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움은 스스로를 추함에 대립되는 개념으로 정의한다. 무언가를 추하다고 말하려 하지 않는다면 무언가를 아름답다고 말할 수도 없는 것이다. 그러나 무언가를 추하다고 부르는 것에 대한 금기가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그 까닭에 대한 설명을 찾으려면, 이른바 '도의적 공정성political correctness' 운동의 등장을 살피기 전에 먼저 소비주의 이데올로기의 진화와, 도의적 공정성 운동과 소비주의 이데올로기 사이의 공모를 살펴보라.) 요는 지금까지 아름답다고 간주되지 않던 것에서 아름다움을 (또한 추한 것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것이다.
수전 손택, <문학은 자유다>, 이후, pp. 30-31
2004년, 이 심미적(?)인 작가(?)가 죽었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많은 이들이 그녀의 죽음을 애도했다. 당시 놀기 좋아하는 꼬꼬마에 지나지 않던 나는 그 애도 행렬들이 이해가 가질 않았다만... 지금은 괜히 애도하고 싶어진다. 그만큼 좋다는 얘기다(하지만 불행히도 그럴 만한 재간이 없다).
손택의 글은 언제 읽어도 "흥미롭다". 나는 그녀의 글쓰는 능력이 정말(곱하기 100번해도 모자를 정도로) 부럽다. 읽는 독자들의 머리를 마구 강타하는 그 사유의 힘도 부럽기 짝이 없다. 헝 ㅠ.ㅠ 게다가 '쉽게' 쓰잖여!
물론, 오늘날의 (넓은 의미에서의) '민주주의'와 '소비주의 이데올로기'가 갖는 뿌리 깊은 공모성에 대해서 지적하는 것은 전혀 신선하지 않은 일인지도 모르겠다. '소비주의 이데올로기'는 (화폐 앞의) '평등'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손택이 지적하는 대로, 이러한 흐름과 맞물려 '아름다움'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은 이제 엘리티즘적인 것으로 평가되어 세간의 거센 공격을 받는다. '아름다움'은 전통적으로 "(손택의 말로) 계층을 수립하는 기능을 하는 개념들 가운데 하나"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아름다움'이라는 말 자체라기 보다는 그것을 둘러싼 여러 역사적이고 문화적인 맥락들을 강조해야겠지만...)
그래서 사람들은 이제 보다 '중립적'이고 '올바른' 표현으로 보이는 "흥미롭다"라는 말을 쓴다. 하지만 과연 이런 표현이 '솔직한' 것일까? 사람들은 "흥미롭다"는 말을 단지 무엇인가를 감추고 싶어서 쓰는 것은 아닌가? (한국의 상황에서 '흥미롭다'라는 말보다 더 극적이고 자주 쓰이는 표현은 '재미있다'일 것이다.. 아마도 '흥미롭다'라는 말은 'interesting'의 번역어일테니까. '흥미롭다'라는 역어를 '재미있다'로 전부 다 바꿔도 대강ㅡ아니, 어떤 경우에는 보다 더 맞아 떨어지는 듯)
스튜어트 홀이 지적하는대로, 오늘날의 '소비주의 이데올로기'는 '무계급성감각sense of classlessness'라는 효과를 낳는다. 즉 사람들은 더 이상 여전히 사회에 진하게 남아있는 '계급성'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만인은 화폐 앞에서 '평등'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에 대해서 감을 잡고 있는 사람들은, 자기의 계급을 확인하거나 확인 받는 일에 대해서 '거북하게' 생각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구별짓기'를 할 수 있는 표현들을 아예 쓰지 않거나 다른 표현들로 대체해 버린다. 하지만 아무리 이런 식으로 언어 상의 대체가 일어나도, 계급성이 실제로 사회 속에서 없어졌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오히려 계급성, 계급간의 적대를 단지 단어 상으로만 감춤으로써, 계급(성) 재생산과 계급 구조의 유지라는 효과를 초래할 따름이다.
손택은 오늘날 "무엇을 흥미롭다고 말하는 것은 오로지 아름다운가 아닌가 (혹은 선한가 아닌가) 하는 판단을 피하기 위해서다. 흥미로움은 이제 계속 영역을 확장해 나아가려 하는 소비주의적 개념이 됐다. 무엇인가에 대한 흥미가 커질수록 흥미가 커진다"고 지적한다. 오늘날에도 정확하게 맞아 떨어지는 성찰이라고 생각한다. 또 바로 뒤에 이어서 (내가 보기엔 정말) 놀라운 말을 계속 하고 있다. 즉, "부재, 공허로 인식되는 '따분한 것'은 그것[흥미로움]에 반대 작용을 하는데, 곧 흥미로운 것을 무차별적으로 아무 뜻 없이 긍정하게 한다. 현실을 불분명하게 경험하는 기묘한 방식이다."
뒤에 이어서 손택은 '아름다움'이라는 말의 젠더성을 지적한다. 잘생긴handsome과 아름다운beautiful이라는 말을 대조해가면서. 끄덕끄덕할 수밖에 없지만, 일단 한국의 맥락과는 조금 다르기 때문에 (예컨대 한국에서는 "잘생긴(아름다운) 책(handsome book)"이라는 말을 잘 쓰지 않으니까;) 여기에서는 생략해두려고 한다. 헌데 손택이 어디에선가 자기를 '-ist'로 붙이는 것에 대해 거부감을 표시했던것으로 기억하는데... -ist라면 -ist 맞는듯;
덧붙이자면, 손택도 지적하는 바지만, 확실히 이런 말은 우습다. "저 저녁놀은 흥미로운데." ...(;;;)... 낄낄
p.s) "도의적 공정성"이라는 역자의 번역어 선택은, 왜 그랬는지 잘 이해가 가질 않는다. 사실 이해하자면 이해할 수도 있다. 사실 PC를 '정치적인 것the political'이라고 지칭하기엔 무리가 따르기 때문이다. 오히려 PC는 '도덕'에 가까우니.. 하지만 그 번역어 옆에 political correctness를 써주지 않았더라면, 나는 아예 다른 맥락에서 이해해버렸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구글링 해보니 아예 안쓰이는 표현은 아니었다만.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political의 번역어가 어떻게 '도의적'이 될 수 있지? 게다가 손택은 칼 슈미트까지 인용하고 있는데... 그냥 많이 쓰는 표현인 '정치적 올바름'이라거나 '정치적 공정성'이라고 쓰면 훨씬 잘 와 닿을수도 있었을텐데.. 조금 아쉽달까 :-) 근데 오늘날 '정치'라는 말이 독자들에게 주는 '거북함'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선택한 것이려나? 그렇다면 슬픈 일이고ㅠ 근데.. 에에.. 모르겠다!! 이렇게 써 놓고 나니까 도의적 공정성이라는 말도 나쁘지 않네; 오히려 '정확한' 개념이란 생각도 들고 -,ㅡ... 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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