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한 다양성과 단조로운 유사성 사이에서. 소이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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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2007/12/26 15:29

오래된 정원(The Old Garden, 2007)
2007년 12월 26일 | 메가패스 사이트(무료 영화 차암 많음 +_+)


올해 초에 개봉했을 때 부러 보지 않고 이제야 본다. 나는 불안감을 주는 영화들을 보지 않으려하는 습관이 있기 때문이다. 허나 그렇게 보지 않고 개봉 시일을 넘긴 영화들이라도, 언젠가는 무엇인가에 이끌리듯 보게 되는 날도 있기 마련이다. 물론 <오래된 정원>은 무엇보다도 다소 불쾌한 영화다. 하지만 불쾌하다는 것은 이 영화가 꼭 싫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래된 정원>은 지루하지 않게 썩 잘 만든 좋은 영화고, 또 서사 속에 깊게 흡입되는 면도 있다. (물론 나는 상상하고 추측해볼 수밖에 없는 것이지만) '혁명'과 '투쟁'이라는 정치적인 상황을, 허울좋은 이성애적이고 지극히 개인적이며 이자-관계적인 '사랑'이라는 것에 완전히 값싸게 팔아먹지 않은 것만 하더라도 얼마나 다행인가. 지금 시대의 사랑은 얼마나 단순하며 또 통속적이며 제한적인가.

물론 <오래된 정원>도 그 틀에서 벗어나지는 않으나, 조금은 다른 방식의 재현을 드러낸다. <화려한 휴가> 따위에서 볼 수 있던 지독한 허무함을 느끼지는 않을 정도. 다소 무리하게 도식화하자면, <오래된 정원>은 상상계와 상징계 사이에서 왔다 갔다 하며 줄타기를 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나는 이 느낌이 좋다. <화려한 휴가>등의 대다수 영화들이 상상계에 보다 손을 들어준 것과는 다르게도.

이 영화를 보고나니 딱 머리 속에 떠오르는 영화는 역시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의 <몽상가들>이다. 나는 <몽상가들>을 보고 나서는 참담함을 느꼈고, 베르톨루치 감독에 대한 심심치 않은 분노까지 느꼈다. 그의 영화는 처음이었으나, 만남과 동시에 결별을 선언했다. 썩 괜찮은 영화를 만든 감독을 쓰레기라고 느낄 만한 분노를 느꼈던 적은 그때가 아마 처음이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사실 그 분노란 것은, 내가 <몽상가들>을 보고 있었을 때 서사와 화면에 깊게 몰입해 있었다는 사실에 대한, 그러므로 나 자신을 향한 분노이기도 했다. 베르톨루치는 나의 어떤 지점을 콕콕 건드렸고 나는 그것에 대해 짜증을 냈던 것이다. 영화가 끝나고도 나는 한동안 기분이 더러웠고, 이 딴 영화랑 비슷한 영화는 다시는 보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그 때 그 느낌은 <오래된 정원>을 보고난 뒤에 지금껏 느껴지는 현기증이나 편두통과 유사하다. <오래된 정원>은 <몽상가들>에 비해 판타지는 늘어나고 관음적이고 섹슈얼한 욕망은 줄어든(혹은 겉으로 내세우지 않는) 한국적 판본이다. 허나 확실히 허접한 베르톨루치 따위의 <몽상가들>에 비해서는 훨씬 낫다. 베르톨루치의 섣부른 과거 회상이 우리 시대의 어떤 지점과 깊게 맞물려 있겠는가. 그것은 아마도 '자유'를 위장한 폐쇄적이고 자기애적이며 자기-충족적인 '욕망'의 언어들일 것이다.

이와 연관해서 <오래된 정원>이 가진 하나의 미덕이자 윤리가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과거(운동 담론들)를 섣부르게 '억압'으로 해석하지 않는 것에 있다. 우리 시대의 지배적인 해석 방식은, 과거의 운동 담론들이 운동하는 활동가 개인들을 '억압'했던 것으로 본다. "개인들을 혁명과 역사의 '도구'로 삼았다", "개인들의 욕망을 드러내지 않았다", "(운동/활동가들이) 괴물과 싸우다 괴물을 닮아버렸다"는 흔해 빠진 말들은 이러한 지배적인 해석 방식을 잘 드러내주는 말이다. 이러한 이야기들은 단적으로 말해서, 섣부르고 단순한 과거 회상이 낳은 냉소주의다. 우리가 싸워야 할 주체성은 이러한 냉소주의인지도 모른다.

물론 이 영화 역시도 그렇게 해석될 여지가 있는 지점들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 영화는 거기에서 완전히 패배적으로 무릎을 꿇지는 않는다. 이게 이 영화의 미덕이라면 미덕이고 윤리라면 윤리다. 불편한 지점들은 여전히 남아 있지만(예컨대 한윤희의 역할 상징이라든지. 이점에 대해서는 <몽상가들>에 대해 손을 들어주고 싶다), 뭐 어쩌랴. '완벽'해서는 텍스트가 될 수 없으니까, 텍스트는 타협과 저항의 산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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