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 풀러의 <지식인>을 나름대로 '재미있게' 보고 있다. 3분의 2 정도를 봤는데, 사실 원문도 어려워서 번역도 어려웠다는 얘기를 보기는 했지만 본문도 지나치게 잘 안 읽힌다. 그래도 꾸역꾸역 읽었더니 머리 속에 남는 것은 별로 없는데 그래도 중간 중간 '뜨끔뜨끔'한게 있다. 그 중 베스트는 "정신의 원 스톱 쇼핑몰"이라는 말. 그 다음은 모뉴멘털리즘이라는 말이다. '정신'이 무슨 단어의 번역어 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건 소위 '대륙 철학'에 관심이 가는 나로서는 참조해 둘만한 대목이다. 이 부분은 제 2장, '지식인과 철학자의 대화' 편에서 옮겨 두는 것이다.
훌륭한 철학자들은 공공의 지적 영역에서 상당한 여유를 누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글이 높이 평가 받는 것은 그들이 전하는 메시지 보다는 그들의 글에서 풍기는 특이한 분위기 때문입니다. (87)
대륙 철학자들은 프랑스나 독일 태생의 어떤 '대가 급 사상가'의 보호막에 들어가 그의 말을 새로운 맥락에서 반복하면서 대가의 사상을 재활용하기를 좋아합니다. 대가 급 사상가들은 모든 것에 대해 할 말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가장 흥미로운 것은 그들이 하는 어떤 특별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들의 말 전체가 어떻게 일치하는가 하는 점입니다. 여기서 그들의 몇몇 신조어는 논란의 여지가 있는 전제들을 감추는 역할을 합니다. 이러한 철학자들이 매력적인 까닭은 정신의 '원 스톱 쇼핑몰'을 제공하기 때문이지요. 이를테면 일단 당신이 미셸 푸코나 위르겐 하버마스처럼 생각하는 법을 배우면 그 다음에는 스스로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88)
푸코나 하버마스에 대해서는 아무 유감이 없습니다. 오직 그들의 아류들과 흉내쟁이들, 정신의 게으른 식객들이 문제입니다. [...] 이런 사태가 온 것은 추종자들이 스승의 언어만 모방하고 행동은 본받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 그들의(스승들-namunnib) 글은 강의 노트의 요약본이었습니다. 실제 강의를 할 때는 추상적인 내용을 구체적으로 예시해주고 청중에게 깨우침을 주는 다양한 일화나 사례, 농담 등을 덧붙이면서 강의 노트보다 훨씬 풍부하고 생생한 내용을 전달했을 것입니다. [...] 당연하게도 그들은 인간의 위트를 매우 진지하게 취급한 철학자들이었습니다.(89-91)
"정신의 원 스톱 쇼핑몰"이라는 말을 들으면, (지젝의)라캉이나 지젝으로 레포트를 적지 않게 써왔던 나는 사실 일단 뜨끔해진다 -_-; 지젝의 끊임없이 늘어지는 장광설(그게 또 강력한 매력이지만)과 반복되는 예시들, 역시 마찬가지로 그의 많은 저서들에서 반복적으로 언급되는 그의 분석들. 뭐만 나오면 턱턱턱 떨어지는 그의 분석은 사실 "원 스톱 쇼핑몰"이란 말이 적절하다는 생각도 든다. 사실 글들을 읽다 보면 '지젝스러움'이 분명히 있고, 그 지젝스러움은 적잖게 '원 스톱 쇼핑몰'에 맞아 떨어진다. 헤겔과 라캉이라는 원 스톱 쇼핑몰. 이 점은 <지식인>에서도 지적되고 있는 부분이기는 한데, (94-97) 이 부분에서는 동의할 수 있는 부분도 있고 좀 막나간다는 느낌을 주는 부분도 있다.
물론 그가 말하는 것들은 대개 중요한 분석이지만, 참을성 별로 없고 늘 새로운 걸 추구하고 싶어하는 (때로는 불성실하고 불만에 가득찬) 사람들에게는 반감을 줄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가 거기까지 올라갈 수 있었던 것은 상당히 많고 어려운 경로를 거쳐왔다는 것, 그리고 생각보다 이론적 근거가 훨씬 탄탄하다는 것을 기억해 두어야 한다. 그리고 그 역시도 수많은 사람들에게 "원 스톱 쇼핑몰"로 취급될 수도 있다는 것, 그러니까 그만큼 그도 현대에는 '대가 급'일 수 있다는 것 역시도 기억해 두어야 한다. (쇼핑몰은 아무나 세우나...?) 사실 문제는 지젝이나 라캉이 아니라, 툭하면 "지젝대고 라캉대는" 사람들이겠지만.. (나 또 뜨끔- 그치만 요즘 이렇게 지젝을 인용하는 사람들도 별로 없는 것 같다. 한국에서도 독자들은 적지 않은 것 같은데, 그에 비하면 확실히 생산량이 적다. 지젝의 벼룩시장화, 혹은 1000원 쇼핑몰화가 이루어진 듯한 느낌. 그러니까 결국 지젝은 '고상한' 철학자로 취급되지 않는듯한 느낌이다. 이러한 토대에는 아카데믹 편견이 적지 않게 개입되었다는 혐의를 지울 수 없다.)
또 이 가상 대담의 중간 중간에 버틀러가 등장하는데, 나의 팬심은 이 글에서 분석하고 있는 것에 절대로 동의할 수 없게 만든다. -_- 흥. 근데 확실히 '대가 급 사상가'들의 위트는, 그런 것 같다. 헤겔도 살아 생전에는 엄청난 위트를 자랑했다고 하지.. 버틀러도 대담 동영상을 보면 알겠지만 청중을 참 잘 웃긴다. 글과 사람은 역시 다를 수 있어. 정희진씨도 마찬가지고..
상당히 불편한 것들이 많은 책이기는 한데, 일단 끝까지 읽어 보아야 겠지. 가장 큰 불편함은 이것이다. 이 책에 사용된 표현을 조금 패러디 하면, "스티브 풀러의 주장에서 포장을 벗겨내면 다음과 같은 알맹이를 얻을 수 있습니다. 지식인은 학자들이 못하는 곳 어디에든 맘대로 개입할 수 있어야 합니다. 책임은 알아서 질테니 우릴 그냥 내버려 두세요." 불편하다는 것은 동의하지 못한다는게 아니라 약간 어딘가 께름찍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언론 서평(경향신문)에 따르면 그가 "지식인이 풀어야 할 가장 힘든 과제는 계급과 성, 인종의 구분을 초월해 융합시키는 것이 아니라 세대 간의 장벽을 뛰어넘는 일"이라고 언급한다는데, 어디에 나오는지 아직 모르겠다; 대충 읽고 넘어간 부분에 있을지도 모르겠고 뒤에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물론 가장 힘든 과제 운운하는게 참 골 때리는 것이기도 하다. 저게 진짜 저자의 말이라면, 저자한테 "계급 성 인종의 구분을 초월해 융합시키는 것"은 대체 어디의 어떤 작자가 하고 있는 미친 짓거리인지 묻고 싶기도 하고.. 어쨌든 '세대 간의 장벽'이 무척 힘든 과제일 수 있다는 것, 나도 절감하고 있다. 에휴 나이주의ageism는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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