욕을 선사할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런 프로젝트가 완결되었을 때 인문학, 정신분석학, 교육학 뭐 이런게 무슨 소용이리. 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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