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한 다양성과 단조로운 유사성 사이에서. 소이연

카테고리

전체보기 (447)
일기 (172)
조각들 (71)
독서노트 (69)
스크랩 (55)
영화 (42)
음악 (0)
문학 (15)
번역 (13)
(9)
기타 (1)
미공개 (0)
일기 / 2010/09/09 22:53

1.

학부 때 그나마 좋아했던 선생님들은 모두 문학 교수였다. 한 분은 영국문학, 특히 시에 관심을 가졌고 다른 한 분은 미국문학, 특히 소설에 관심을 가졌다. 그 중 영국문학 전공교수가 이번 학기에 퇴임하신다고 했다. 정년기념 강연회를 한다는데... 영어교육과에 대한 애정은 털끝 만큼도 없지만 이 강연회는 가봐야 하나 싶어. 정년기념 강연회라니 이렇게 애틋한 이름이 있을 수 있나.

그러나 내 경험상, 영어교육과라는 학과에서 문학의 지위는 늘 애매할 수밖에 없었다. 대학원에 문학전공으로 들어간 친구로부터는 아마 이 선생님들이 퇴임하시고나면 문학교수 자리가 없어질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나 거기엔 어떤 의외성도 없었고 차라리 자연스러움마저 느껴졌다. 그렇게 되어야 하니까 그렇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오늘날 문학이란 것은 고작 그런 지위인 것이다.

물론 문학이란 것이 특권일 필요는 없다. 즉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얘기는 아니다. 내가 졸업한 영어교육과처럼 실용적인 학풍을 가진 학과에서라면, 문학은 그저 거추장스러운 것일 뿐이다. 테리 이글턴의 <문학이론입문>에서 냉소적으로 묘사되었던 바 영문학과에서는 문학이 여전히 가치 있을 수 있겠지만, 영어교육과에서는 교양으로서의 가치도 거의 없다. 문학 수업을 좋아하는 이들은 매우 소수에 지나지 않았다. 게다가 한국 영어 공교육에서 문학을 가르치는 사람은 거의 없지 않나. 어느 교과서 텍스트에서도 문학을 쓰지는 않는다. 그러니 부족한 영어학, 영어교육방법론 교수를 초빙하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차라리 교과서 전문가를 초빙하거나 수업 전문가를 초빙해서 학생들 임용고사 준비를 시키는게 나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앞으로 영어교육과에서는 착하디 착한 얼굴을 한 영어 '전문가'들이 쏟아져 나올 것이다. 그리고 난 내 출신을 언제고까지 부정하게 될 것이다. 내가 거기를 어떻게 졸업했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2.

갈수록 확신은 떨어져가고 그 사람의 이름만 보면 기운이 빠진다. 시작한지 며칠이나 되었다고 이러는 것인지 원망스러울 따름이다. 어쩔 수 없이 질질 끌려 계속 가고는 있지만, 이런 무기력한 상태로 그 사람을 봐야하는 게 과연 좋은 일인가 싶다. 여전히 올바름이나 윤리에 대한 강박을 가지고 있는 나는, 실제 행동으로는 옮기지 못하면서 이렇게 전전긍긍하기만 한다. 그래서 오늘 했어야 할 전화를 망설이다가 하지 않았다. 조금 더 기다렸다가 면대면 상황에서 이야기 드려야 할 것 같다. 이제는 비겁한 게 무엇인지도 잘 모르겠고, 올바른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겠다. 이해관계가 생긴다는 것이 이렇게 비참한 일인 줄은 몰랐다. 사실 누구라도 이해관계의 세계에서 살고 있지만, 나는 거기에 속하는 것을 애써 부정해왔는지도 모를 일이다. 피터팬 컴플렉스라고, 모라토리엄이라고 욕해도 좋다. 그러나 나는 이제 완전히 그 논리에 포섭되어 가는 느낌이다. 대체 어떻게 살아야 하나요. 오늘도 욕과 한숨으로 하루를 보냈다.


3.

그것에 대해서 나는 "찌질하다"고 표현했고, 그것은 한참이나 언어를 고르고 골라 추상화 한 결과물이었다. 경험의 농축과정, 그 결과물이 "찌질하다"라는 것일 줄은 나도 잘 몰랐다. 그건 내가 가장 거부하고 싶었던 정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미 입 밖으로 나와버린 말은, 앞으로 그것에 대한 나의 태도를 결정하게 될 것이다. 벤야민이 말했듯 말은 생각을 정복하기 때문이다(벤야민에 따르면 글은 그 말을 지배한다. 그러나 나는 내 말에 거스르는 글을 쓸 마음이 없다). 물론 선생님은 "아름답다"라고 말씀했지만, 아름다움이란 결점을 사랑하는 것이어서, 그 결점이 태도를 바꾸어 아름다움을 능가하는 순간, 그 잔여물에 매달리는 건 최소한의 존엄마저 포기하는 일이 된다. 나의 오랜 집착은 결국 내가 마지막으로 가진 환상에 대해서 말해주는 것이었을 뿐이다. 역사는 처음엔 비극으로, 다음엔 희극으로 온다고 했던가. 그러나 세번째를 위한 드라마는 왜 아무도 말하지 않는가(세번째는 그냥 ridiculous하기 때문 아닐까). 환멸의 영토에서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거의 다 한 느낌이고, 마침내 지쳐버린 것 같다. 지쳐서 신물이 올라올 지경이다. 지금 당장은 구토하고 싶고, 그러고나면 이제는 연애나 하고 싶다. 여기까지 오는데 참으로 오랜 시간이 걸렸다. 어리석었던 시간들에 안녕과 애도를.


4.

이야기에 굶주린지 얼마나 오래 되었는지. 옴니버스 영화 <어떤 방문>의 첫 번째 단편을 보면, 할아버지를 여읜 재일조선인(?)이 할아버지의 유품으로 남은 족자를 유언에 따라 돌려주기 위해 한 일본 가정에 방문한다. 할아버지는 이 집주인에게 있어 생명의 은인이었고, 그 보답으로 족자를 받았던 것이다. 그런데 그 집주인은 방문한 이에게, 이전에 할아버지에게 받았던 부채를 돌려준다. 이 부채의 내력이 있냐고 물으면서 말이다. 내력이라니...! 사실 별 것 아닌 일이지만, 사물에 깃든 이야기를 점점 더 들을 수 없게 된 요즘에는 '내력'이라는 말이 갖는 아우라가 있는 것 같다. 비단 사물 뿐 아니라, 장소에 깃든 이야기 조차도 더 이상 들을 수 없게 되었다. 이제 우리는 그것을 '듣기'보다는 기록된 것을 읽어야 하니 말이다. 소설을 '읽는' 것도 조금 지친 것 같다. 꿈 이야기도 좋고 옛날 이야기도 좋으니, 이야기나 좀 듣고 싶어.


5. Must-see 강연!

초청 강연자: 타니 바로우(Tani Barlow) 교수

강연 제목: New Trends in the Debates in Colonial Modernity and Critical Asian Studies
(식민지 근대성 논쟁의 새로운 흐름과 비판 동아시아학)

*일시: 2010. 9. 15 (수) 오후 2:00 ~오후 6:00
*장소: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강당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9월 9일  (0) 2010/09/09
9월 3일  (0) 2010/09/03
9월 1일  (0) 2010/09/01
8월 25일  (2) 2010/08/25
8월 19일  (2) 2010/08/19
Posted by 소이연
TAG

글 보관함

최근에 받은 트랙백

달력

« » 2010.09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